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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우, 북조선 소설가 한설야(韓雪野)의 평화의 마음(1), 1949, 마상윤, 민주주의의 전파와 수용: 현대 한국의 역사적 경험
 

2015-05-02 

2015 4월 세미나 기록


일시: 2015년 5 2() 1:00-3:00

장소삼성경제연구소 회의실

참석하영선, 구갑우, 마상윤, 손열, 김상배, 이헌미, 용채영

발표구갑우 - 북조선 소설가 한설야(韓雪野)의 평화의 마음(1), 1949


1. Wernicke, Günter. "The Communist‐Led World Peace Council and the Western Peace Movements: The Fetters of Bipolarity and Some Attempts to Break Them in the Fifties and Early Sixties1." Peace & Change 23.3 (1998): 265-311.
2. Wernicke, Günter. "The Unity of Peace and Socialism? The World Peace Council on a Cold War Tightrope Between the Peace Struggle and Intrasystemic Communist Conflicts." Peace & Change 26.3 (2001): 332-947.. 
3. "Cominform Resolution and Manifiesto on Establishment of Information Bureau" (1937.10.5)
4. "The Cominform" by Sidney B.Fay, Current History January 1, 1948. 

5. 한설야, "대륙"(1939)(일어 소설)

마상윤 - “민주주의의 전파와 수용: 현대 한국의 역사적 경험


1. 강정인, "박정희의 민주주의 담론: 행정적, 민족적, 한국적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국현대정치사상과 박정희> 아카넷, 2014, 191-230 (또는 <철학논집> 제27권, 287-321, 서강대 철학연구소)
2. 김인식, <광복전후 국가건설론>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3. 노재봉,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 한국의 경우" 한국정치학회, <합동학술대회 논문집> 2권 0호. 1977 / <사상과 실천> (녹두, 1985) 수록. 




발표 및 토론내용


* 구갑우 - 북조선 소설가 한설야(韓雪野)의 평화의 마음(1), 1949

 

마상윤: 1949년을 잡은 이유?

 

구갑우: 1949년 파리평화대회를 집중적으로 기술하려는 방법, 북한의 당시의 여러 생각들을 찾아보고자 함.

 

손열: 이 글의 목적, 목표를 어떻게 잡은 것인가? 한설야 케이스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

 

구갑우: 한설야의 입으로 이야기되는 평화의 개념. 이에 대한 사전작업은 64년 이전까지의 구한의 핵담론을 정리하면서 나온 부수적인 내용들인데, 반핵에서 핵보유국으로 가는 과정을 정리한 적이 있음. 당시 어떻게 상황을 생각했는는지 북한에서 나왔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북한이 목표로 한 것의 원형들이 발현되는 시기로서 볼 수 있다.

 

마음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정서적인 측면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묘사해보고 싶다.

 

이헌미: 평화개념을 볼 때 자료는 한설야의 글, 앞의 북한의 여러 평화/핵과 관련된 책들인가?

 

구갑우: 대중정치용의 선전교재와 이론관련, 특히 맑스-레닌 관련된 것들이 번역.

 

이헌미: 한설야의 작품을 보면 자본주의, 목적. 자본주의 자유주의 사회와 다르게 설정되는데, 어떻게 해석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지? 질적으로 다른 자료들이 있는가? 인테리를 중심으로 보면?

 

구갑우: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지금 시대에 좀 다른 시기임. 식민시대의 평화개념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를 보면 사실은 또 다른 주제이다. 시기를 좁혀서 보려고 함.

 

김상배: 중국, 마오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언제쯤인가?

 

구갑우: 64. 64년 직전 60년대 초 핵실험금지조약과 유사한 것을 체결함. 북한은 이에 크게 반발함. 북소관계가 안 좋을 때였음. 재밌는 것은 최근의 북한소설에서도 아주 많은 자료들을 할당해서 다시 복원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지금 자신들, 64년 쿠바 무사일 위기 때 북한자료들을 보면 소련이 굴복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논의들이 나옴. 핵우산 상실에 대한 논의. 경제국방병진노선, 196212월에 채택하게 됨.

 

김상배: 김일성이 반핵, 평화계획을 제시했다가 50년대 김일성의 핵 주권, 56-57년 핵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준비한 논의가 나오고 그러한 맹아가 50년대라고 함. 이 시기의 논의를 볼 때, 그 때 보고 있는 북한의 핵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구갑우: 58년 미국의 핵 우산 설치 논의가 진행. 소련, 중국 포함해서 연합과학기술연구소, 핵 연구소를 만듬. 하지만 의지와 능력은 다른 논의임. 58년 보니까 북중조약에 의해 핵 우산을 받으면서도 핵 논의가 있었음. 연합연구소의 해체로 어려워짐.

