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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희망1999>김대중정부 '포용정책'과 동북아정세 대담
 

문화일보 

1999-01-01 

문화일보는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대북 포용정책이 새해 남북관계에서는 어떻게 반영될지,또 북한 지하의혹시설 해법을 둘러싼 남·북·미간의 논의가 올해 한반도 주변정세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전망하는 전문가대담을 마련했습니다.


▲하영선 교수=지난해 정부의 대북정책을 돌이켜보면 초기에는 햇볕정책,최근에는 포용정책으로 표현되는 정책들이 추진됐습니다.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지만 기본방향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승주 교수=햇볕정책을 포용정책이라고 바꾼 것은 잘 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포용정책은 영어의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를 번역한 것으로 상대방과 관계·교류를 가지면서 상대방을 고립시키지 않는 정책을 뜻합니다.


포용정책을 펼쳤을 때 북한이 당연히 이렇게 나오겠지, 예측하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남북 관계개선,교류확대,한반도 평화유지와 궁극적으로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느냐 하는 차원에서 봐야합니다.


▲하=정부가 생각하는 포용정책과 한교수의 개념에는 편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교수께서는 정·경 분리정책의 성과가 중장기에 걸쳐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정부는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포용정책의 단기적인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정·경 분리가 포용정책의 핵심 요소냐 하는 것에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정·경 분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정책입니다.과거 미국은 소련에 대해 인게이지먼트정책을 쓰면서 정·경 분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한교수가 장관으로 계실 때는 채찍(강경)과 당근(온건)이 같이 있었지만 포용정책은 정치와 경제의 균형감이 부족합니다.역설적이지만 명실상부한 정·경 분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교류는 교류대로 하면서 정치와 군사적 대응은 당당하게 추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정부가 당근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1백% 다 거기에 의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당근을 쓰는 정도와 시기의 문제라고 봅니다.


▲하=올해 동북아시아 정세의 가장 큰 현안은 북한 지하의혹시설 문제라고 봅니다.98년 한해동안 국제통화기금(IMF)에 날을 지샜다면 99년은 북한문제로 지새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습니다.이 문제의 핵심고리는 금창리지역에 대한 미국의 방문이나 사찰인데 이를 둘러싼 북·미 관계가 어떻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한=3가지 측면에서 봐야 된다고 봅니다.첫째 이슈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93,94년에는 문제 자체가 명확하게 정리됐습니다.지금은 94년 당시와 달리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협정 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애매합니다. 94년 때보다 더 마무리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 설혹 미국쪽에서 금창리 시설을 방문,사찰하더라도 그것이 핵시설일 가능성이 있다 없다 하는 의문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93,94년 당시는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가 막 출범한 상태에서 정책을 입안하는 단계였고, 한국 정부와 밀접한 협의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클린턴대통령이 두번째 임기에 들어가 있는데다 스캔들에 휩싸여 하원에서 탄핵 소추를 받은 상황입니다.따라서 (북한에 대한) 결정적인 활동을 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세번째로는 한국이라는 요인이 있습니다.94년 때는 한국이 미국보다 강경한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도리어 미국이 강경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저는 내년에 전개될 상황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그러나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리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일 것입니다.


▲하=저는 사태가 조금 어렵게 갈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올봄에 전개될 사태를 상정해보면 이슈 자체가 제네바 핵합의가 준수,이행되느냐의 문제이므로 일괄타결이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제 생각에는 궁극적으로 폭격이나 전쟁으로까지 진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더라도 일정 정도의 위협 외교수순을 걸을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는 국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차가운 것 같습니다.단순히 강경·온건,공화당·민주당의 차이가 아니라 제네바 핵합의의 준수,이행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강경·온건을 넘어서서 보다 폭넓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오판의 결과로 상황이 급박해질 수도 있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국 북한 한국 각각의 입장에서는 제네바 합의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유지하는 것이 각자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보는 것입니다.협상과정에서 문제가 악화될 수 있지만 이는 의도와는 다르다고 봅니다.근본적인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기보다는 협상으로써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하=더 중요한 것은 미국 입장에서 금창리 지하 시설 문제를 제네바합의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금창리의 지하공사가 아직 시작단계이므로 시간여유가 있다는 시각이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이행하느냐 마느냐 하는 현재의 문제인 것입니다. 때문에 미국이 금창리문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반면 북한도 궁극적으로는 U턴을 하겠지만 상당부분까지 대치상황으로 끌고갈 것입니다.따라서 이처럼 양측간의 상황이 악화되면 한국 정부가 펼치는 포용정책과 괴리감이 커질 것입니다.파국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양측이 U턴하기까지 과정에서는 혼란이 예상됩니다.


