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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외교부도」 방지책
 

조선일보 

1998-02-13 

○주변 열강 적극 활용


국제통화기금(IMF)의 시대가 우리로 하여금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은 우리 삶의 국제정치적 성격이다. 우리 삶의 경제적 기반인 기업, 노동, 금융이 세계적 기준을 내재화하지 못하면 붕괴하거나, 아니면 국제관리 하의 구조재조정을 겪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더욱 심화되어 나갈 것이며, 따라서 전통적 의미의 「안」과 「밖」, 그리고 「국내」와 「국제」의 구분은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21세기의 대표적 흐름이 「국내의 국제화」이며, 동시에 「국제의 국내화」라고 한다면, IMF의 시대에서 보는 것처럼 「안」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밖」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읽고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이 시급하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이러한 과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경제적 삶의 IMF시대에 뒤따라서 외교와 통일의 국제관리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외교 또는 바깥다툼의 첫번째 과제는 주변열강의 활용이다. 한반도가 19세기 중반 이래 근대국제질서의 틀 속에서 살게 된 이후 미­소­중­일의 끊임없는 영향력 속에서 활용을 하기보다는 활용당하는 역사를 살아왔다.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는 미­소 중심의 질서에서 미­일과 중국이 협조와 갈등을 계속하는 질서로의 변화를 겪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체제 속에서 한반도는 21세기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상당기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는 미­일체제와의 긴밀한 제휴를 일차적 기반으로 삼되, 동시에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을 품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탈냉전 이후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는 러시아를 섭섭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 공간외교 펼칠때


이러한 노력은 어설픈 「불륜의 국제정치」가 아니라 세련된 「활용의 국제정치」라는 안목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소박한 의미의 자주외교, 등거리외교, 세력균형외교를 넘어서서 철저한 전략적 사고 위에 서서 21세기의 세력판도를 미래적 시각으로 전망하고, 이에 따라 신뢰성의 기반 위에서 「활용의 국제정치」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21세기 한반도의 삶은 세력활용을 기반으로 하되 이를 넘어서서 「새로운 공간의 외교」를 추진할 때, 비로소 주변열강에 둘러싸인 동북아시아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주변열강의 활용과 함께 상상력의 국제정치에 기반을 둔 지역화와 세계화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이제까지 정치구호로서 추진해 온 지역화와 세계화를 진정한 의미의 지역화와 세계화로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목표를 단순한 공간의 확대나, 19세기 이래의 국제화가 아니라 21세기의 복합화 현상으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개인화­지방화­근대국가화의 기반 위에서 지역화와 세계화는 추진되어야 하며, 동시에 지역화와 세계화 없이 근대국가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구주의적 민족주의를 통한 자주적 세계화의 길을 걷지 않고서는 21세기에 실질적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21세기 한반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줄 세번째 바깥의 과제는 통일이다. 신정부가 김영삼정부가 겪었던 「햇빛론」과 「바람론」의 혼란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북한을 북한답게 읽을 줄 아는 안목을 하루빨리 키워야 한다. 김정일이 지난해 10월 당총비서직에 취임한 이후에도 북한의 기본정책방향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다.


○북 변화가능성 커


따라서 통일전선에 기반을 둔 북한의 대남정책이 유지되는 한, 단기적으로는 「햇빛론」이나 4자회담 또는 6개국선언 등은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다만 북한의 내재적 요인에 의한 변화가능성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이를 위한 21세기적 한반도운영구상이 보다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신정부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바깥다툼의 3대과제를 얼마나 상상력 풍부한 전략적 사고로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우리는 제2, 제3의 IMF시대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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