 

김상배: 50년대에는 그렇다면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지도자들도 핵을 실행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구갑우: 50년대에 소련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껴 실행한 거의 유일한 나라가 스웨덴임.

 

마상윤: 49년 평화, 전쟁, 폭력사용까지 포함한 평화이야기를 하게 됨. 북한식의 평화개념, 한국전쟁 이후에는 달라짐. 프로파간다로는 싸우지만. 북한식의 평화개념, 한설야의 평화개념이 어느 정도 설명력을 갖는 이야기인가?

 

구갑우: 코민포름 문건을 보면서도 느낀 것 중의 헷갈린 것, 3세계와 입장이 너무 갈린다. 핵심 평화론은 계급평화론으로 가게 된 것이 당시의 형상화된 담론임. 계급평화론은 자신들의 사회주의적 본질이 평화를 갖고 온다고 보는 것인데, 다르게 표현하면 사회주의 북한의 평화론, 국내정치적인 제도가 평화의 원천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론을 한국전쟁 와중에도 계속 이야기를 함. 세력균형의 문제가 있는데, 공식적으로 802차 당 대회까지는 세력균형의 이야기. 그런데 2003년 정도에 오면 이라크 전쟁 관련해서 다시 불러오는 모습이 있음. 상황이 바뀌었다는 선언인지... 평화개념 자체가 갖는 모습 하나와 평화와 통일이 어떻게 맞물려서 가는지,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볼 수도 있음.

 

이헌미: 통일평화론도 민족주의와 연결되는데, 계급평화론도 민족주의와 연결되나?

 

구갑우: 연결됨. 현재적인 의미를 염두해두고..

 

하영선: 한설야의 평화의 마음은 잘 안 읽힌다. 한설야, 굉장히 순수한 사람처럼 묘사되었는데 파리를 갔을 때, 동시에 3월 김일성이 모스코바를 갔던 시기일 것임. 한설야가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김일성의 마인드에서는 분명, 평화대회의 의미는 전쟁을 하기 위한 명분으로서의 평화임. 평화를 위해선 제국주의 타도. 이를 충분히 한설야가 알았던 것인가? 당시 한설야, 46년에는 김일성과 다른 이야기를 했던 것, 2-3년 사이의 김일성과 가는 것. 그것을 그러면 대 전향인가, 이념적인 전향인가 살아남기 위해서 얹힌 것인가? 한설야가 소설가라고 한다면 그러한 내적갈등을 보여줘야.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었던가, 순수한 사회주의 지식인으로서 어떤 선택의 길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그야말로 같은 시기의 스탈린,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치열하게 전쟁을 해달라고 하고 있었음. 한설야는 그런데 순수하게 평화를 모색해보겠다는 평화운동에 간 것인데..그 모습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나의 기억은 이런 것이었음. 46-7년 미국 글들을 보면 당대 학자들의 absolute war에 대한 내용들뿐이었음. 45-50년의 핵의 세계에 대한 당시의 현실과 분위기가 오늘의 시각에서 과대 포장된 부분들이 일정하게 있는데, 하나만 쓰면 더 이상 전쟁이 안날 것이라는 논의를 세계적인 지식인들이 함. 결과적으로는 5만개를 만들고 평화는 오지 않았는데...한국전쟁 이전의 최소한의 해결책은 핵 억제? 그런 생각은 굉장히 어려웠던 것이 한국전쟁이 나고 굉장히 괴로운 것은 그 때 미국이 100개에서 시작하는데 미국은 1차적으로는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실질적으로 아시아 전선에서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함. 종전 될 때 쯤 400, 소련의 핵은 그야말로 지금의 북한 수준으로 가졌었고 북한을 커버하는 것은 거리가 먼 이야기였음. 재미있는 테마인데 더 들어가서 북은 북대로 북의 정치현실과 그 외곽단체의 지식인들 대표하는 한설야의 모습이라는 것은 하나의 비극임. 아니면 알고 치열한 정치공략적인 욕구에서 나온 행동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제 3의 모습이었는지가 드러나야 함. 한반도의 해석에서는 글로벌 채널인 세계평화대회는 매개로 한 것임. 한반도적인 핵, 그것에 대한 담론을 말을 붙이는 데는 조심스럽다. 40년대 후반의 한반도, 심지어 글로벌 핵현실은 49-50년 초 까지는 초보적이었고 거기서의 담론의 출발도 초보적인 것이었음. 평화지향론의 사회주의 개혁, 파리에서의 일들도 웃기는 계기가 되었음. 병행의 현실을 알고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 보여줘야 보는 사람들이 동의하면서 읽건, 북한을 하면서 읽던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듬.

