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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이한 「3각관계」
 

조선일보 

1997-01-09 

○한­미­북의 함수


북한의 잠수함 사건이 「마무리 아닌 마무리」 단계를 거치게 됨에 따라 한­미­북의 기이한 3각관계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는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전망하면서 입체적이고 장기적인 한반도 구상을 미국을 포함한 유관국들과의 긴밀한 협조속에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선 4자회담을 위한 3자설명회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버려야 한다. 우리 외무부는 북한 외교부가 발표한 잠수함 사건에 관한 성명에서 「조선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유관측들과 함께 힘쓸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4자회담에 대한 긍적적 자세로 보고, 3자설명회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그동안 취해 온 대남정책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은 유관측의 중심적 상대로서 배제되어 왔으며,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 중요한 변화의 징후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3자설명회는 어디까지나 미­북 고위급회담과 경제지원을 성사시키기 위한 북한의 양보 카드이므로 모양갖추기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잠수함사건이라는 암초를 일단 벗어난 한­미­북 3각관계의 새로운 전개는 4자회담이 아니라 미­북 고위급회담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우에 미국은 한국을 달래고 북한을 길들이는 중심축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기이한 3각관계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서 우리가 맞이하게 될 현실은 미­북관계의 완만한 진전과 남북한관계의 정체라는 악순환이다.


○남북관계 정체우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미­북 고위급회담의 전개과정과 내용이다. 이 회담의 기본 목적이 제네바 핵합의의 계속적 이행을 위한 것이라면, 북한은 핵개발능력의 과거를 유보하고, 현재와 미래를 포기하는 대신에 미국과의 경제, 정치 및 군사관계의 개선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보다 구체적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능력을 통제하고, 북한을 길들여서 동북아의 안정을 추구한다는 목적으로 북한과의 점진적인 관계 개선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이러한 현실속에서, 우리 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남북한 관계개선이나 4자회담의 실현이전에 기이한 3각관계의 형성 속에서 진정한 남과 북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입체적이고 장기적인 한반도 구상과 이를 가시화할 수 있는 실천전략의 마련이다.


남북한 관계개선과 4자회담의 실질적 현실화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미­북 고위급회담을 남북한의 복합적 만남을 마련하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이 한반도 7천만의 이익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단선적 한미 공조체제를 뛰어넘는 복합적 한미 공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주민의 이익을 포함한 한국의 한반도적 이익이 미국의 정부, 의회, 언론, 학계, 기업, 사회단체의 동북아적 이익과 연계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한­미 공조체제의 강화와 함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같은 다자적 접근의 활용이다. 북한의 정치주도세력은 심화되는 비효율성으로 인해 체제유지를 위한 다자적 협력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의 복합적 만남을 위해서는 에너지분야 뿐만 아니라 식량, 경제성장, 기술, 환경, 인력 개발 등의 영역에서 한국이 사실상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다자적 접근의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복합적 공조체제로


마지막으로 기이한 삼각관계의 만남이 진정한 남북의 만남으로 풀려나가기 위해서는 최근의 한총련사태나 잠수함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북한의 잘못된 대남 통일전선전략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의 모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의 체제적 건강성을 시급히 강화하고, 동시에 북한의 이러한 전략이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한다는 점에 대한 국제적 공동인식과 대처방안을 마련함으로써 북한 스스로 새로운 생존전략을 선택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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