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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북의 마음」 똑바로 읽자
 

동아일보 

1997-12-10 

국가경제의 부도위기 속에서 대통령선거를 눈 앞에 두고 한반도문제를 다루기 위한 남북한 및 미국 중국 등 4자회담 제1차 본회담이 제네바에서 열렸다.


당면하고 있는 국가경제의 어려움을 가장 힘들게 겪어야 할 국민은 분노의 시선을 일차적으로 현정부와 대기업에 돌리고 있으나 동시에 오늘의 위기를 충분히 예고하지 못한 전문가집단에도 보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한반도문제도 문제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면 또 하나의 위기로 치닫게 될 것이다.


제네바 본회담의 기본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입장을 제대로 읽어내야 할 것이다. 김일성의 3년상이 끝난 후 지난 10월 당 총비서직에 공식 취임한 김정일은 「개혁 있는 개방」과 같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으며, 다만 탈냉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3중생존전략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여 가시화된 성과를 시급히 얻어내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 총비서로서 김정일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기본방향은 미국과 일본 등의 국제자본주의 역량을 활용하여 무너져 가는 국내의 경제기반을 재구축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동시에 통일전선전략에 기반한 기존의 대남정책을 고수하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의 이러한 정책방향 속에서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공동제안한 4자회담을 미국과 일본을 활용하여 국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모양 갖추기 또는 징검다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4자회담은 우선 만남의 형식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4자회담을 원하고 있고 한국은 남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4자회담을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남북한이 만나는 4자회담을 희망하고 있으므로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자가 한반도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형식적 만남이 아닌 실질적 만남의 형식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으로, 4자회담은 만남의 내용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4자회담 본회담의 의제가 일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긴장완화를 위한 제반문제」로 단일화되었으나 이러한 잠정적 합의가 실질적 단일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의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뼈저리게 체험한 바와 같이 남북한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 언술체계의 상이성 때문에 「평화」 또는 「긴장완화」라는 용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내용을 남북한 불가침선언, 북­미 평화협정, 한반도 군비축소, 주한미군 철수로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서 보다 유리한 일괄타결을 위해 북­미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를 지속적으로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오늘의 경제위기를 자초한 정책 결정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정부는 북한이 4자회담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정책노선을 택할 수도 있다는 낙관론 대신에 기존의 정책노선을 견지하리라는 비관론 위에 서서 미국 중국과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동시에 일사불란한 국내 공조체제를 구축한 위에 북한이 새로운 정책노선을 모색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장기대책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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