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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4차원적 지도자」를 찾아서
 

중앙일보 

1991-04-11 

박철언장관의 월계수회 고문직 사퇴와 함께 차기 「대권주자」에 관한 논의가 점차 활발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권주자논의는 용어 자체부터 구시대적인 발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대권주자가 아니라 1990년대 중반에 우리가 맞이할 문제들을 풀어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국민의 큰 심부름꾼이다. 그리고 이러한 큰 심부름꾼 후보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존의 구태의연한 당리당략을 넘어서서 진정한 민리민략의 차원에서 찾아질 때 비로소 전국민적인 지지기반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자유·평등 잘 조화돼야


다음 정부가 맞이하게될 1990년대 중반에 국민의 진정한 큰 심부름꾼이 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이 맞이하게될 3대 문제를 21세기적 안목에서 이해하고 과감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자질을 갖추어야만 한다.


첫째,1990년대 중반의 우리사회가 당면하게될 최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의 갈등을 조화있게 풀어나갈 수 있는 인물이라야 한다.


제6공화국이 권위주의체제의 청산을 위한 민주화의 과도기라고 한다면 다음 정부는 보다 본격적으로 민주화의 뿌리내림이라는 과제를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뿌리내림을 위해서는 21세기의 우리사회에 실질적으로 어떤 내용의 민주주의를 꽃피울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어 온 민주화의 역사는 21세기를 앞두고 소박한 차원의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그리고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를 합리적으로 결합시켜보려는 사회민주주의의 노력이 모두 그 나름의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색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 역사도 1970년대까지의 반독재투쟁에서 보는바와 같은 소박한 자유민주주의의 모색이나 1980년대 이래의 반체제투쟁에서 보는바와 같은 소박한 평등민주주의를 넘어서서 1990년대 중반에는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를 전국민적 연대감을 매개로 동시에 모색해야할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필요한 큰 심부름꾼은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의 갈등을 조직적인 폭력수단을 통해 조절해 나가려는 군사적 사고나 충분한 국민적 합의기반과는 관계없이 실정법에 의존해 풀어나가려는 법적 사고를 넘어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전국민적인 합의로 수렴시킬 수 있는 정치적 사고에 철저해야만 한다.


둘째,1990년대 중반의 탈냉전,더 나아가서는 탈근대의 새로운 국제정치적 도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감각의 소유자여야 한다.


○평면적 사고극복 필요


1980년대 중반이래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탈냉전의 역사속에서 6공화국은 한소수교라는 새로운 외교의 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까지의 대미외교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1차원적 외교를 넘어선 2차원적 외교의 가능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는 전지구적인 차원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3차원의 외교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한반도가 위치하고 있는 동북아의 공간적 제약을 국제 커뮤니케이션의 활용을 통해 극복하기 위한 4차원의 외교가 동시에 모색되어야 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는 우리의 2차원적 외교를 3차원 내지는 4차원적 외교로 전개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큰 심부름꾼은 이제까지의 단순한 쌍무 외교적 시각이나 평면적 다변외교적 사고를 넘어서서 전지구적 공간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동시에 공간적 제약을 시간의 활용으로 극복할 수 있는 4차원적 사고가 가능해야만 한다.


셋째,1990년대 중반에 우리가 맞이할 또 하나의 핵심과제인 평화통일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탈냉전속에서도 군사적 긴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남북한 관계는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 대외적으로는 소련의 충격과,대내적으로는 정치·경제적 상황의 악화속에서 체제유지를 위한 새로운 모색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있다.


○평화통일이 핵심과제


이러한 상황을 한반도의 평화통일로 전개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한국은 국제정치적으로 북한과 일본 및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남북한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국내정치적으로는 방어적 군사력을 충실히 하는 속에 지속적인 정치·경제적 상황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평화통일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큰 심부름꾼은 이제까지의 비현실적 냉전사고나 평화사고를 넘어서서 새로운 정치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의 우리가 보다 나은 21세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큰 심부름꾼은 좁은 의미의 당리당략이 요구하는 조건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인물이라야 한다.<서울대교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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