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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포스트 모던 국제질서」
 

조선일보 

1991-10-29 

○유럽의 신체계


21세기를 준비하려면 유럽을 주목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소련의 좌절이 과거 인간 역사의 모순을 극복하여 보려는 20세기적 실험의 결과였다면,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럽의 변화는 오늘 우리 삶의 모순을 극복하여 보려는 21세기적 노력이다.


유럽의 이러한 21세기적 노력은 정치­군사­경제­문화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 유럽공동체(EC)의 12개 회원국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의 7개 회원국이 유럽경제지역(EEA) 창설에 합의한 것도 어려운 세계경제의 여건속에서 상대적으로 열세한 개별 국가경제가동지역 경제단위의 도움을 통해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가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노력을 단순히 경제적 차원에서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유업은 동시에 정치­군사­문화적 차원에서 21세기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정치­군사적인 차원에서는 80년대 중반이래 탈냉전의 변화속에서 스톡홀름협정(1986)과 빈협정(1990)을 통한 군사적 신뢰 구축을 강화하고,유럽배치 재래식무기 감축협정(1990)을 통해 대규모의 군축에 성공적으로 합의했다. 더구나 1991년에 바르샤바 군사동맹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자 유럽국가들은 새로운 생존전략으로서 21세기 안보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유럽국가들은 개별 단위국가들의 안보체제만으로는 결과적으로 안보의 끊임없는 추구가 불안정을 가져다 주는 궁지에 빠지게 되므로,공동안보의 원칙에 기반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라는 보완체제를 강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21세기에 적응


유럽은 문화적인 차원에서는 오늘의 많은 문제의 원인을 근대적 사고와 행위양식에서 찾고,이를 보완하기 위해 탈근대적 사고와 행위양식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해왔다. 탈근대적 사고는,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전위적인 방법으로 근대적 사고를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미래를,공간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을 동시에 포함하는 일종의 4차원적 사고를 의미한다.


유럽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탈냉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탈근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있으므로 미래지향적인 면에서 보자면 탈냉전 국제질서라고 부르기 보다는 「포스트모던 국제질서」라고 부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유럽이 보여주는 「포스트모던 국제질서」의 징후는 두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유럽의 변화는 21세기 세계질서의 선행지표적 역할을 하고 있다. 개별 국가들이 자신들의 국가이익을 위해 부국강병을 추구하였던 근대국제질서가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자 유럽 국가들은 개별국가인 동시에 EEA나 CSCE 등을 통해 삶의 터전을 넓혀 나가는 복합단위체를 만들어 국가이익,지역이익,세계이익을 동시에 추구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근대 국제질서의 참여를 위한 초보적 숙제인 국내통합과 한반도의 통일도 미처 끝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유럽이 새롭게 내 놓은 21세기의 과제들은 국민학생이 대학입시를 보아야 하는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과외를 해서라도 근대국제질서와 포스트모던 국제질서의 숙제를 동시에 풀어야한다.


○동북아와 일본


둘째,유럽은 우리에게 변화의 선행지표로서 중요할 뿐만아니라 동북아의 일본문제를 풀기위한 활용대상으로서 동시에 중요하다. 한반도의 삶의 터전을 「포스트모던 국제질서」의 숙제를 풀기 위해 동북아 차원으로 넓히려는 경우에,우리는 일본문제와 만나게 된다. 동북아의 일본화가 아니라 일본의 동북아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가려면 동북아 국가들의 개별적,그리고 지역적 노력뿐만 아니라 유럽의 동북아화가 대단히 중요하다. 한반도의 삶에 이중적으로 중요한 유럽을 동북아화하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던 국제질서」의 틀속에서 일본과 유럽을 새롭게 볼 줄 아는 실무자,언론인,학자의 양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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