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대담] 제네바 이후/한미관계/새 남북관계에 미 활용 잘해야
 

조선일보 

1994-10-20 

◎표면적인 긍정효과 과신은 금물/합의내용 차분히 심층분석 할때/「탈냉전」 맞는 입체적 사고 필요/우리 대북정책 합리성 세울때/주변국 연계 북한변화 유도를


□대담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길정우 민족통일연 정책실장


○한국개입 장치마련


▲하영선=미­북 제네바 합의는 표면적으로 세가지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북한핵의 동결, 미­북관계개선, 그리고 남북관계 입니다. 표면적 내용으로만 본다면 정부에서 홍보하고 있듯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할만합니다. 그러나 합의문에 담긴 심층적인 구조를 살펴보면 그것은 다름아닌 북한의 생존전략입니다. 탈냉전의 세계질서와 동북아구조 속에서 북한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하는 북한의 전략이 담겨 있고 그 핵심은 미­북 관계개선입니다. 북한의 생존전략은 대개 세가지입니다. 핵개발을 포함한 국내역량을 강화하고 미국등 선진 자본주의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이루되 남북관계는 더이상 진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중 현재와 미래의 핵동결을 약속, 국내역량부분을 다소 양보하는 대가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대화재개 등을 명문화 하기는 했어도 개선쪽으로 선회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앞으로의 정책 마련을 위해서는 이번 합의내용을 보다 심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길정우=이번 제네바 미­북회담 타결은 국제적으로는 북한의 NPT복귀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조치 이행을 이끌어냈으며,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이행을 명문화함으로써 지금까지 미­북간에 이루어져오던 핵협상에 한국도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남북대화만을 통한 핵문제 논의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앞으로 한­미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눈과 판단을 통해서만 북한을 보아왔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회담을 통해 미국은 직접 북한을 보게됐고 나름대로 북한을 이해하고 접촉하는데 어느정도 자신감을 얻었다고 봅니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접촉을 통해 비록 위험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협상을 통해 대미관계개선을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미­북간에 조성된 이해의 깊이가 앞으로 관계진전에 중요한 작용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인권문제 거론될듯


▲하=제네바합의 이후의 최대 이슈는 미­북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 차이입니다. 미국과 북한은 이제 협상에의해 합의를 도출하는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남북관계는 그동안 합의가 없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본질적으로는 「선전관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미­북관계가 진전돼 나가는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의 「국내역량」과 관련된 부분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북한에대해 개혁을 요구한다거나 인권문제등을 거론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과정에서 미­북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세가지 생존전략중 국내역량강화와 미국 등과의 관계개선이 상충하는 경우 그 조절이 쉽지않을 겁니다. 이런상황에서 미­북관계의 진전속도가 남북관계의 속도와 병행한다면 한­미관계는 조정이 비교적 용이하겠지만 미­북관계가 남북관계를 훨씬 앞서가는 이중구조가 형성된다면 문제는 복잡한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충수」 조심해야


▲길=미­북관계와 남북관계의 속도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가 이를 억지로 연계시키려들 경우 한­미관계에서 「자충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두 관계의 병행강조로 한­미공조에 또다른 마찰을 자초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번 합의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미동맹관계를 비집고 들어와 공조체제를 와해시키려 할 것입니다. 이를위해 대미­대남평화공세를 집요하게 전개할 것입니다. 이점이 우리가 한­미관계에 새로운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나친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핵문제가 남­북한과 미국의 삼각구도에서 해결될 문제이지만 한­미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도 국내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가면서 미­북관계개선의 속도를 조절해 나가리라고 봅니다. 북한 또한 급속한 관계개선을 저지하는 국내적인 억제요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미­북관계 개선과정에서 미국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그 속도를 조절하는데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합니다.〈7면에 계속〉


〈6면서 계속〉 미­북관계를 남북관계에 연계시키려하기보다는 어렵더라도 남북대화의 분위기를 마련하고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우리의 국제적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에게도 심리적 안도감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하=미­북관계 개선속도와 남북관계 개선속도에 차이가 날 때 우리가 겪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우리 희망과 편차가 생기고 그 편차가 심해질수록 한­미간에는 공조보다 갈등이 내재할 것입니다. 더구나 미­북 국교정상화까지 이루어지면 주한미군의 성격규정과같은 본질적인 문제들이 제기될 것입니다.


