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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연재] 한일관계 좌표와 진단> 21세기 군사협력
 

문화일보 

1999-03-01 

한국과 일본의 근대적 만남은 비극이었다. 올해로 80주년을 맞이하는 3.1운동은 이러한 비극의 절정이었다.


3.1운동 8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80년전의 역사적 아픔을 잊지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21세기 1백년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21세기의 한국과 일본은 19세기이래 국가중심의 부국강병적 만남에서 21세기의 국가, 초국가단위체, 하위국가단위체를 포함하는 복합단위체가 부국강병을 넘어선 복합적 만남으로 전개시켜 나가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21세기의 한·일관계가 19세기 이래의 근대적 잘못된 만남을 반복하지 않고, 21세기의 복합적 만남의 모습을 갖게 되기 위해서는 21세기 한·일간의 군사협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장 우선적 과제의 하나로 검토해야만 한다.


한·일 군사협력은 역사적 유산때문에 조심스럽게 진행되어 왔다. 지난 1994년 이래 비로소 한·일 국방장관회담이 매년 상호방문 형식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양국의 국방정책실무회의가 연례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 밖에도, 양국 해군은 연습함대의 교류방문을 실시하고 있고, 우리 공군과 일본 항공자위대간 직통선이 운용되고 있다.


이러한 한·일 군사협력의 21세기적 전개방향에 우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일동맹체제의 전개방향이다. 소련의 해체와 함께 본격화한 냉전질서의 해체속에서 미국과 일본은 1996년 6월에 ‘미·일안전보장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동맹’이라는 신안보선언을 하고 이에 따라 1997년 9월 ‘미·일방위협력을 위한 지침’(가이드 라인)을 개정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통제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고 확대하였다. 이에 따라, 자주국방과 한·미군사동맹체제에 기반하고 있는 한국의 안보정책은 불가피하게 한·일군사협력의 강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제적 요구와 국내적 신중성의 긴장속에 조심스럽게 증가하고 있는 한·일의 군사협력이 개별안보와 동맹안보뿐만 아니라 21세기 동아시아의 새로운 만남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동북아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정치적 신뢰구축, 군사적 신뢰구축, 군비통제, 신동북아 정치질서의 형성이라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일 군사협력의 명실상부한 출발은 정치적 신뢰구축에서 비롯돼야 한다. 이를위해서, 일본은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의 ‘일본위협론’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일본은 1995년말 ‘신방위력의 대강’과 새로운 ‘중기 방위력 정비계획’을 채택하고 연4백억달러의 방위비로 자위대의 질적 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1996년에 신안보선언과 1997년에 신가이드 라인을 발표하였다. 21세기의 새로운 위상 설정을 위한 일본의 이러한 노력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에 위협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면, 일본은 보다 능동적으로 과거를 청산하고, 이들 국가와 미래의 잘된 만남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한국과의 군사협력에서 정치적 신뢰위에 보다 구체적으로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려면, 일본 군사력증강의 비용과 의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미·일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넘어서서 ‘동북아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동북아 관련 당사국들과 공동으로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 한·일의 군사협력은 동북아의 군비증강이 아닌 군비축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한·일 군사협력이 21세기 동아시아 공생질서의 군사적 기반조성에 기여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하영선·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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