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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사연구회 2018년 11월 정례모임
 

2018-11-24 

한국외교사연구회 201811월 정례모임

 

 

일시: 2018.11.24.() 3:30-6:00pm

장소: 동아시아연구원 (EAI) 대회의실

참석자: 하영선, 김봉진, 전재성, 이헌미, 신수정, 주연정, 노가연, 김호인

 

 

1. 논문 발제 및 토론

 

<사조선록 역주 4: 명사의 조선 사행록 3>, 은몽하·우호 편, 김한규 역 (소명출판: 2012).

- 주지번, <봉사조선고>

pp. 9-123

- 이헌미 발제

 

pp.124-238

- 신수정 발제

 

pp. 239-297

- 노가연 발제

 

pp. 298-357

- 주연정 발제

- 강왈광, <유헌기사>

 

- 김호인 발제

 

 

2. 토론 내용 정리

 

n 우리의 책 전체는 사대자소의 복합성을 다룸. ‘/외교 경제 안보/군사의 삼각형에서, 오늘 읽은 주지번의 1606년과 강왈광의 1626년에 삼각형의 각 축이 어떻게 다른가?

 

주지번, <봉사조선고> (1606): 임진왜란·정유재란 직후

 

n [/외교] 재조지은, 기자, 민충단 등의 키워드: 이 시기 재조지은이 새로운 유행어로 떠오르고, 그 후 200-300년 후까지도 조선은 명의 은혜를 기억하였음

-        /외교의 맥락이 왜·어떻게 가장 압도적인가?

 

n [경제] 조선을 위해 명이 전쟁을 수행, 경비를 조선이 갚아야 하는가의 문제

-        사대자소의 명분이 아닌 실리적 측면. ‘청렴외교도 여기에 해당.

 

n 창화외교

-        조선 초 1400년대에 본격화, 그러나 임란 전후로 톤이 달라짐. 정인지·성삼문 등이 참여했을 때의 사례와 비교해 보면, ‘일방적으로 당하지 말아야 한다’, ‘학문으로 꺾어야 한다는 기개와 자부심이 있었음. 반면 임란 이후의 창화에서는 그런 경쟁적 측면이 크게 드러나지 않음.

-        창화외교는 레토릭적 성격이 강함. 주지번의 사행 전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어전회의(대책회의, 사전 전략회의 격) 기록을 보면 주지번을 영접할 관원들이 명 사신의 문학적 능력에 대해 냉정하게 비평 (그들의 개인적 인품, 문학적 재능을 주로 이야기함).

-        <사조선록> 2-4권에 걸쳐 조-명 사이의 창화외교가 반복되었는데, 국제정치적 의미는?

-        술 외교문제

 

강왈광, <유헌기사> (1626): 무게중심이 명청교제기 문제로 이동

 

n -광해군-모문룡의 관계, 명이 후금과의 전쟁을 위해 조선에 군사를 요청하는 문제, 조선이 요동에서 온 난민들을 받아주는 문제, 반정 후 인조 책봉 문제, 명 장수인 모문룡을 견제하는 문제 등

 

n 강왈광의 예론 제기: 조선 왕이 국상 기간에도 예복을 입고 조서를 맞이할 것, 비단의 색깔 문제

-        예에 관련된 것이지만 기선제압적 성격.

-        삼각형에서 부분은 특히 정리가 필요함. 근대 국제정치학적 시각에서 사신 방문으로 인한 경제·안보적 문제까지 3개 축을 동시에 복합적으로 보아야 하지만, 예의 비중이 결국 가장 크기 때문.

 

n 사대질서에 힘을 실으려는 명의 태도를 보면, 조선이 명에게 그랬던 것과 같이 정체성에 대해 조선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고도 볼 수 있음.

 

n 파견된 사신 총 277명 중 25명만 문관이었고 나머지는 환관 등이었음

-        조선 쪽 기록을 보면 문사가 아닌 환관이 왔을 때는 (특히 임란 이후) 횡포·수탈의 문제가 많이 발생함. 이들은 막대한 뇌물(특히 은화 징색)을 받는 대신 조선이 원하는 방향을 들어주고 가는 경향. 강왈광은 예외적인 경우로, ‘재조지은의 논리 + 청렴의 덕으로 요동 유민과 모문룡 견제 문제에 대해 조선 정부에 압력을 가한 것. à , 재조지은을 예로만 갚는 것이 아니라 돈·안보로 갚아야 한다는 논리.

*한명기. 1997. “17세기 초 明使의 서울 방문 연구: 姜曰廣의 『軒紀事』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8: 33-55.

-        명이 어떤 인사를 보내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조선 왕의 정통성 문제과 관련 있었는가

 

종합·기타

 

n David Kang, Ji-Young Lee 등은 예·재조지은 위주로 일반화했으나, 우리는 단순명료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군사·경제까지 포함한 디테일한 그림을 그려야 함

-        쌍방의 사료를 모두 합쳐 조선중심-중국중심 시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n 조선-여진 관계: 중화체제의 하부시스템으로서 또 하나의 사대관계, 지정학적 중요성

 

n 임진·정유전쟁 이후 피폐해진 조선의 모습을 보았을 텐데 사회상에 관한 언급은 별로 없음. 타 사료들을 보면 분명 전쟁 후의 참상을 짐작할 수 있는데도 조선·명 정부 입장에서는 이념적으로 쓰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삼강오륜 행실도, 열녀전 등).

-        사료로 재구성하기도 어려운데 연구서만으로는 더욱 어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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