▲한=그렇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우리 정부가 잘 대처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일괄 타결 방식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 보지요.최근 나오는 일괄타결 논의는 94년 일괄타결과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한=일괄 타결도 그 사이즈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정부가 제안하고 있는 것이 어느 사이즈인지 모르지만 모든 협상은 일괄타결의 성격이 있습니다.범위를 어떻게 잡느냐,또 그안에 뭐가 들어가느냐가 문제인데 제 생각에는 가능하면 큰 패키지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하=이슈의 성격이 매우 중요합니다.94년에는 미국과 북한 양측이 정치·경제·군사분야에서 패키지형태로 진행됐습니다.94년 당시 지미 카터전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미국이 군사적 응징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북한측에 전한 것이 일괄타결하는데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한=제네바 합의를 일괄타결이라고 보는 이유는 핵문제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개선,남북대화,경제제재 해제 등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그렇다고 모든게 다 들어가 있는 게 아닙니다.예를 들면 북한이 요구하는 주한 미군 철수 문제,북·미 평화협정 문제,또 우리쪽이 요구하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그때의 일괄타결과 지금의 일괄타결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리걸리스트(법리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이는 합의된 부분 중 하나를 체크하기 위해 다시 협상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문제에 대해 미국과 북한의 견해가 정반대입니다.금창리 문제해결이 제네바 합의 이행에 필수적인 요건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협상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또 금창리 문제는 앞으로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라고 얘기하지만 94년 당시에는 핵물질 재처리가 시급한 상황이었고 북한이 원자로를 건설중에 있어 시간적으로 쫓기고 있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지금 사정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하=KEDO에 참여하고 있는 일본측은 북핵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십니까.


▲한=일본은 미국의 설득에 의해 KEDO에 참여했고 북핵 문제가 일본 자체에 위협을 준다기보다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핵확산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북한이 다단계로켓을 발사한 것을 보고 경악했습니다.특히 일본 국민의 여론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일본은 과거 미국과 한국에 보조를 맞추는 데 중점을 뒀지만 지금부터는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입니다.


▲하=그럴 경우 우리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국제적 동의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한=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나가기는 힘들 것입니다.인게이지먼트정책을 채택하든 안 하든 우리가 무리하지 않는 한 일본과 미국이 우리 페이스에 맞춰야 된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이 북한문제에 대한 1차적인 반응은 강경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우리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일본에도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러시아와 중국은 어떤 자세를 취할까요.


▲한=러시아는 국제회의를 통해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국내 경제사정이 어려워 여기에 관여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중국으로서는 이해관계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한반도 평화유지이고, 둘째는 북한이 안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셋째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핵확산을 저지하는 것입니다.때문에 중국은 4자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반도 안정,평화유지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중국으로서는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오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탈냉전 이후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서방과의 화해 노력이 계속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지난해 9월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헌법 개정 등을 보면 그렇습니다.


▲한=포용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이나 틀은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어떻게 하느냐 문제인데 정·경 분리 원칙에는 융통성을 가져도 좋을 듯합니다.가장 큰 관심은 북한 경제난과 식량사정인데 우리와 국제사회가 두가지를 해야 합니다. 우선 인도주의적 지원을 계속하고 북한의 경제 자생능력을 제고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그러기 위해 우리와 일본 미국 EU 등을 포괄하는 컨소시엄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우리가 이니셔티브를 갖고 인도주의적인 지원에서는 적극적으로 국제사회를 동원,조직하는 게 필요하고 또 가능합니다.


▲하=교류협력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어느 입장에 있든 크게 반론의 여지는 없습니다.추진 방법에 편차가 있을 뿐입니다.포용정책이 단기적인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면 너무 조급하게 추진될 위험성이 많습니다.김정일체제의 관리능력이 회복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교류협력 활성화는 21세기 북한주민들 삶의 개선이라는 장기적인 포석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현실적 포용정책의 신중한 추진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북측에서 발생할 경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정리=공영운·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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