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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1899.4-1899.9)
 

2003-01-22 

98년 4월 세미나 기록


일시 : 1998년 4월 25일 (土) 오전 10시-오후 2시
장소 : 서울대 동원생호라관 3층 2회의실
참석 : 하영선, 최정운, 장인성, 신욱희, 김영호, 박명규, 안인해, 이성형, 김석근
독회내용 : 독립신문 1899년 4월-1899년 9월

 


 

보고사항


다른 작업
-독립신문도 현대어해제 정도는 작업을 해야할 것임
-스미토모건은 내년 2월 중 방일 예정: 이 떄 초벌 draft 정도는 가지고 가야할 것이거, 히라노팀은 일한문화교루 지원으로 방한할 예정임.

 

다음에 뭘 볼 것인가?
-개화에 대칭되는 언어구조를 봐야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듦
-그렇다면 최익현의 {면암집}(한글판 솔출판사)은 어떤가?
-{매천야록}이 구체성이 좀 더 드러나는 것 같음. 이것은 최근에 번역{교문사}이 나와 있음
-실학의 글들이 깊이가 있는 것 같음
-일단 개화에 대한 편견을 줄이기는 해야함. 다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나, 아니면 20세기로 넘어가야 할 것인가?
-{매천야록}, {면암집}, Koselleck의 책을 구해서 윤독하도록 함

 

주요토론 내용

중국의 양계초 등의 영향력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일보에서의 직수입보다는 양계초를 통해 들어온 것이 많은 듯함
-보다 실증적인 데이터를 제공하는 식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철학적인 얘기를 해주는 팀도 있어야 할 것임
-다소 엉성하더라도 실제로 우리의 것을 가지고 작업을 ㅎ봐야함. 그래야 역으로 문제가 분명해질 수 있음. 그러나 완전히 분업하는 것은 반대함. 프랑스도 이런 류(개념사, 또는 개념수용사 연구)의 팀이 있음

 

6월 1일부로 기자가 바뀜
-그러면서 당시 조선을 움직이는 핵심세력의 아이디어가 드러나지 않음
-조선이 황폐화함을 지적
-5, 8, 9일: 같은 얘기로서 개혁이 후퇴했다는 얘기

 

7월 22일자: 평화론
-법률로 국가간 관계를 규율하려는 의도를 비판함. 그러나 도의로 할 것을 제안하는데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음

 

9월 8일자: 군무론
-각 국의 군대제도, 국민개병제 등을 소개함

 

5월 12일자
-항상 부국강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문명하고 부강하게 된다고 얘기함
-국가에는 운명이란 없고, 인민들이 하기에 달려 있다고 함

 

5월 11일자: 청과 조선의 순치관계

 

6월 16일
-이 날짜의 논선의 사건은 1899년에 발생한 민란을 지칭하는 듯함
-6월에 들어 다시 논설이 급박해진 것은 잠잠했던 농민 문제가 다시 부각된 것으로 해석됨

 

4월 25일자 관보: 양자아문의 출범
-제정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당시에 가장 중요한 토지문제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는게 이상함
-이 관보는 재정확보를 위한 정부의 노력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지만, 신문에서는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별로 보이지 않음.
-아관파천 후 대한제국 시기에는 갑오개혁에서 왕실재정과 국가재정을 분리시켰지만, 황제권의 강화가 곧 국가의 강화라는 명분으로 다시 왕실의 재정을 확대하는 쪽으로 바뀜. 지방의 세금도 왕실 귀속으로 함. 따라서 그 부분과 관련하여 논의가 긴박하게 돌아갔을 떄인데, 논설에서는 등장하지 않음.
-고종과 관련이 없는 원론적인 얘기는 쓰지만, 왕실과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왕실 얘기는 직접 거론할 수는 없음.

 

경험이 있어서 강국의 힘이 무엇인가를 느낄 떄가 되었는데, 오히려 전통적인 대외관이 심정적인 측면에서 강화되는 것처럼 보임
-예> 순치관계: 중국이 조선을 얘기할 떄는 의미가 있으나, 조선의 입장에서는 얘기할 수가 없었음,
-그래도 우리가 기댈 곳은 청국이 아닌가? (일본, 러시아에 당하면서)
-독립신문에서 그런 사설이 나온 것은 심각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임
-청일전쟁으로 일단 청이 꺠져서 영향력이 약해진 후에는 청이 완전히 망하지 않는 것이 조선에 유리하다고 판단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국제정치학사 또는 사회사의 정립문제
-조정의 얘기, 황론이 아닌 시정잡배들이 하던 얘기를 향간 또는 여항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이 사회개념의 전단계 아닌가?
-1898-9년에 사회가 문헌에 등장하고, 1905년 경에는 요즈음의 언어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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