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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금창리' 이제부터가 문제 ;미-북 합의는 출발점일뿐 (1999월 3월 18일)
 

조선일보 

1999-03-18 

'평화체제구축' 아직 먼길


「한반도 3월 위기설」로 우리를 춥게 만들었던 금창리가 조심스럽게 봄소식을 전해왔다.


미국과 북한이 금창리 문제에 대한 협상과정에서 「3월 위기」의 긴장국면에 이르지 않고 일단 현장방문과 식량지원에 합의한 것은 양국의 국내현실과 관련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상-정치-군사-경제의 강성대국 건설을 21세기 정책목표로 삼고 있는 북한은, 협상과정에서 경제 목표를 위해 식량원조를 비롯한 경제적 지원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사상-정치 및 군사 목표의 추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현장방문을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8월말 북한의 다단계 탄도유도탄 실험 발사 이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회의 비판이 심화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페리 조정관의 정책 재검토가 진행되는 속에서, 미 행정부는 배수의 진을 치고 협상을 성사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과 북한이 금창리 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적 합의를 이룬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북 합의가 앞으로의 미-북관계와 남-북관계의 전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미-북합의가 미-북관계의 전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문제해결의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역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금창리보다 훨씬 확실한 문제였던 영변의 경우에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시작된 후 최종적으로 제네바 핵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2년이상의 기간이 걸렸으며, 이러한 긴 여정중에 94년 6월과 같은 전쟁직전의 긴장을 겪어야 했다.


따라서 금창리의 경우에도 최소한 5월의 첫번째 현장방문 이후 사태의 진전을 대단히 조심스럽게 점검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금창리 문제의 해결을 위한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탈선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이 원하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핵시설 의혹의 해소 및 장거리 미사일 개발 통제와, 북한이 원하는 강성대국을 추진하기 위한 정치 군사 경제적 목표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과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현 시점에서 쉽게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강성대국 구상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짜야하며, 북한의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정치, 경제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의 철수와 평화협정을 통한 군사관계의 개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의 심층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북-미 열차는 영변역에서 금창리역을 거쳐 또 하나의 종착역이 아닌 새로운 역을 향해 달려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금창리 문제와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위한 미국과의 지루한 협상을 진행하는 속에 남북관계의 본질적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은 탈냉전 생존전략의 추진이래 「통미봉남(통미봉남)」 정책에 충실해 왔으며, 섣불리 「통미통남(통미통남)」 정책을 모색하는 경우에 체제유지의 어려움에 직면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남측이 「외세와의 공조 파기」, 「보안법의 완전 철폐」, 「모든 통일애국 단체들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등의 선행 실천사항을 해결하면 하반기에 정부 당국간의 대화도 시작할 수 있다는 최근 북한의 제안은 우리정부의 희망적 해석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행 실천 사항에 무게 중심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는 행위 주체보다는 구조를 강조하고 있는 「냉전구조의 해체」를 넘어서서 행위주체와 구조의 동시적 변모를 모색하는 「평화체제의 구축」을 새롭게 구상해야할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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