미국이 남북한 등거리정책까지 취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한­미­북간의 게임법칙의 변화는 상정해야합니다. 미­북관계가 진전되는 최근의 상황을 놓고 일부에서는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한다」는 반응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진보적 반미」와 「보수적 반미」간의 묘한 결합모습도 보입니다. 감정적인 대응은 물론 자제돼야 합니다. 그보다 이제 달라진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숙고해야합니다. 남북관계의 개선, 나아가 동북아의 이해조절 메카니즘을 창조하는데 있어 우리가 미국과 협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부터 관계개선


▲길=지금까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주된 관심은 체제의 불확실성을 줄여 나간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안정이 곧 한반도의 안정이라고 인식해 북한의 총체적 투명성을 높여나가고 나아가 북한을 국제사회에 동참시키겠다는 방향에서 대북정책을 펴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봅니다. 다만 관계개선에 있어 경제 정치 안보(군사) 부문이 병행하지는 않고 우선 북한측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경제부분이 앞설 것이며, 그 다음에 정치­안보의 순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미간의 긴밀한 협의를 거칠 것은 분명합니다.


○미선 북참여 선택


▲하=미국의 대북정책은 그들의 세계정책중의 한 부분입니다. 소련이 무너짐으로써 거대한 위험요소가 사라진 현재 미국이 국제사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 위험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지역분쟁, 핵확산, 러시아의 권위주의 정부로의 환원, 미국경제의 건강도 약화 등 네가지입니다. 북한의 경우는 지역분쟁과 핵확산의 두가지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즉 이번 미­북합의도 북한을 고립화 시킬 것이냐, 국제사회에 참여시킬 것이냐 하는 정책적 선택에서 참여쪽으로 끌고 온 것으로 봐야지요.


○한국 단독으론 한계


▲길=미­북관계진전에 대응해 우리가 미국이외의 주변국가와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역시 기존의 한­미관계를 새로운 방향에 맞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 용이하다고 봅니다. 남북대화의 돌파구를 열고 핵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가 북한을 안정속의 개혁으로 유도하는데 있어 미국의 역할은 불가결의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 혼자 스스로 할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해야합니다.


▲하=북한의 내부변화를 유도하는데에는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가들이 효과적입니다. 북한이 국제화나 개혁을 통해 내부변화를 일으키면 이는 남북관계의 변수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하나 우리가 미국을 활용해야하는 분야는 동북아 집단안보체제의 구축입니다. 지금 동북아에는 기존의 4강체제가 허물어진 반면, 새로운 메커니즘은 등장하지 않은 미묘한 시기입니다. 여기서 집단안보성격의 구조가 이루어지면 우리도 일정한 몫의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길=이번 미­북합의로 우리는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풀어가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탈냉전시대에서의 한­미관계를 정확하게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같은 이해는 작년 한­미 양쪽에 신정부가 수립됐을 때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놓쳐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대북관계에 있어 미국이 우리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때문에 우리의 대북정책은 국제사회에서 이해할 수 있는 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하=미­북관계 개선에 따라 남­북한과 미국간의 기본구도가 변화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앞으로 한­미관계를 양자적 평면적 시각으로 파악하는 것은 지양돼야 합니다. 전세계, 아­태지역, 양자, 국내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입체적 사고로 외교를 보는 훈련이 필요하며, 이러한 구조속에서 한­미관계를 파악할 때 미국의 영향력을 잘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정리=김인·통한문제연구소〉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