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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반도 신질서」의 과제
 

조선일보 

1992-02-21 

○「남북합의서」 발효


현대세계질서의 주도국가들이 탈냉전을 넘어서서 탈근대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구축을 위한 노열을 기울이고 있는 속에 남북한은 뒤늦게 탈냉전질서의 가능성을 맞이하고 있다.


남북한은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지난해 12월 5차 회담에서 채택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선언」,「정치군사 교류협력 3개 분과위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발효시켰다.


그러나 남북한은 합의한 문건들을 발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핵심적 조항에 대해서는 여전히 상당한 해석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은 한반도의 진정한 봄을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3대 실천과제을 풀어나가야 한다.


가장 시급한 한반도 신군사질서를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의 조속한 실현,불가침선언을 보장할 수 있는 군사적 신뢰구축,그리고 공격용 무기체계의 감축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한반도의 남쪽이 이미 비핵화된 현실에서 북한의 핵정책은 더이상 효과적인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작동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부작용을 심화시킬 위험성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 기존 핵정책의 과감한 전환을 실천해야 한다.


다음으로 남북한 기본합의서에 불가침선언을 보장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군사적 신뢰구축조항을 하루라도 빨리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의 본격적인 신군사 질서는 군사적 신뢰구축을 기반으로 공격용 무기체계의 감축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가능하게 될것이다.

전세계적 차원의 신군사질서는 이미 군축의 단계를 넘어서서 신안보체제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이 한반도의 신군사 질서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군비경쟁을 계속하는 경우에 남북한 모두 21세기 신세계질서의 낙오자가 될것은 확실하다.


신한반도 질서의 두번째 실천과제는 화해질서의 정착이다. 남북한은 기본 합의서에서 형식상으로 화해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화해의 구체적 실천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질서는 회담과 협상이전에 국내개혁을 필요로 한다. 북한은 현재 소련이 중심이 되었던 국제적 기반의 붕괴,국내경제적 기반의 약화,군사적 기반 유지의 어려움,사회주의의 쇠퇴에 따른 이념적 기반의 혼란이라는 4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화해질서의 정착


북한은 이러한 4중고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체제유지 전략으로서 1차적으로는 일본 미국 등의 자본주의 선진국가와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다.


북한은 2차적으로 조심스럽게 체제유지를 위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는 북한이 체제유지가 아닌 체제개혁을 위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게 될때에 비로소 이루어지게 될것이다.

북한은 김일성의 92년도 신년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직까지 적과 동지라고 하는 전투적 이분법 사고의 기반위에서 남북한 관계와 국제관계를 명문화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남북한 관계와 국제관계를 새로운 이념적 기반위에서 바라다 볼 수 있을때 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질서가 시작될 수 있으며 한국의 탈냉전적 그리고 탈근대적 사고와 만나게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속에서 남북한은 21세기의 주도세력이 되기위한 새로운 정치관계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를 위한 세번째 실천과제는 교류협력질서의 정착이다.


북한은 국내경제여건의 지속적인 악화와 함께 체제유지에 부작용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내에서 남북물자교류 및 합작투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반면에 체제유지에 핵무기 이상으로 어려움을 가져다 주는 이산가족,우편,언론 방송 등의 교류에는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인적,물적,정보­통신의 전반적인 교류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과감한 교류 절실


그러나 남북한은 21세기 국가의 기본요건인 국제화,지역화,지방화,그리고 비군사화,과학기술화,정보화,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감한 교류협력을 통해 함께 사는 길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한국은 일본과 미국과의 협의하에 북한이 21세기 국가의 기본요건을 갖추도록 협조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신한반도 질서의 3대 과제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질때 한반도에도 봄다운 봄이 찾아올 것이며 명실상부한 남북한 정상회담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서울대 외교학과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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