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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대담] 북미 경수로합의 평가와 과제
 

중앙일보 

1995-06-15 

◎“KEDO내 한 미 조율이 관건”/북한선 「미국주도 역할」로 해석할듯/상업·실용적 대북 접근법 모색해야/인권·미사일 등 미 요구 북 충족 여부가 앞으로의 변수


□대담=하영선 서울대교수·외교학/길정우 민족통일연 연구위원


대북 경수로 지원과 관련한 콸라룸푸르 북―미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그 합의내용과 의미·평가 그리고 향후 전개등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일각에선 북한의 핵개발내지 체제위기 극복 시간을 버는데 뒷돈만 대주는게 아니냐,미국으로 하여금 두개의 한국정책을 공식화시킨게 아니냐는등의 의구심과 우려·불만도 일고있다.중앙일보는 관계 전문가들을 초청,북핵문제를 진단하고 향후 남북한및 미국의 상호관계 전망을 듣는 기회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길박사=북―미간 합의가 이뤄진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이번 협상이 열리게 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실제 경수로는 북핵 문제의 일부분이고,북핵문제는 한반도 비핵화라고 하는 한국정부의 궁극적인 정책목표의 한부분입니다.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선 미국·일본도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합의는 5∼10년이상 지속될 문제의 첫 고비를 넘긴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아직 불확실한 요소가 많이 내포돼 있습니다.이번 협상이 타결됐다고 해서 경수로지원으로 상징되는 북핵문제가 계속 성공적으로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는 셈이지요.

우리는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미국및 남북한간의 전략적인 3각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고려해야 합니다.또 이번 합의문이 기존 관계의 본질적 변화를 예고하는 출발점이 아닌지도 따져봐야 할 때입니다.


▲하교수=이번 북―미합의를 평가하려면 미국과 남북한의 입장이 최종합의문에 얼마만큼 반영됐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북한은 탈냉전시대를 맞아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꾸준히 추진해왔습니다.제네바 기본합의문도 이런 맥 락이지요.


○남북우호 성급한 판단


미국은 북한의 핵동결을 추구해 왔습니다.콸라룸푸르 합의는 미국의 이같은 목적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달성됐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입장에서는 그동안 주장해온 한국형 경수로와 우리의 중심역할이라는 원칙이 완전히 관철됐다고는 보기 힘듭니다.한국의 역할에 대한 유보사항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과연 북한이 자국의 에너지 프로그램을 적대관계에 있는 남한에 일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만일 우리정부가 발표한대로 북한이 우리의 중심역할을 인정했다면 그것은 대남 적대관계가 우호관계로 전환되는 정책조정이 이뤄졌다는 뜻인데 그렇게 해석하기엔 아직 이릅니다.북한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의 「경수로의 설계와 기술을 중요시하지만 어디서 제작됐느냐에 개의치 않는다」는 발언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는 북한이 「이번 합의문을 통해 미 국의 주도적 역할을 확보했다」고 해석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길박사=제네바 합의문에 모호한 점이 많아 경수로회담이 진통을 겪게 됐다면 이번 콸라룸푸르 합의문 역시 각국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협상 당사자들을 비판하자는 뜻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이제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전면에 부상하게 된만큼 북한과의 협상 못지않게 KEDO내에서 한미간의 협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우방이라고 해서 의견을 조율하는 협의만 있는게 아님은 물론입니다.상 반된 이해관계를 협상을 통해 타결해야 할 경우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교수=이번 합의가 정말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재조정을 의미하는 커다란 변화라고 간주할 수 있는지,혹은 북한의 기본노선 변화로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결론적으로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됩니다.


▲길박사=같은 생각입니다.북한이 현재 갖고 있는 최우선 목표는 김정일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지요.체제유지가 전략적인 목표라면 핵문제나 경수로지원은 전술적인 수단이라고 볼수 있습니다.다시 말해 북한의 정책은 우선순위가 뚜렷하 게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따라서 그들이 보인 전술적 유연성과 실용주의적 태도는 궁극적으로 체제유지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하교수=합의문 문안에 나타났듯이 북한이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거부하면 경수로 지원은 다시 난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예컨대 북한이,한국이 경수로 제작을 맡아 주문자 생산방식(OEM)으로 제공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설계·시공·사업관리등에 대해 미국의 실질적 보장을 요구하면 다시 지원과정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북 체제보장 요구 확실


▲길박사=한국이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과 재정분담을 연계시켰다면 이같은 함정을 상당히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역할이 보장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재정부담을 확실히 약속해 버린 것은 국제관례에서도 벗어나는 실수입니다.더구나 상대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말을 바꿀 수 있는 북한인데 말입니다.경수로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정치적으로 체제보장을 받으려고 할게 분명합니다.김계관이 콸라룸푸르에서 평화협정 운운한 것은 앞으로 북―미간에 추후 논의될 일정을 시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교수=북―미관계 개선이 남북관계 개선과 어떤 함수관계를 갖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장기적으로 북―미 관계개선이 남북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될 경우 한국이 단기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북―미 관계개선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


또 우리정부는 경수로 문제가 타결돼서 남북관계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없이 경수로사업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길박사=북한은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북―미 관계개선을 우선시 하고 있습니다.또 이것이 단기적으로는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관계 개선을 등한시하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교수=북한의 생존을 궁극적으로 미국이 보장할 것인가 하는문제와 관련,미국도 전제조건은 있다고 봅니다.미국은 핵동결과 인권·테러·미사일 수출문제등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행동해줄 것을 북한에 요구할 것입니다.상호 요구조건이 얼마나 상응하느냐에 따라 사태진전 양상이 달라지겠지요.


▲길박사=미국의 대북 정책에 뚜렷한 철학이나 청사진은 없습니다.물론 현재 가장 중요한 목표는 비핵화입니다.미국이 북한체제의 생존을 정책목표로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이번 합의의 성격은 남북한·미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모두 KEDO에 떠넘긴 양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KEDO가 부대시설 지원등 미해결문제를 본격논의할 경우 큰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규모가 크고 기술과 상업적 이익이 걸려 있는 데다 정치적 함수까지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KEDO와 북한간 협의과정에서도 북측의 조선설비회사가 어떤 역할을 할지 미지수입니다.골칫거리가 될 지도 모르지요.특히 이번 합의 내용은 남북간 직접 대화를 가능하면 회피하게 하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따라서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의 직접 접촉이 가능한 지는 불투명합니다.앞으로 협상을 통한 문제의 마무리를 위해 치밀하고도 적절한 대비책이 필요합니다.


○철학없는 미 대북정책


▲하교수=미국은 향후 경수로 건설과정에서 정부차원의 개입을 점차 줄여나가는 방편의 하나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PC)같은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길박사=우리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정치논리를 줄이고 상업적·실용적으로 경수로 문제에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또 경수로나 핵만 보는 근시안적 접근방법에서 벗어나 북―미,북―일 관계까지 고려하는 종합대책이 필요합니다.

남북관계도 다차원적으로 접근해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특히 미국에 장기적인 대북정책 청사진이 없으므로 우리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미국을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교수=일부에서는 북한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면 남북 신뢰구축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의 유연한 대응이 북한의 강경노선을 부추길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북한은 북―미관계개선을 통해 성과를 얻으려 노력할 것입니다.여기서 기대했던만큼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인식한 뒤에야 남북관계 개선을 심각히 고려할 것으로 보입니다.이때 남북관계는 그간의 선전적 차원과 다른 실질적 만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이에 대한 대비도 지금부터 해나가야 함은 물론입니다.<정리=김성진·조홍식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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