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한국사회과학개념사 발표회
 

2015-11-21 

2015 11월 세미나 기록


일시: 2015년 11 21() 10:00-18:00

장소: 연세대학교 새천년관 국제회의실(701호)

참석하영선, 손열, 전재성김상배, 김현철, 박명규, 구갑우, 김성배, 정영철, 마상윤, 김준석, 신범식, 박성우, 이헌미, 구민선, 용채영

발표: 한국 사회과학 개념사 학술발표대회 프로그램 



발표 및 토론 내용


개회사(축사)

기조연설하영선(서울대


1패널전통근대식민지 한국

발표:

전재성(서울대), 한국의 조공개념

김현철(동북아역사재단), 근대한국의 독립개념

손열(연세대), 공동체 개념동아협동체와 식민지

사회하영선(서울대)

토론박명규(서울대), 여타 발표자

 

2패널냉전과 북한

발표

구갑우(북한대학교), 북한의 평화개념

이헌미(서울대), 북한의 혁명개념

김성배(국가전략연구원), 북한의 자주개념

사회전재성(서울대)

토론정영철(서강대), 여타 발표자

 

3패널냉전과 탈냉전 한국

발표

마상윤(카톨릭대), 민주주의 개념

김준석(카톨릭대), 연방 개념

김상배(서울대), 정보화 개념

신범식(서울대), 유라시아 개념

토론: 박성우(서울대), 여타 발표자


기조연설/토론


 

박명규: 여러 생각들에 동의. 4중 복합사라는 네 개의 차원, 네 개의 문제의식에 공감함. 그런데 이렇게 갈 경우 개념사라는 말을 계속 붙잡고 갈 것인가? 개념사의 복합화, 개념사의 사중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원래 의도를 잘 드러내는데 적합할까? 일반적으로 개념사가 갖는 일종의 코젤렉은 미래지향적이었지만 respective, 역사적 접근이 있다. 이런 문제의식이라면 조금 더 개념사로부터 개념연구로 가는 것이 아닌가? 개념사로 볼 것인가, 인간의 삶, 공동의 세계질서 속에 주춧돌로 작동하고 있는 개념 또는 지식 이것 자체를 과거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직시하자는 면에서 보면 개념사에서 개념분석, 개념연구 등으로의 전환으로 연결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네 개의 부분, 개념사를 시공간적으로 분리했는데, 개념의 분석, 해석으로 간다면 개념의 자원, 수용, 변용, 창조 이런 차원으로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다. 유산과 지평, 시간적인 부분도 같이 넣어서 보면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개념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 수준이 아니라 한국 사회과학계, 한국의 지성계 전체에 던지는 큰 화두로 본다면 더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개념사의 확장이 아니라 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인가?

 

개념사과 담론분석이 겹치는 느낌이다. 개념사에서도 디지털을 활용하면서 각종 단어들 간의 상호관계, 기본 개념 속에 연결되는 부사들의 성속성 등을 연구하는 방식도 등장했고, conceptdiscourse가 연결되고 있다. 그런 것을 염두했을 때, 일종의 개념사의 확장과 이를 더 지식의 분석차원으로 가는 것을 더 생각해볼 수 있겠다.

 

conceptual historyemotional history를 결합하려고 한 시도. 기본적으로 문명화’, concept의 사회역사적 과정이 강화된 과정을 보면 엘리아스, 문명화과정. 사람들의 개인적, 집단적, 원초적인 감정, 죽이고 살리는 부분의 control mechanism의 발전이었는데, 문명의 발전, 위기가 논의된다는 것은 인지적인 수준에서 파악되지 않는 정서와 감정에 대한 규율, cultivation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테러, 증오 등 각종 문제들 속에서 잘 정리된 논리, concept, theory로는 포착이 안 되는 어떤 부분들이 새롭게 분출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러한 conceptual history와 같은 분석이 문명화과정에서 정서, 감정을 잘 순치하려고 했고, 그것의 한계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문제를 던지는 부분이 있다. identity, 민족주의의 부상 등 감정의 새로운 분출과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있다. 처음에는 생경했지만 문명의 한 측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1세기의 상황을 염두하고 미래로 확장하려고 할 때, 중국의 부상과 정보지식 무대의 출현은 중요한 부분인데, 일종의 설명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각종 소규모 identity들의 분출, 일종의 정서적이고 원초적인 것들의 재부상이 나타난다. 종교, 종족, 새로운 테러, 폭력 등. 새로운 현상들, 21세기 적인지 아닌지 판단이 필요하지만 그런 현상도 주요한 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거기서 본다면 두 축, 중국의 부상과 지식무대의 출현과 다른 또 하나의 축이 있는데 근대 문명기획의 좌절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 거대한 새로운 폭력, 테러, 증오, 감정의 표출,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손열: 개념을 하나로 isolate 하기가 쉽지 않다. 아주 전통적 개념사, 어원적 개념사에 가까운 것도 있지만 개념이 cluster가 있어서 같이 움직여나간다. 따라서 discourse, 또는 bundle이라고 할 수 있다. 개념사가 출발점으로는 좋은데, 현실문제의 해석에 있어서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같이 움직이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기존의 것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하나의 단초는 되었지만 실제 모습은 더 다양한 개념들이 같이 들어간다.