 

구갑우: 김일성이 왔다 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한설야는 알고는 있었다는 것. 와서의 이야기가 자세히는 안 나옴. 굉장히 복잡함. 왜 김일성에게 붙었는가? 국내 순수한 지식인인가, 우회한 것인지..이론가로서의 능력은 출중하지는 않음. 김일성에게 붙은 것이 아닌가..

 

하영선: 황석영 스타일인가 고뇌하는 지식인이었을까?

 

구갑우: 최근의 제일 재미있었는 것은 한설야의 복권. 공식적인 이름을 다시 언급한 경우 거의 없는데 예외적으로 한설야를 다시 하기 시작. 전집을 재출간 하는 등의 복권되는 거의 유일한 인물. 소설사적으로 보면 김일성을 형상화해서 복권된 이유도 있을 것이고...

 

하영선: 소설, 주제는 좋은가?

 

구갑우: 마초 스타일. <대륙>은 한설야가 30년대 일본어로 쓴 소설이고 그것을 번역한 것인데 만주지역을 다루는 소설임. 찬양은 아닌데 왜 전향하는가 생각하게 할 수도 있음. 조금 더 복잡한 심정을 보려고 함. 두 번째의 문제는 북한이 들어야 할 부분인데 45년 전쟁이 끝난 뒤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당시 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보기 어려움.

 

하영선: 리딩이 많지 않다. 49, 담론의 중심에 있을 수 있지는 않음. 이승만 대통령 시기 남한의 처음 핵의 관심은 56년임. 처음으로 미소 핵 평화적 이용에 관심인데.. 57년 이를 받으러가는 상황. 초보적인 단계에서 갔음. 미국은 어차피 새 시장을 고르던지 아니면 뺏김. 구체적인 담론이 등장하고 큰 원자로 시작을 하지만 양쪽이 다 가시화를 하는 경우는 70년대임.

글로벌한 차원에서의 핵무기 개발사와 핵 담론 형성사들을 그 시대에 맞게 정리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그 수준의 바닥에 한반도의 핵무기 개발사와 핵 담론사들이 만들어져야 함. 이것들을 전쟁과 연관되어서 어떻게...493월에는 박헌영 등의 북한의 컨트롤 타워 이중적이었음. 한 쪽은 스탈린과 전쟁을 치루면서 평화공세하자는 것이었고, 59년까지는 평화공세를 계속 강화하려고 했음. 이를 한설야가 잘 알고 노력한 것인지..?

 

구갑우: 북한 내부, 코민포름에서도 갈등이었을 것이고 웬만하면 알았을 것. 전쟁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을 것. 세계평화를 위한 전쟁이 필요하다.

 

* 마상윤 - “민주주의의 전파와 수용: 현대 한국의 역사적 경험

 

손열: 민주주의로 하는 것인가 자유민주주의를 하는 것인가?

 

마상윤: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것임.

 

손열: 자유 민주주의 대 인민 민주주의로 받아들임. 여기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평화가 온 다는 것인데 저쪽은 반제국주의 민주주의가 와야 한다는 것임. 다른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인데...이러한 민주주의의 내용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가 있고 또 하나는 단계에서 오는 민주주의가 있음. JP 등의 이야기처럼 당장은 경제성장, 안보가 필요하고 이후 정치군사적 독립이 급선무고 그 다음에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단계론적인 민주주의가 있을 때 어떻게 연관이 되나?

 

마상윤: 강정인 선생님이 잘 설명. 민주주의가 완전히 유보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에 주력할 때, 국민들의 자치영역, 정치역량이 높여지게 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높여지는, 선진국의 민주주의 수준으로 갈 수 있지 않는가. 현재의 정치, 사회적인 여건이 미비되어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를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는 없다. 과도기적인 단계를 설정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제시.

 

손열: 김대중, 이광윤의 민주주의 논쟁. 이광윤의 아시아적 민주주의가 있다는 쪽과 DJ는 없다고 봄. 아시아 가치로서의 민주주의 비판, 김대중은 보편적인 민주주의가 있고 거기에 가야한다는 것임. 앞의 수사는 정치적으로 manipulation인데, 발전단계론에서의 민주주의는 보편적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 것으로 봐야할 것임. 지금 상황은 저 쪽까지는 못가니까 참고있다가 경제적으로 참고, 안보 확보된 이후에 민주주의 가자. 한국적 민족적 민주주의는 아시아적 가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

 

마상윤: 김대중, 자신의 인색, 진정성이 녹아있는 이야기인데.. 한국적 민주주의는 더 봐야하는데 강정인 선생님의 글에서 ..한국적 민주주의가 박정희 민주주의의 완결판이다? 민주주의라고 우길 수 있는 다른 형태라고 제시했는가? 이를 거치면 진정한 민주주의로 갈 것이라는 박정희는 하고 있지 않음. 70년대 후반도 민주주의 여건이 안 되어있다고 제시함.

