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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신유럽 안보질서와 동북아
 

중앙일보 

1997-05-30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16개국과 러시아가 지난 27일 상호 관계협력과 안보에 관한 기본협정에 서명함으로써 1980년대 중반 옛소련의 고르바초프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탈냉전의 변화속에서 빠른 변모를 겪고 있는 유럽안보질서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마련했다.


기본협정은 NATO국가들과 러시아가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유럽의 공동안보를 함께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관계의 기본원칙,제도적 장치,논의 주제,군사적 조치,그리고 협력의 범위와 한계 등을 중심내용으로 삼고 있다.


○공동안보 방향 잡은 유럽


이번 협정의 단기적 중요성은 NATO의 확장이다.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외교정책의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는 관여와 확장전략의 유럽적 투영으로 NATO의 확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이에 따라 NATO는 오는 7월의 정상회담에서 체코·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 옛사회주의 국가들을 신규가입국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NATO의 확장은 장기적으로는 근대 이래 유럽안보질서의 기본원리와 구조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초국가적 중앙권력의 부재속에 독립적인 개별국가를 삶의 기본단위로 하는 유럽 근대국제질서의 성립 이후 유럽안보질서는 근대국가들의 독립적인 개별안보와 세력균형을 위한 군사동맹을 통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유럽안보질서도 유럽국가들의 개별안보와 함께 전후 세계질서의 주도국이었던 미국과 도전국이었던 소련이 각자 구축했던 NATO와 바르샤바라고 하는 군사동맹의 틀속에서 짜여졌다.


그러나 NATO국가들과 러시아의 기본협정 서명으로 과거의 적대 동맹국들이었던 동구국가들이 NATO에 가입하고 러시아가 NATO와 긴밀한 협조속에 유럽의 공동안보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면 유럽안보질서의 기본틀은 근대 이래의 개별안보와 군사동맹에서 탈근대적 공동안보의 방향으로 한걸음 다가서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동안보는 상대방의 안보를 보장하는 위에 자신의 안보를 추구하려는 개별안보와는 달리 상대방의 안보를 자신의 안보 일부로서 함께 추구하고,적의 공격에 대해 사후적으로 집단적 방어를 모색하는 집단안보와는 달리 정치·군사적 신뢰구축 등을 통해 적의 형성을 사전적으로 막으려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및 유럽국가들의 이러한 노력은 단기적으로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의 국내외적 불만,주변 유럽의 불안정성,NATO회원국들간의 상대적 국가이익 갈등 등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나 장기적으로는 탈근대적 성과를 거두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안보질서가 근대적 자기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안보에 기반한 신유럽안보질서로 새로 태어나려는 역사적 변모를 겪고 있는 속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반도가 속해 있는 동북아의 안보질서다.


○근대적 틀속의 동북아


동북아 안보질서는 신유럽안보질서의 탈냉전화 내지 탈근대화의 추세에 비해 근대적 틀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다.동북아 국가들은 ‘북한붕괴 위험론’ ‘중국 위협론’ ‘일본 대국론’ ‘미국 역할 변경론’ 등과 같은 근대적 안보위협에 직면해 개별안보와 세력균형 차원의 동맹 형성이라는 근대적 안보관련의 발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 군사질서의 이중구조화가 유럽과 동북아에서 진행되는 속에 유럽의 탈근대지향 신안보질서가 동북아의 근대지향 안보질서와 비교해 보다 효율적으로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는 19세기의 역사적 체험과 유사하게 21세기적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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