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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日 제치고 美와 新질서 재건축… 한국, '딱지'라도 사 놔야”
 

조선일보 

2012-09-24 

한 달 넘은 中·日 충돌, 동북아 격랑 속으로… 한국의 길을 말하다

[1] 하영선 동아시아 연구원(EAI) 이사장

 

[中·日충돌, '동아시아 新질서' 측면서 봐야]

中, 동북아 상황을 中·日 아닌 中·美간 게임으로 생각

美와 정면충돌 직전까지 댜오위다오 사태 키울 것

美·中간 초보적이지만 게임의 원칙 만들어지는 중

 

[한국,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전략 필요]

中과 甲乙이라는 게임 대신 丙이라는 제3의 길 가야

21세기에는 경제력·군사력만으론 대응하기 역부족

정보·지식이 바탕된 '다보탑式 복합 국력' 필요

 

"중국은 이제 일본이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미국과 동아시아 신질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점에서 일본 정부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하자 정교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사태를 상승시켜 일본을 굴복시켰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까지 이번 사태를 상승시킨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하영선 동아시아 연구원(EAI) 이사장은 23일 최근 센카쿠를 둘러싸고 빚어진 중·일 간 갈등을 미·중 간 '동아시아의 신질서'가 구축되는 복합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 이사장은 "현재 동아시아 신질서는 재건축되는 단계"라며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입주자들이 국제적인 신질서를 만드는데, 우리는 '딱지'라도 사서 들어가야 한다"며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센카쿠를 둘러싸고 한 달 넘게 지속된 중·일 갈등을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 신질서 '재건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각 국가의 국내 정치 리더십 변화에서 오는 혼란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미·중 관계를 염두에 둔 중국의 대일(對日) 전략은 무엇이었나.

 

"미·중(美中) 간에는 초보적이지만, 게임의 원칙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게임 원칙하에서 작은 그룹들이 치고받는 게임이 바로 영토 분쟁이다. 중국은 현재 상황을 중·미 간 게임으로 보고 있지, 중·일 간 게임으로 보고 있지 않다. 댜오위다오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지만 미국과 전면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

 

―'동아시아의 신질서' 개념이 우리에겐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중이 공유하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기성 권력(Established Power)'과 '부상(浮上)하는 권력(Rising Power)'이 만나는 경우에 항상 갈등하고 충돌했지만, 미·중 간에는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지난 5월 미·중 전략·경제 대화에서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양국 간 '신형(新型) 대국 관계' 구성이 신질서의 핵심이라고 했다."

 

―중국이 일본에 강력 대응한 배경은 무엇인가.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의 3대 핵심 이익은 중요성 순으로 볼 때 ①국내 안보 ②국제 안보(영토·한반도 등) ③국내 사회·경제 발전을 위한 안정이다. 핵심 이익 3가지에 저해되는 것에 대해서는 증강된 국력을 통해서 해결하겠다는 것이 이번 댜오위다오 사태에서 드러났다."

 

―중국은 동아시아 전략과 관련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10월에 확정될 시진핑 체제의 기본 원칙은 '선(先)경제'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현 상태대로 10년만 더 가면 국내총생산(GDP)이 미국과 비슷해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경제 우선 정책을 펴면서 꼭 필요한 일은 하는 '유소작위(有所作爲)'를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이번에 완패했다는 평가가 있다.

 

"1894년의 청·일 전쟁 당시에는 부상하던 일본이 대국(大國)인 청나라에 승리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일본이 빨리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

 

―일본은 어떤 면에서 실책을 했나.

 

"현재는 동아시아가 미·중 중심으로 판이 짜이고 있다. 일본은 여기서 새롭게 자신을 설정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현재 취하고 있는 정책이 너무 단순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동맹을 잘 관리하되, 주권(主權)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벌이는 게임을 '넌-제로섬(Non-Zero Sum)'으로 보려고 한다. 이는 11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시장경제주의 형태로 변형하면서 새롭게 판을 짜려고 한다."

