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한국외교사연구회 2018년 4월 정례모임
 

2018-04-21 

한국외교사연구회 201804월 정례모임

 

 

일시: 2018.04.21.() 3:30-6:00pm

장소: 한국고등교육재단 18층 회의실

참석자: 하영선, 김봉진, 최진백, 이헌미, 주연정, 노가연

 

 

1. 논문 발제 및 토론

 

<사조선록 역주 1: 송사의 고려 사행록>, 은몽하·우호 편, 김한규 역 (소명출판: 2012)

-        pp. 1~100 – 노가연 발제

-        pp. 101~200 – 이헌미 발제

-        pp. 201~300 – 주연정 발제

 

 

2. 토론 내용 정리

 

n <사조선록> 18종 중 특히 주목할 만한 자료

-        서긍, <선화봉사고려도경> (북송 末); 강왈광, <유헌기사> (명 末); 마건충, <동행삼록> (청 末)

 

n 본회 독회자료인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이하 <고려도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40동문 (발제에 미포함)

-        서긍이 고려를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역자의 해석에 대한 재고

 

n 동아시아 전통질서를 해석함에 있어 Fairbank는 문화적 동질성과 유교 규범에 주목하여 주로 중국과 동남방 국가들 간에 부합하는 해석을 하였다면, 신청사 학파는 힘의 논리에 주목하여 주로 중국과 서북방 국가들 간에 부합하는 해석을 내놓음. 우리는 이러한 이분법보다 심화된 분류법이 필요.

-        사조선록들을 보면, 조명관계에 있어서는 소위 창화외교나 예의·의례에 대한 서술·논쟁이 많은 반면, 조청관계 시기에는 이런 측면이 줄어듦

 

n <고려도경>의 중요성

-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온 조천록/연행록과의 아귀를 맞추기 위한 쌍방자료로서 중요

-        11-12세기 초 당시의 자료가 많지 않음. 려송복교 때 소동파·왕안석의 상소문이나 서긍의 <고려도경> 등을 1차자료로 삼고 중국정사 25사 등을 2차자료로 삼아 당대 정세를 복원해야.

-          1) 당시의 형세 분석 + 2) 당시의 국내정치 투쟁 + 3) 문화·심상적 요소

 

n <청명상하도>

-        <고려도경>과 동 시기, 당시 세계 제2의 도시로 번영한 카이펑의 청명절을 그린 그림

-        1127년 북송의 멸망을 앞둔 시점임을 고려할 때, 화가 장택단은 왜 카이펑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을까?

-        제작 시점에 관한 논쟁 북송 멸망 이후 그린 것인가?

-        갓 쓴 고려인(일행)이 등장 이 시기 송에게 고려의 의미는?

-        그림에 사람이 800명이나 등장하는데 여자가 한 명도 없는 이유는?

 

n 당시 송-, -고려, 고려-송의 구도를 수학적으로는 수량화하지 못해도 언어적으로는 유형화가 가능할 것. 당시의 형세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n -송 간의 무엇이 그렇게 동문적인 요소를 주었는지 파악할 필요. 려송복교도 동문의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음.

 

n 급변하는 시대 정세

-        1020~1070년 려-송 단교

-        1071년 려송복교: 복교는 되었으나 상업관계가 우선 복원, 사실상 수직이 아닌 수평관계에 가까웠음. 고려는 계속 요나라 연호를 사용.

-        1123년 선화사절단: 정식 조공-책봉 관계의 복원을 도모

-        1125년 북송이 금과 손을 잡고 요를 멸망시킴

-        1127년 정강의 변: 금의 공격으로 북송의 멸망

è  선화사절단이 파견된 1123년은 어떤 시점이었는가?

1)      요가 강성하고 송의 지위가 위태로워짐에 따라 對고려 지위 회복을 도모한 것?

2)      1125년 요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일시적인 국력의 회복으로 인한 자신감 상승? 그러나 북송 또한 1127년에 멸망함

è  송나라 휘종은 당시 형세를 어떻게 잘못 읽은 것인가?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