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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대학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중앙일보 

1991-06-06 

외대학생들의 정원식 총리서리 집단폭행 사건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의 악순환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 만은 없다.


대학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창조적 사고의 지적 실험장이 아니라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폭력의 전투장이 된다면 그것은 곧 대학의 죽음을 의미한다.


대학의 죽음은 단순한 대학자체의 죽음이 아니라 곧 우리 사회전체의죽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대학은 우리 사회 두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비록 튼튼한 위와 강한 심장을 가지고 있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뇌가 없이는 제대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대학은 사회의 두뇌


더구나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힘의 내용이 고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첨단의 기술력과 지식력으로 빠르게 바뀌어 가는 속에서 대학의 중요성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다가오는 시대의 주도국의 조건은 보다 많은 총과 빵을 넘어서 보다 많은 우수한 대학의 육성일 것이다.


이와 같이 21세기 우리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대학을 오늘의 폭력의 악순환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소박하고 단순한 윤리적 호소와 경찰력의 투입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대학을 폭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노력은 정치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은 구미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오늘의 삶의 모습을 갖추기위해 수백년에 걸쳐 겪은 역사적 체험을 수십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에 축약적으로 겪으려는 혁명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속에서 사회·경제적으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의 속도에 비해 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주화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지연됨에 따라 국내의 사회·경제적 역량을 기존의 정치적 역량이 충분히 소화하고 흡수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의회정치 구현 시급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소외된 사회·경제세력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예민한 부분인 대학공간에서 폭력수단을 포함한 정치투쟁을 모색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이땅에 하루 빨리 진정한 의회정치의 구현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와 같이 여야정당들이 낮은 수준의 당리당략을 위한 「대권경쟁」과 정치자금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갈등의 해소라는 본래의 임무를 소홀히하는 한,대학에서의 정치폭력의 악순환은 쉽사리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내일의 삶을 담보하고 있는 대학이 더이상 오늘의 정치현실의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재야를 포함한 정치세력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대학을 정치투쟁의 최전방으로 삼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최후의 보루로서 정치투쟁의 악순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에서도 두뇌이식 수술이 불가능한 것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도 대학기능의 손실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예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장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정치적 폭력의 악순환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노력은 오늘의 한국대학들을 명실상부한 국제수준의 연구와 교육의 현장으로 만들기 위한 혁명적인 집중투자의 필요다.


○혁명적인 투자 필요


대학은 현실정치의 최일선 전투장이 아니라 우리의 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한 모든 지적 실험과 교육의 현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가 이루어지는 속에서 대학은 폭력 투쟁의 현장에서 지적연마의 현장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둡다. 국내의 대학중에 가장 나은 축에 드는 서울대학교의 1년 예산이 국방부가 차세대 전투기로 1백20대를 구입하게 되어있는 F­16의 세대 가격 수준에 불과하며 1년동안의 총연구비는 F­16의 한대 가격에도 못미치고 있다.


21세기의 차세대 전투기를 구입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에 못지 않게 21세기의 차세대 대학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질때 우리의 대학들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서울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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