 

―이번 중·일 충돌이 한국에 주는 함의는.

 

"우리는 일본보다 더 규모가 작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을 수 없다.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우리가 전면적으로 부딪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중국이 갑(甲)이고 우리가 을(乙)'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중 관계를 갑과 을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은 19세기적인 시각이다. 한중 간 갑을(甲乙) 게임에서 '병(丙)'이라는 제3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 눈으로 동아시아에서 살아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중국과 경쟁할 때 19세기 방식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하다. 중국은 아직 21세기적인 복합 국력을 키워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착안해야 한다."

 

―중·일 간 충돌이 우리나라로 전이(轉移)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중국에는 티베트 문제가 북한보다 더 중요하다. 티베트 문제는 국내 안보 사안으로 생각하기에 그들에겐 최우선의 핵심 가치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핵과 통일은 중국에게 티베트보다 낮은 순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북아에서 앞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잘 회피할 수 있어야 한다. 와신상담해서 군사력을 키우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다. 21세기에는 이보다 더 복잡한 모델로 가야 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전략이 우리에게 중요한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나가는 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분야다. 19세기에 경제력과 군사력은 필요조건이면서 충분조건 역할을 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의 규모를 생각할 때 복합 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복합 국력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일·중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 <'다보탑식 복합 국력' 그림 참조> 그 바탕 위에서 문화·에너지·환경은 물론 안보를 강화한 후에야 국내외적으로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다."

 

―독도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전략은.

 

"독도는 정치화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가 이미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계속 외치기보다는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도록 우호적인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21세기엔 훨씬 복잡한 힘을 장악해 나가는 쪽이 승리한다."

 

―최근 소장파 학자들이 쓴 '아직도 민족주의인가'라는 책은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데.

 

"그런 주장은 아직 위험하다고 본다. 상대방이 민족주의를 갖고 나오는데 민족주의를 없애서는 곤란하다. 지금 동아시아엔 팽배한 민족주의 갈등이 있는데, 이를 완전히 포기할 경우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가능한가.

 

"동아시아는 정체성을 공유할수록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한·중·일 3국이 19세기처럼 '각생(各生)'할 경우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중장기적으로 복합 네트워크가 구축돼야 한다. 무엇보다 동아시아 이슈들을 가급적 정치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중·일 각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개별 국가가 특정 사안을 정치화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이것을 국내 정치가 촉발해서는 곤란하다. 다양한 행위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야 한다."

 

―대통령 선거가 90일도 남지 않았지만, 외교 안보 이슈는 거론도 안 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순전히 경제 민주화, 복지 등의 국내 이슈로 치러지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명 중 한 명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경제 민주화 외에도 남북 문제, 동아시아 신질서 구축이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경제 중심으로 뽑는데, 실제 대통령은 남북 관계와 동아시아 신질서 문제에 즉각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우려된다."

 

―내년에 집권할 정치 세력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남북 관계와 동아시아 신질서 문제는 불현듯 우리 앞에 다가올 주제다. 밖에서는 큰 싸움이 벌어지는데, 우리는 경제 민주화 문제로만 논쟁하고 있다. 미·중 관계가 새롭게 신질서를 짜 나갈 때, 그들이 청사진을 만들 때 우리가 들어가서 작업을 해야 한다. 하다못해 '딱지'라도 사 놓아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 하지 말아야 할 정책을 조언한다면.

 

"이명박 정부에서 미국 쪽으로 많이 갔으니, 이번에는 중국으로 가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무엇이든지 배제하는 'ABL(anything but Lee) 정책'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영선 EAI 이사장은…

 

지난 8월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정년퇴임한 한국 국제정치학계의 중진. 9·11 테러 이후의 국제사회를 '복합 변환의 세기'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복합 그물망(네트워크) 정책 마련을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동아시아 공동체' 등의 책을 통해 한중일 3국과 미국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 및 편저로 '21세기 신동맹:냉전에서 복합으로' '국제화와 세계화''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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