김상배: 민주주의의 전파사, 민주주의의 담론 등 혹은 제도사인지? 70년대 한국정치사처럼 쓰일 수도 있으므로 좀 좁혀서 써야 할 듯.

 

마상윤: 민주주의 이해에 대한 것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을 듯. 민주주의 제도는 아님.

 

김상배: 담론의 진화의 차원이 아니라 대외적인 차원에서 볼 때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도 있음. 어느 차원까지 들어와야 하는지?.......

 

마상윤: 개인적으로는 미국/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봤는지 썼었는데, 궁금했던 것은 한국인들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다. 미국에서는 남한이 4.19 이후 5.16이 나왔는데 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함. 민주주의 들 끓었다가 쿠데타 이후 어떻게 이렇게 조용한가? 왜 한편으로는 쿠데타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지식인들 시기에 나왔는지 이해 못하겠다. 자신들도 개입을 할 수 없다고도 이야기하기도 함. 당시 한국인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고 싶음. 자료가 제일 문제인데 단순히 여론조사를 보는 것은 도움이 많이 될 것이지만 원하는 만큼 나타날지 자신이 없다. 미국자료도 종종 여론조사 등은 있는데 충분하지는 않음. 결국 얼마만큼 사람들의 마음속의 침투는 알 수 없지만 신문 등 반민주주의적인 사건들의 발생 등에서 어떤 기준으로 평가, 재단했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나.

 

하영선: 가령 민주주의의 map을 그린다고 할 때 처음의 담론 1-2의 두 가지 비판적인 견해가 있음. 이데올로기를 대체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고, 만약 더 추상적인 의미의 자유민주주의가 있으면 노재봉 선생님의 주장은 사실은 제 3의 프레임이어야 한다는 것임. 자유민주주의의 국내화가 되지만 이는 국민적 지원의 권리의 정당화가 되어야 한다고 붙인다면, 강정인 교수의 이야기의 박정희 민주주의는 1에 해당할 수가 있나? 1에 가깝다고 하면, 1, 2와 노재봉이 3으로 나뉠 수 있음. 노재봉은 그 와중에 쓴 것이고 강정인은 이후 학자로서 쓴 것인데 노재봉의 의견은 소수이지만 60년대 담론의 비판적 시각을 담당하였음. 담론 1,2,3이 중심그림이라면 이를 사건에 의해서 맺혀나간 것으로 정리한다고 하면 그림이 그려질 수 있나? 노재봉이 가장 소수일 텐데 파괴력은 가장 장했음. 당시 신문 등도 넘어서 123을 다 보여주는 문서, 데이터를 보여주기 위해서 믹스를 해야 할 것임. 우리에게 일종의 지적인 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재미있을 듯.

 

김상배: 이념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에서는 어떤 차이가 나는지? 이론적 구분과 달리 현실에서는 1,2가 다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음. 유형을 그렇게 본다면 현실태에서 그것을 분석할 때 combination이 있는지..?

 

마상윤: 이론적 다이어그램과 현실이 대비되어야 할 듯.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된 내용과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의 대비 필요할 것임.

 

하영선: 강정인 말고 1960년대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 논문은?

 

최근 ..함석헌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

 

좌우 이념투쟁의 시점. 나름대로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음. 임진헌 선생?

 

이헌미: 제도사, 사상사, 개념사의 접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구의 서구적 민주주의가 부적합하다고 할 때 그 제도적 현실의 한계 등 <사상계>의 논의에서도 드러남.

 

마상윤: Re-imagining democracy(2013)이라는 책에서 주로 서유럽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민주주의가 굉장히 정착된 정치제도로 이야기되었지만 18세기, 19세기를 거치면서 자신들도 만들어가면서 정의를 내려옴을 살펴봄.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을 보면서 사람들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과 민주주의의 실제가 어떻게 연결이 되고 차이가 있는가를 보고 local context가 중요하다고 논의함. 이 사람들의 두 번째 작업은 유럽의 변방, 궁극적으로는 비유럽 지역은 어떻게 되는지? 궁극적으로 뭔가 되는지. 한국도 이미지가 먼저 들어옴, 일본을 통해 들어온 민주주의의 이미지인데 현실에서는 어떻게 구현하려고 했는가? 더 치열했을 수도 있음.

 

김상배: 아시아 민주주의 등 context를 더 생각하면 재미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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