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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사연구회 10월 정례모임
 

2012-10-13 

2012년 10월 세미나 기록

 

일시: 2012년 10월 13일(토)




1. 주 텍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엮음, <중국정사 조선전 1>, 한서 조선전 (발제 : 김준석)


2. 보조 텍스트 




신채호, 박인호 옮김, <조선사연구초
>, 동재, 2003.
정인보, 박성수 정리. <정인보의 조선사 연구>, 서원, 2000.


3. 발제(발제문은 첨부파일 참조)


4. 토론 내용 정리


● 이헌미 코멘트


<중국정사 조선전> 중 반고의 '찬'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회원이덕. 반고는 좌장군(주전파, 육로), 누선장군(주화파, 해로)의 노선 중 어느 한 쪽 편을 든 것인가?

 

● 김현철 코멘트


중국이 고조선을 어떻게 정복했는가가 한서의 내용. 한나라는 외부 세력 2개의 부족을 이용해서, 고조선을 정복. 그 속에서 고조선의 내분이 일어남. 전쟁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드니, 반고의 찬이 들어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회유책이 들어간 것 아닌가. 몇 차례 원정 경험에서 나온 교훈 아닌가. 조선 정벌에 대한 한서와 사기의 평가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 이헌미 코멘트


중국정사의 경우, 위만조선을 중국사의 일부로 보고 있다. 반대로 위당 정인보, 단재 신채호는 위만조선은 조선의 역사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보는 듯.

 

● 김현철 코멘트


발제문에 제시된 삼한의 위치가 흥미롭다. 평양은 구체적 지명이 아니라, 항상 이동하는 수도의 이름을 의미. 현재까지도 평양. 패수에 대한 위치와 그 지명이 다투어지고 있다. 고조선의 실제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한나라의 원정을 재해석해볼 수 있다.

 

● 이원덕 코멘트


정인보, 신채호의 해석과 한서의 해석이 양립될 수 있을 것 같다. 즉 정인보, 신채호의 주장처럼 한나라가 정벌한 것은 번조선이라고 보고, 다른 지역에서는 조선이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

 

● 김준석 답변


특기할만한 상황은 진조선은 동호에 들어가서, <흉노전>에 포함되고 있다는 것.

 

● 이원덕 코멘트

 

재야사학자들의 입장은 신채호보다 더 나아간 것이냐? 그렇다면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가 있느냐?

 

● 권민주 답변


재야사학자들의 경우, 고지도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의견 증명을 하겠다. 그런 자료들이 종종 있음.

 

● 하영선 코멘트


위험한 불장난을 벌였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자료가 부족한 고대사에 잘못 발을 들이게 되면, 재야 사학자의 업적, 고대사 자료, 중국 정사 속에서 빈약한 사료를 두고 벌어지는 전투에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가 그 속에서-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새로운 것을 찾기는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동아시아 공간의 역사적 상상력, 사회과학적 마인드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느냐는 것. 전통 동아시아의 정치공간,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생기는 맥락 속에서, 그 정당성의 근거로 천하가 제시되었고, 천하와 변방의 전투가 벌어짐. 중심과 변방의 투쟁사라는 프레임으로 조금은 교통정리를 해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입장. 조선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국전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기열전의 경우, 중요한 위협 대상은 ‘흉노’. 상대적으로 조선전은 매우 분량이 적음. 중앙에 한이 있고, 지정학적인 위협은 흉노. 이는 지리적인 위협은 아님. 오랑캐에 대한 회유의 방식이 다 같지는 않음. 진한시대, 정복-화친이라는 선택지 사이에 제3의 선택지로서 회유책. 이는 일종의 중국의 천하질서 관리법 아닐까? 천하질서 속에서 조선을 어떻게 보았으며, 이를 어떻게 관리했는지의 맥락 정도를 우리가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정치 본연의 임무를 잊지 말자.

 

이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천하질서 형성기에 변방 다루기> 정도 일 것 그 당시의 변방 개념은 매우 애매했다. 중심부는 제후들을 중심으로 봉분을 했다. 주변의 공격은 간헐적이었으나, 중심을 직접 타격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공격하는 외부 세력에 대한 구체적인 이름이 없었다. 동주 정도에 와야 오랑캐의 이름이 고정됨. 춘추 5패의 맥락과도 함께 가는 것일 것. 그 속에서 변방에 대한 의식 역시 강해짐. 이후 천자제후의 봉건 시스템과 더불어 이적국가들에 대한 메커니즘이 정교하게 발달하기 시작. 그러면서 중심의 정치방식과 변방의 정치 시스템은 다르다는 식으로, 화이의식이 발생.

 

위만과 기자. 서주시절은 중국 본인이 헷갈림. 하지만 그 지방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생각. 그 때까지만 해도, 조선에 대한 관점이 중국의 삶 속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이 정도로 정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 김현철 코멘트


왜 여기까지 군대를 보냈는가? 여기까지 정벌하려고 했는가. 왜 4개의 군현까지를 설치했는가? 그런 정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있는가? 실제로 정인보, 신채호가 말하는 것처럼 현재 산해관 근처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흉노의 위협. 선비족. 조선족. 중국은 이들을 모두 유목민족이라는 프레임으로 인식한 것 아닌가.

 

● 하영선 코멘트


이야기를 듣다보니, 선진 시대의 변방이었던 오랑캐라는 맥락 속에서 조선을 봐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고고학과 사학과 정면으로 부딪혀 싸울 수는 없다. 선진시대의 인간들이 그 당시의 공간건설을 어떻게 했는지, 질서건축사의 시점에서 봐야한다. 질서건축사의 면에서 재구성.

 

만주가 300년 찬스.가 있었고 몽골이 100년의 찬스가 있었다면, 티베트의 찬스도 일본의 찬스도 있었다. 조선에게도 찬스가 올 것이다. 이를 대비하여 큰 그림 그려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다.

 

특히 반고의 회원지덕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정복-화친 사이의 제3의 길이라고 생각된다. 사대가 알아서 기는 것이고 화친이 이익에 기초한 개념이라면 그 사이의 길은 무엇일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페어뱅크는 Chinese World Order라는 표현을 통해 중국과 서양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신청사 팀들은 청의 역사 역시 서양과 다를바 없이 제국주의적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팀의 접근과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폭력의 관계가 작동하면서도, 명분적으로는 예에 기초한 보다 효율적인 천하질서가 운영되었다. 우리의 작업은 이것의 원형을 탐구해보는 것. 그리고 항상 우리의 목적은 한국의 신질서 건축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 역시 잊지 말 것.


현재 한국 역사학계는 복잡하다. 좌파의 시각와 우파의 시각이 격돌하고 있다가 포스트모던적 조류가 끼어들면서, 상호경쟁 중. 현재의 주류는 좌파 민족주의. 사회주의-좌파 민족주의-우파 민족주의-친일파. 사학계는 현재 이와 유사하게 배치되었다는 느낌이다.

 

● 김현철 코멘트


신채호와 박은식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에 대한 부연 설명. 이들은 항일운동을 하면서도 학술활동을 했으며, 실제 옛 유적지로 답사를 다녀옴.

 

● 하영선 코멘트


20세기 초에는 단재적 입장이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 21세기의 맥락에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동주 이용희 역시도 신채호의 저항은 옳다. 하지만 그러면서 내부적 개혁이 미루어지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 이헌미 코멘트


중국 정사에 편입된 조선사를 다른 역사와 같이 병렬해서 보면, 두 사람의 작업이 지닌 당대성이 잘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이들 글에서 드러난 근대적 시선을 상대화해볼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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