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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새 동북아질서에도 눈 돌리자
 

중앙일보 

1991-05-11 

한 젊은 대학생의 죽음으로 인해 국내정국이 커다란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우리들의 모든 관심은 국내정세의 전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국내정세에 못지 않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북아질서는 우리의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속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동북아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상회담은 최근 눈에 띄게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 가이후 일본 총리의 미국방문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방문 이후에도 가이후 일본 총리의 동남아방문과 리펑 중국 총리의 북한방문이 최근에 이루어졌다. 앞으로도 장쩌민 중국 당총서기의 소련방문,노태우 대통령의 미국방문,그리고 가이후 일본 총리의 중국방문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최근 빈번한 정상회담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정상회담들은 단순한 정상들간의 만남이 아니라 새로운 동북아질서 구축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도 이제까지의 대미 또는 대일 외교의 1차원적 외교를 넘어 북방정책의 모색이나 대미 외교와 대소 외교의 병행 추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2차원적 외교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동북아질서의 새로운 변화는 2차원의 평면적 변화가 아니라 3차원의 입체적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북아 국제질서의 형성과 전개는 미국과 소련이 핵심적으로 주도하고 일본과 중국이 한계내에서 지역적 역할을 수행하고 그 밑에서 남북한 분단체제가 작동하는 3중구조의 틀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동북아질서의 3중구조적 모습은 다음과 같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동북아 국제질서를 주도해온 초강대국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소련은 신사고에 기반한 새로운 대외정책의 모색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경제체제의 어려움이 점차 심화되는 속에서 동북아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에 커다란 제약을 받고 있다.

미국은 소련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내경제의 어려움등으로 인해 독자적으로 현재의 주도적 역할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세계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정부개발원조의 확충」,「평화를 위한 협력」,그리고 「국제문화교류의 강화」를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구상」을 아시아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동북아질서의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셋째,중국은 잠재적 대국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당면하고 있는 국내 정치·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상당한 기간동안은 동북아 주도세력으로 등장하기는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초강대국의 역할 축소


넷째,남북한 분단체제는 한국의 상대적인 국제적 위상의 상승과 북한의 국제적 위상의 하강이라는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동북아의 이러한 변화의 흐름이 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속에서 이루어졌던 동북아 질서의 3중구조의 구조적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속에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국가들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한국은 보다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미 소,미 일,또는 일본주도의 동북아질서를 넘어선 동북아 국가들의 공동주도로 이루어지는 보다 입체적인 새 동북아질서를 모색하고 이를 추진해나가야 한다.


동북아 국가들의 공동주도에 의한 신동북아질서의 첫걸음은 동북아냉전체제의 동북아 평화체제로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직까지도 정치적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남­북한,한국­중국,북한­일본,북한­미국의 정치적 신뢰구축을 위한 공동노력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동북아 평화체제가 모색되어져야 한다.


○4차원적 협조망 필요


신동북아질서는 동북아평화체제와 함께 새로운 동북아경제협력체제의 모색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의 일국번영주의적 역할의 위험성을 배제하고 동시에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개혁을 위한 공동노력일 것이다.


신동북아질서는 정치·군사적 차원의 경제·과학기술적 차원을 넘어서서 학술·문화·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도 이제까지의 미국과 소련,또는 일본주도의 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이 이러한 신동북아질서를 위한 공동노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는 미·소·중·일과의 입체적인 협조를 모색해야 하며 보다 거시적으로는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4차원적인 협조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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