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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좌담] 「4자회담」­「미·일신안보 선언」 진단
 

동아일보 

1996-04-18 

◎미·일 대북 실리노선… 한국과 공조 깨져/「중국 끌어안기」 등 새로운 방향모색 시급/한국 주도 「다자안보체」 구축 일 군사대국화 견제해야/북 「회담」 당장수용 어려울듯… 끈질긴 설득노력 필요


□참석자


정진위 연세대 교수·정치학

서진영 고려대 교수·정치학

하영선 서울대 교수·정치학


한반도와 동북아 주변 정세가 숨가쁘게 변화되고 있다. 1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양국은 북­미대화와 한반도 평화문제의 분리원칙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제의를 천명했다. 미국과 일본은 17일 동북아에서의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 강화를 골자로 한 신안보선언을 발표했다. 이같은 움직임이 동북아 질서개편과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 등을 전문가 좌담을 통해 진단해 본다.


정진위 교수〓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이 제의한 4자회담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봅시다. 4자회담의 골자는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갖자는 겁니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 1차적으로 남북한 당사자간에 합의를 하고 이를 미국과 중국이 보장하는 2+2회담을 제의했었습니다.


서진영 교수〓이를 두고 정부가 견지해온 남북한 문제의 남북당사자 해결 원칙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저는 이를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우리의 탄력적 대응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최근 판문점에서의 무력시위를 통한 북한의 정전체제 무력화기도에 대한 대응이자 정전체제를 대치하는 새로운 체제 구축을 위한 정부의 대안 제시라고 봅니다.


하영선 교수〓한미정상회담 결과를 정리한 공동발표문(제주선언)내용은 크게 북­미간 대화와 한반도의 평화문제 분리원칙 및 4자회담 제의로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은 남한을 평화협정의 체결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다 군사분야의 상시적인 대화채널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그 상대를 미국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자극 가능성


여러 정황으로 볼때 4자회담이 북한측에 당장 수용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따라서 4자회담의 성사여부에 연연하기 보다는 이를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는 차원에서 어떻게 중장기적으로 추진해 갈것인가에 논의가 모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정교수〓이번 제주선언을 계기로 미국은 대북접촉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통령선거 이전에 북한과 공동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려고 하겠지요. 일본도 북―미관계 개선이 남북관계 개선에 병행해야 한다는 원칙이 무너진 것을 구실로 대북접촉을 진전시키려 할 겁니다.


서교수〓남북기본합의서는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남북한이 노력하도록 돼있으나 우리는 지금까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하교수 말씀처럼 4자회담을 우리의 기본입장으로 삼아 꾸준히 추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미 북­일 관계개선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북­미 북­일 관계개선은 남북관계 개선과 연계돼야 한다는 원칙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교수〓한미정상회담이 제기한 세가지 이슈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먼저 북―미관계 개선은 이번에 남북대화와의 고리를 공식적으로 끊게 됨으로써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겠지요. 두번째,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미국이 북한과 별도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대목은 준수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북한이 강경책과 유화책을 모두 동원해 집요하게 미국과 군사적 대화채널을 모색하고 있으니까요. 세번째, 4자회담 문제는 남북한문제를 정치군사적으로 몰고 가려는 북한의 전략에 대응하는 우리의 대안으로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정교수〓지역안보장치가 없는 동북아시아는 탈냉전시대에도 여전히 냉전기류가 감도는 지역입니다. 4강 체제에서 탈냉전시대가 되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반면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요. 특히 일본과 중국은 군사대국을 꿈꾸며 군사력를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7일 발표된 미일 신안보선언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서교수〓미소대립이 무너진 뒤 4강이 새로운 세력균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과의 신안보선언으로 새로운 안보협력체제 구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신안보선언에는 미일 안보협력체제의 기반위에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갈등관계에 있는 중국을 견제해 동북아에서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는 다시 중국의 군사대국 움직임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미간 안보동맹체제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돼야 한다고 봅니다.


○관여정책 가시화


하교수〓미일 신안보선언은 94년 이래 클린턴 행정부가 추구해온 「관여와 확대(Engagement & Enlargement)」정책의 구체적 가시화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일미군의 활동에 대한 일본의 지원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는 미일신안보공동선언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 군사 영역에 있어서도 미국과 일본의 파트너십을 공식 천명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교수〓미 일 신안보선언은 미국이 동북아지역에서의 역할을 일정부분 일본에 넘겨주겠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일본의 안보군사적 역할이 강화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일본이 과거에도 그랬듯이 스스로 통제력을 잃는데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주도로 다자간 안보협력체를 구성하는 것이 동북아지역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중국도 군사력 증강에 앞장서고 있지 않습니까.


서교수〓남방삼각구도와 북방삼각구도가 대립되는 냉전시대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에서 미일 신안보체제 구축은 새로운 판짜기의 시도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한 미 일의 새로운 삼각구도는 러시아 중국 북한의 결집을 초래, 신냉전 질서를 구축할 가능성도 있어요. 이같은 고착된 세력구도가 형성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4자회담제의는 한국의 외교적 역량을 발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교수〓미 일 신안보선언, 중국의 부상 등 동북아의 새로운 세력재편 속에서 한국은 구한말 「조선책략」을 지은 황준헌의 고민을 되풀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결국 문제해결의 핵심은 각국의 힘을 정확히 읽고 우리의 상대적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마도 우리는 오른쪽 가슴에는 미국과 일본을 끌어 안고 왼쪽 가슴에는 중국을 끌어 안는 양면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끌어안는 힘의 크기는 상황의 진척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요. 한편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를 위한 노력은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를 지니지만 실현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절차가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정교수〓우리나라는 한마디로 홀로서기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미국이라는 우방과의 관계 속에서 안전보장 및 경제성장을 이룰수 있었지만 탈냉전시대를 맞아 안보와 경제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고차원적 외교노력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교수〓힘든 상황이나 낙관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외교적 역량의 강화가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변화는 국제질서, 유동적으로 전개되는 동북아지역의 세력재편, 남북한 관계 등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다단계 적응이 필요합니다.


하교수〓우리의 외교정책은 냉전시대 1차원 외교에서 탈냉전시대를 맞아 2차원 외교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잡하게 전개되는 세계질서 및 동북아질서의 재편은 3차원적 4차원적 외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각 개별국가에 대한 외교적 대응도 그러한 큰 틀속에서 이뤄져야 단기적 대응에 따른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당분○당분간 통미·봉한


정교수〓탈냉전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남북한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하교수〓남북관계 분석과 전망은 북한이 처해 있는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이후 미국과 서방국가와의 관계개선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설정하고 이를 일사불란하게 추진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이 동안에는 대남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방과의 관계개선이라는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결국 북한은 대남정책 수정을 포함한 또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서교수〓북한은 당분간 큰 변화없이 남한을 배제한채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통미봉한정책」을 고수할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남북관계 교착상태는 일단 계속될 것으로 보이나 4자회담으로 드라마틱한 돌파구가 마련되는 상황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남북 당사자간의 대화라는 남측 요구와 북­미협정이라는 북측 요구를 동시에 담아낼 수도 있는 것이지요.


하교수〓형식적으로는 4자회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북­미협정이 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요.


서교수〓물론 북­미관계정상화가 되려면 남북간 한미간의 어떤 합의를 전제해야 하겠지요.


정교수〓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남북관계의 핵심은 무엇보다 전쟁위험입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안한 북한이 지역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는 것은 긍적적입니다. 북한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북정책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구요. 미일 신안보선언은 한국이 유심히 지켜보아야 할 대목입니다.〈정리〓김세원·정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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