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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사연구회 2017년 12월 정례모임
 

2017-12-16 

한국외교사연구회 201712월 정례모임

 

 

일시: 2017.12.16.() 2:30-5:00pm

장소: 한국고등교육재단 18층 회의실

참석자: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김봉진 (기타큐슈시립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 김수암 (통일연구원 부원장), 김준석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김현철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손병권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최진백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연구교수), 이헌미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차태서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주연정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외교학전공 박사과정), 김유정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외교학전공 석사), 노가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외교학전공 석사과정)

 

 

1. <동아시아 천하질서와 한국의 생존전략사> 초고발표회

전재성 | 고구려의 제국 체제 정비와 대외전략: 광개토왕대 및 전후 시기*

김수암 | 648년 당 고종의 璽書에 나타난 국제정치: 7세기 동아시아질서와 백제의 대외전략상의 함의

이헌미 | 7세기 신라의 삼국통일과 한중외교

김봉진 | 장보고의 교역 네트워크와 동아시아 지역 질서

전재성 | 서희의 거란 외교와 고려 초의 대외정책*

하영선 | 려송복교의 국제정치학: 천하다국질서와 고려문종의 태평외교

손병권 | 1595년 조선의 신충일 건주여진 파견: ,여진,조선 간의 국제적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김현철 | 조선후기 북벌론의 전개와 대중국() 인식의 변화

(* 원고 제출)

 

 

2. 토론 내용 정리

 

v 향후 진행 사항

n 책 전체 제목인 <동아시아 천하질서와 한국의 생존전략사> 을 유념하여, 특히 서론과 결론을 target audience를 고려하여 작성

n 2017.2.28. 최종원고 제출 – 3월 학술회의 추진

 

v 김수암| 648년 당 고종의 璽書에 나타난 국제정치: 7세기 동아시아질서와 백제의 대외전략상의 함의

n 구당서의 <새서>는 문건 자체를 인용하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 있을 듯

n 백제라면 당,왜와의 관계가 주목이 되는 나라. 왜와의 관계, 예를 들어 백강전투 등도 다룰 것인가?

-        시기적으로 백강전투는 다루기 어려울 듯

-        수나라에서 돌아가던 왜 사신의 국서 탈취 사건 수와의 관계에 있어 백제-왜가 항상 우호적이지는 않았고 소원해지기도 했다는 점에 대한 정리가 동반되어야 함

-        이런 방면에서 일본학자들의 연구 참고 필요

 

v 이헌미 | 7세기 신라의 삼국통일과 한중외교

n 당이 취하는 다양한 전략의 유형들: 화친요구,정벌,압박 등 삼국간의 세력 재편에 대한 당의 대응 나당연합의 밀약은 왜 지켜지지 못하고 전쟁으로 갔나가 중요한 실마리가 될 듯

n 당나라 입장에서는 삼국이 나누어져 싸우는 게 좋지 않았나? 신라가 삼국통일의 뜻을 비쳤을 때 당이 우호적으로 보았을까?

-        640년 정도까지는 그랬으나 640년대 후반에 전환됨. 다양한 전략을 원용하여 영향력을 조절하였으므로 삼국분립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n 번속의 명확한 개념 정리가 필요함: 정벌-기미-회유-예치 순이라면 번속의 위치는 어디? 예치적 번속?

-         기미부주기미를 구분 기미의 간접통치 형태에서 기미부주는 수당 시대에 제도화된 형태.