 

김현철: 저도 독립, 평화 등도 같이 논의했다. 국내정치 논의한 것을 우리가 개별적인 측면으로 나누어서 보려고 하니까 개념의 횡적인 것은 보지만, 동시대의 다른 개념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도 봐야 한다. 문명, 민주화, 독립 등 오랜 시간에 걸쳐서 갔다. 전통, 근대, 150년에 걸쳐서 가는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영선: 개념사로 억지로 옷을 입힐 필요가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중국, 지식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 고민의 key는 소위 주인공과 무대, 연기의 복합성의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다. 소위 복잡계의 새로운 질서의 창발이라고 하는 경우, 주인공적인 차원에서 국가라는 을 쓰는 주인공의 힘의 배분 격에서는 중국의 부상이 중요한데, 그 이외의 복합성, 하위까지의 네트워크의 등장과 ethnic, 개인, 지역 등의 중층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소위 emergence, ‘대 혼란이라고 하는 것과 새로운 질서가 잉태되는 경우, 동아시의 경우 초점을 더 줄 수밖에 없다. 내가 중동에서 태어났다면? 창발적인 시각에서는 더 하위국가에도 초점을 두는 역사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여기도 그런 모습이 있고, 이를 엮는 모습이 여러 개로 엮일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보면 전통 군사/경제무대에서 근대의 자기모순의 촉발로 나타난 문화, 환경, 지식적인 것이 있다. 통치에서는 전체의 복합성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 중의 하나만 보는가?

 

몇 개의 combination의 창발성이 나타나는데 급한 것, 가장 급한 것은 무엇일까? 동아시아의 테러보다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피부로 느끼는 것이 있다. 다 다른 얽힘의 모습. EU, 테러적인 것도 있는데 더 복합적이다. 고구마 줄기를 캐는 실마리를 여러 실마리들 중, 창발성의 우선적인 요소들의 대표로 잡고, 이 쪽 부분, 하위 국가적 모습과 무대적인 부분에서의 문화적 요인 파트의 감성의 문제, 어떻게 결합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부분을 굳이 개념사의 범주 안에서 잡힐 것이 있나? 아니면 더 크게 씌어야 하는가? 21세기적인 문명사? 아시아에서부터의 세계로 발신하는 형태? 개인적으로 복합문명사가 가능하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폐쇄되어 있진 않다.

 

그냥 모양을 씌운 것은 개념 ()’. ‘를 유지하는 것은 21세기의 어떤 형태로 잡아야 한다. 물질적인 기반에다가 이념, 감성적인 것이 점차 커지고 있고, 좁게는 사회과학, 넓게는 IR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런 물리적인 변화를 잡으려는. 심성-물성의 결합의 모습을 두 개를 잡지 않고는 중국, 중동의 테러 등 잡히지 않는 국제정치가 된다는 것은 멀지 않은 시기에 본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경우, 그냥 개념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던져서 잡아야 하는 심상의 형태, ‘()’의 형태로서 표현되어지는데 사실은 국내, 현재 우리의 사회과학적 작업의 많은 것이 피상적 비교(comparative)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전통이 잉태되어 있고,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나온다. 고고학적으로 층이 맞물려서 현대의 건물이 세워진 것이고, 개념의 역사성에 대해서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해 코젤렉 등은 이를 강조하면서 여전히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왜 개념의 사만 하려고 하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 ‘, ‘이 어떻게 관계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은 서양이 개발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충분히 되지만 ’, ‘파트는 상당히 경쟁적이다. 우리는 이쪽의 해석학적 방법이 동원되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는 이를 결합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의 정통성을 꿰뚫은 느낌을 주도록 어떻게 발신하는가의 문제가 생각이 든다.

 

박명규: 그런 면에서 개념사라고 붙이는 것의 장점은 있다. 역사성 등 문제의식을 분명히 드러낸다.

 

구갑우: emotional history, conceptual history가 결합되기 어렵다. 개념, 기표로만 남아있고. 주변에 미끄러지고, 현실에 포착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개념 전파사가 가장 흥미로운 발명과 발견인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의 의문도 제기된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