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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북정책의 함정
 

조선일보 

1998-03-18 

○무관심속 4자회담


자연의 계절변화에는 어김이 없다.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찾아들고 있다. 그러나, 경제의 계절은 좀처럼 따뜻해 질 조짐을 보이고 있지않다.오히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는 대규모의 기업부도, 정리해고를 통해 보다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우리의 체감 경제온도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IMF한파속에서, 제네바에서는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추위를 극복하고, 봄을 맞이하기 위한 제2차 4자회담이 새정부가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열리고 있다.


한반도의 봄을 위한 남북대화나 4자회담이 기왕에는 지나친 기대와 좌절을 거듭하면서 필요이상으로 관심 대상이 되어 왔다면, 이번 4자회담은 상대적인 무관심속에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한파의 극복을 위해 우리의 모든 관심과 노력이 경제회복에 집중해 있는 동안, 우리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충분한 논의와 검토없이 성급하게 추진되는 경우에, IMF한파속에서 북한한파라는 복병을 만날 위험성이 높다. 새정부가 4자회담을 포함한 대북정책을 새롭게 추진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피해야 할 두개의 커다란 함정이 있다.


우선, 실질적 남북대화에 대한 낙관론이다. 새정부는 4자회담과 남북대화의 병행추진을 기대하며 추진하고 있다.이에 따라서, 새정부는 4자회담을 계속 추진하되, 이와 병행하여 남북특사교환, 정상회담추진, 남북공동위 가동을 성사시키겠다는 것이다.


○성급한 「직접대화」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실질적 대화의 조건이다. 북한은 대화의 상대가 반외세 자주원칙에 기반하여 외세중시 정책이 아닌 동족중시 정책을, 반북대결 정책대신에 연북화해 정책을, 전쟁 정책대신에 긴장완화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자유로운 조국통일논의와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대화의 조건들이 단순히 병행 또는 후행조건이 아니라 선행조건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반외세 자주원칙을 각종 문건및 회의에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새정부가 21세기의 위정척사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반외세 자주정책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남북대화가 제한적­형식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있어도, 포괄적­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이러한 현실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한 정책구상과 추진은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예는 지난 2월 참석하였던 베이징의 남북해외학자 통일회의에서 북한의 남북대화 전문가들이 가장 관심있게 묻는 질문이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새정부가 주한 미군철수문제에 대해 얼마나 유연성을 보일 수 있는가 였다는 것이다.
두번째 함정은 교류협력에 대한 낙관론이다. 새정부는 남북한간의 정치적 화해, 군사적 긴장완화, 평화체제 구축문제를 쉽게 합의하기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경제교류와 사회­문화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북한한파」 경계를


그러나, 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명확하다.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대방과의 공식적, 전면적 교류협력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비공식적­부분적 교류협력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새정부가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유지의 문제이므로, 북한의 일본인처 모국방문과 같은 상징적 효과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새정부가 새롭게 추구하여 보려는 대북정책은 이러한 두개의 함정을 조심스럽게 피해서 마련되어야 하며, 충분한 검증없이, 낙관적 현실분석위에 성급한 정책을 해서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경우에 우리는 IMF한파에 못지 않는 북한 한파를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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