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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강성대국’對 ‘햇볕’
 

조선일보 

1998-09-23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한 이후 한반도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 의회는 대북 지원 예산의 삭감을 통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견제하기 시작하고, 일본 정부는 미국의 전역미사일방위(TMD) 구상에 공식참여를 선언하면서 대북 방어 및 억지용 군사력의 증강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강성’ 골격은 혁명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새로운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의 지속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미 의회와 일본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미사일 대국의 길에 들어선 북한에 대한 대응방식에서 한­미­일이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속에, 과연 어떠한 대북정책이 바람직한가 하는 어려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의 심층적 의미부터 파악해야 한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이후 대부분 논의가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준을 평가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한 속에, 북한 스스로는 「광명성 1호」가 새로운 김정일체제의 앞으로 나아갈 길인 「강성대국」의 신호탄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강성대국」의 방향이다. 북한은 김정일체제의 21세기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강성대국」의 핵심 내용으로서 사상과 정치의 강국, 군사의 강국을 우선적으로 들고, 다음으로 경제의 강국을 들고 있다. 「강성대국」을 위한 불패의 군사강국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나라의 형편이 아무리 어렵고 고난의 행군을 열백번한다고 해도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서는 추호의 양보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확고부동한 의지」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강성대국론」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의 논리에 기반한 경제의 강국보다, 혁명의 논리에 기반한 사상과 정치의 강국, 그리고 전쟁의 논리에 기반한 군사의 강국을 중시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이 현재의 청사진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한, 자본의 논리가 혁명과 전쟁의 논리를 우선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 「햇볕론」의 핵심내용은 정경분리에 기반한 대북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따뜻함을 지속적으로 북한에 비치면, 북한이 혁명과 전쟁의 논리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고 자본의 논리라는 가벼운 몸매를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이다. 그러나 북한의 「강성대국론」의 혁명과 전쟁의 논리는 외투가 아니라, 북한체제의 기본 골격이므로, 이를 벗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햇볕론」의 한계는 명백하다.


그렇다면 「햇볕론」 대신에 「바람론」이 대북정책의 대안으로서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그러나 대북정책의 기본 틀로서 작동하고 있는 제네바 핵합의와 4자회담의 틀을 깨고 다양한 제재조치를 통해서 「북한 길들이기」를 시도하더라도, 북한은 여전히 「강성대국」의 길을 재촉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위험요소로 남게 될 것이다.


○맞부딪치면 위기


따라서 북한의 「강성대국론」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위기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성대국론」의 21세기적 비현실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북한 미사일의 정치­군사적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개별적 그리고 다자적 방어 및 억지체제의 마련이 이루어져야 하며, 다음으로 혁명의 논리에 기반한 사상과 정치의 강국 모색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불안정을 증대시키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대북 경제협력은 21세기 한반도관리의 차원에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강성대국론」과 우리 정부의 「햇볕론」이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끝까지 추진되는 경우에 한반도의 위기 가능성은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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