-         국내적/국외적 기미/번속 만국공법에서도 조공국/번속/번방을 구분, 분명히 구분되는 인식이 있었음 그러나 통일되지 않는 개념이기도 함 현 중국학자들의 논의대로 백제/신라는 번속으로 위치시키면 안됨 그걸 우회적으로 깨려는 의도

n 명의 경우 조공국/번속에 위소를 설치하여 조공을 관리하였음

-         조선도 조공’, 여진,몽골,만주도 조공관계였지만 후자가 전자보다 가까운 관계

-         그 중에 몽골은 청나라와 대등 관계, 명으로부터는 임명됨

-         조선은 청사고에서는 <속국전>, 명사에서는 <외국전>에 수록청나라 때 속국/속방론의 확장

n 김봉진 교수의 조선 속국/속방론 논고 공유 예정

 

v 김봉진 | 장보고의 교역 네트워크와 동아시아 지역 질서

n 국가는 제도화 될수록 경직됨. 장보고가 있었던 당나라 때에는 지방 통제가 부실했던 반면, 장보고 사후 그와 같은 인물/네트워크는 다시 태어나지 않았음

n 장보고가 시대를 뛰어넘는 네트워크를 장악했다면 라이샤워 설명 대로라면 없어진 게 너무 허망하지 않나? 청해진-다자이후를 아우르는 네트워크의 거점,인맥이 마련된 것인데, 장보고 개인의 것이라서 사망 후 네트워크가 죽었다?

-         그에 대해서는 사후 추적이 필요함 장보고 사후 당도 신라도 망했고, 장보고와 같은 무역상들이 많이 존재했음

-         당시 한중일의 시공간 개념에 비해 뛰어난 시공감 개념을 가졌음에 spotlight – 장보고의 안목의 impact는 무엇이며, 장보고 사후 소멸되었는가?

-         예를 들어 왜구들의 transnational한 공간 개념에 비해, 적어도 해상에 있어 (한국)의 공간개념은 움츠러 들었음 대륙적으로는 조공체제만 해도 좁은 공간은 아님

n 한국은 대륙국가적 사고에 익숙함. 일본 쪽의 해양쪽 시각 연구와 평가가 충분치 않은 장보고 사례의 소개가 유의미함.

 

v 하영선 | 려송복교의 국제정치학: 천하다국질서와 고려문종의 태평외교

n 비슷한 시기를 다루는 전재성 논문과의 차이

-         전 교수의 논문은 페어뱅크와 로사비 중 이 시기는 로사비가 더 적합하다고 보는 반면 본 논문은 둘을 합친 천하다국질서에 초점

n 고려-송 관계에서 예치의 본질은? 전략적 언어로 재해석할 수 있는 것 (e.g. 소동파)? 현실주의,실리주의적 고려를 빼고 예치의 본질이 있는가? 현재의 언어로 설명한다면? 고려의 생존전략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n 당시의 operating system이 복합성이었다면 그것을 파악한 국가가 이득을 보았을 것. 19세기의 경우 서양은 하드파워적으로, 우리는 소프트파워적으로 대응해서 헛짚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음. 하드/소프트 이분법적으로 개념화를 하고 시작하면 결정론적으로 갈 위험이 있으므로, 본고는 3분법을 주장함.

 

v 손병권 | 1595년 조선의 신충일 건주여진 파견: ,여진,조선 간의 국제적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n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은 사교를 금해놨음을 알면서도 왜 조선과 통교하고 싶어 했나?

-         기존 답변들은 세 가지: 1) 건주여진이 해서여진을 격파하고 내부적으로 여진의 대표를 천명하기 위함, 내부적 정당성 2) 조선과 대등한 관계 3) 물자교류를 위해

-         여기서 1),2)가 중요하고 3)은 아닌 듯함. 중국과도 교류가 충분했기 때문.

n 누르하치의 조선에 대한 통교 요구: 다른 여진-조선 관계와 달리 건주여진-조선 관계는 매우 약한 조공관계라서 대등한 관계를 요구할 여지가 있었음

n 국제질서가 급변하는 시기에 누르하치의 복심은? 페어뱅크/로사비 한 시각만으로 볼 수 없음

 

v 김현철 | 조선후기 북벌론의 전개와 대중국() 인식의 변화

n ’(명분)으로서 북벌,  ‘’(효용)으로서 북벌, 그리고’(군사력)으로서 북벌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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