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福澤諭吉, <문명론의 개략>
 

2003-01-21 

96년 9월 세미나 기록


일시 :1996.10.5(토) 오후2시-5:00
장소 : 서울대 사회대 국제문제연구소내 세미나실
참석 : 하영선, 최정운, 신욱희, 정재호, 김봉진, 손열, 장인성, 안인해
독회내용 : 복택유길(福澤諭吉)의 『文明論之槪略』

 


 

주요토론내용


'상대적'이란 복선으로 글을 시작
-문명발달도 상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으로 『서양사정』에서 서양문명을 시급히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보임. 어디가 turning point인가?
(65년∼75년 사이). 이는 유길준이 개화의 등급 부분에서 얘기하는 톤과 유사함. 마루야마는 1장,10장을 읽고 그 후 다른 장을 읽을 것을 권유. 10장의 내용은 '일본의 목표는 독립이고 문명은 수단이다'.
-세 가지 정도의 문제가 제기됨.
① 왜 문명을 보는 시각이 상대화되었나?
② 양학자(문명개화론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데, 그렇게 나타나는 이유가 국내에 기반을 둔 전통론자들을 깨우쳐서 서양문명이란 다리를 건너게 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 즉 독자를 그 사람들로 상정한 것 아닌가? 이 책은 서양의 얘기보다 동양얘기로 서술되어 있어서 『동양사정』같은 모습임.
③ 일국의 독립이란 단계를 상정

 

상대주의를 강조하는 이유가 오히려 완벽한 의미의 서양화를 추구하는 것 아닌가?

 

심신의 드높음이 문명인데 그것을 얻기 위해 일국 독립을 해야함. 일국 독립은 서양으로부터의 독립. 따라서 그것을 위해서는 서양문명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 당시 상황에서 일본의 문명은 독립이라고 본 것이지만 goal은 아님. context를 고려한다면 전통론자와 양학론자 양측을 모두 공격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음. 그 양측으로부터의 견제도 상당히 느낀 것으로 판단됨.

 

정치체제문제, 개인의 권리, 국가의 독립 등에 대한 얘기는 다른 계몽론자와 크게 차이나지는 않음. 유교를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사유 속에 유학의 context가 섞여 있음. 즉 유교가 제거된 후 서양사상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양자가 나이브하게 혼합됨. 일본의 갈길. 국제의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것이든 상관이 없고 우리에게 맞는 것이면 그것이 좋은 것이라는 입장.

 

당시 지식인을 분류하면 전통주의자, 유학+기독교(나카무라 등, 기독교적인 유토피아의 미래 제시), 후쿠자와, 양학론자등으로 구분할 수 있음.

 

turning point는 명치유신임.
-서양사정을 쓸 때는 막부의 말단 관료였음. 따라서 서양문명을 곧바로 주장할 수 없었음. 명치유신으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됨. 그러나 한편으로 명치유신은 유교로서 정체를 확립하자는 통치이데올로기가 강화됐음. 당시의 존왕양이파도 곧바로 서양문명을 도입하자고 하지는 않았음. 즉 쉽사리 서양문명을 받아들이자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님.
-원래 goal은 서양문명임. 상대화를 한다고 하지만, 목표는 서양문명이라고 얘기함. 상대주의는 수사일 뿐임. 서양문명이 최고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시간범주만 고려하기 때문임. 다른 지역은 문명범주에서 제외. 즉 공간개념이 없음. 일본전통을 얘기하는 이유는 일본에도 훌륭한 것이 많으므로 그것을 바탕으로 서양을 받아들이면 된다고 안심시키는 수사임. 덕보다 지가 우선이라는 점 강조. 지금 덕을 얘기할 때가 아님. realist로 가기 위해 도덕을 제거하기 위한 얘기.
-여기서는 일국 독립을 위한 수단으로 문명이 상대화함. "인민독립의 기력이 문명이다."따라서 문명 그 자체를 상대적으로 평가한 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함.

 

상대화시키는 내용이 과연 수사인가? 오히려 수사를 쓸 필요가 없고 아무 얘기나 다할 수 있는 시기였음. 따라서 얘기를 하는데 전략을 쓸 필요가 없었다고 보임.

 

각 파벌의 세력관계에서 주장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분위기였음. 또한 무사적 전통이 있기 때문에 항상 전략적 고려가 개입되어 있어 여러 얘기가 혼재되어 있음. 그것을 뽑아내는 것이 관건이지만, 결국 결론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보면 그것은 일국의 독립. 역시 서구문명주의자이며 개화신사였음. 『서양사정』에서는 문명을 보다 더 상대적으로 정의함. 후쿠자와의 저작을 단계별로 구분한다며 여기서는 서구문명주의자의 모습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음. '효용'얘기를 계속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상당히 전략적 관점을 지니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함.

 

서양문명에서 들어온 것이 I(나)가 아닌가? 즉 문명의 내용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상대화함으로써 그것을 해석하는 주체에 대한 고려(자아개념)가 드러나는 것 같음. 그런 의미에서 근대인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 같음. 즉 주체의지자로의 파악이 가능하고 , 주체주의는 서양사상임. 서양사상에 관계주의는 없었음.

 

글이 자기만족을 준 output이었는가 에는 의문이 생김.
-사물의 문명과 정신의 문명 비교. 정신의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다고 얘기함(선도후기론).실제로 어떻게 정신의 문명을 통해 문명에 이를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은 떠오르지 않음.
-'사덕'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사덕은 유교적 덕목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부분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문명이 아닌가?

 

『문명론지개략』이후의 글들에서는 오히려 이런 고민들이 없어지고, 완전히 강병론자, 국권 확장론자로서의 글만 있음 .79년작 『민정일신』에서는 상당히 당시 정권세력에 만족하면서 부국강병론의 brain으로서 명치주역들과도 친해짐. 3부의 저작『국권론』등을 보아야 후쿠자와의 사고가 제대로 파악될  수 있음.


 

문명을 수단으로 본다는 의미에서 당시의 context속에서 서양문명론자라고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젊은 시절의 충격 속에서는 나이브한 서양관이 있었을 것임. 유길준은 서양사정과 문명론지개략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됨.

 

결론적으로 평가하자면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했음.
-이 책을 일본에서는 고전으로 평가하는데 우리의 경우 서유견문에 동등한 평가가 내려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선에 있어서의 『문명론지개략』을 쓰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이 전파연구모임의 취지일 듯.
-지금의 context는 다시 삼아주의(한중일)가 등장할 판이어서 유심히 봐야 할 내용이 많음. 탈아론 또는 아시아연대, 일본의 독특한 공간감 등이 잘 나타나 있음.
-일본의 정신사적 흐름이 면면히 드러남.

 

이런 위치에 있는 중국책은 어떤 것이 있는가? 동북아 삼국의 문명전파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자면 중국 것도 봐야 할 필요성.

 

다음 텍스트는 『조선책략』+국가전략에 실린 조선책략연구논문, 『대동서』등으로 잠정결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