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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새 역사를 위한 새 정치
 

중앙일보 

1991-02-13 

새해를 맞이한지 채 두달도 못되는 동안에 밖으로는 걸프전쟁,안으로는 예체능계 부정입학,국회의원 뇌물외유,수서특혜분양이라는 초대형 사건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다음에는 얼마나 더 큰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설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속에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신속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장기적으로 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다가오는 삶속에서 부딪치게 될 더 큰 문제들에 대한 예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새 역사를 위한 새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탈근대 국제정치 모색


첫째,탈근대의 국제정치를 하루 빨리 모색해야 한다.


현대국제질서의 탈냉전화,그리고 탈근대의 모색은 걸프전쟁 때문에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의 흐름으로 보인다.


근대 국제체제속에서는 개별 국가가 개별 안보와 번영을 추구해온 반면에 유럽을 중심으로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탈근대 국제체제속에서는 기존의 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단위체가 공동 안보와 번영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걸프전의 비극을 한반도에서 반복하지 않기 위한 소극적인 노력을 넘어서 유럽의 새로운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의 한 구석에서 미·소·중·일의 네 강대국 둘러싸여 있는 한국은 하루 빨리 탈근대의 중심세력이 되기위한 조건과 방안을 밝혀내고 이를 구체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우리의 조상들이 근대를 충분히 성공적으로 준비하지 못함으로써 맞이했던 역사의 비극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탈근대를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


○남북한 관계 새 차원서


둘째,남북한의 관계개선을 새로운 시각에서 모색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탈근대 국제체제의 틀 속에서 새로운 공동 안보와 번영의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에 한반도에서는 남북한이 군사적 긴장과 경쟁을 통해 엄청난 국력 소모의 비효율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탈근대 국제체제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북한은 관계개선과 평화통일이라는 근대의 숙제를 하루빨리 풀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세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던 남북한의 총리회담은 단기적으로는 남북한의 관계개선이 남북한 정부의 직접 협상을 통해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어려움속에서 남북한의 실질적인 관계개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가오고 있는 북한의 변화에 대한 국제 및 국내적 차원에서의 준비가 시급하다. 한반도의 북쪽은 남쪽보다도 훨씬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밖으로는 소련과의 관계약화,안으로는 경제의 어려움속에서 북한은 주체의 논리에 따라 1차적으로는 국내체제의 강화,2차적으로는 한국을 제외한 자본주의국가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어려움의 극복을 시도하고 있으나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북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남한의 실체를 부정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남한의 실체를 인정해야 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미 군사협력의 재조정과 국내체제의 민주역량 강화를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나」와 「우리」의 연대감


셋째,「나」와 「우리」를 조화시키기 위한 연대의 정치를 모색해야 한다.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부정 부패의 사례들이 보여주는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연대감의 붕괴라는 것이다.

사회의 실질적인 주도세력인 정치·경제·교육·언론계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고 「나」라는 개인 이익을 극대화할때 사회구성원 전체는 전쟁상태를 맞이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탈근대 국제체제의 낙오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나」와 「우리」의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연대의 정치가 이땅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첫째,부정 부패와의 전쟁이 우리 사회의 권력·금력·언론의 핵심에서부터 집중적으로,그리고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둘째,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과 세력의 등장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연대 정치의 궁극적인 실현은 「우리」의 삶속에서 「나」의 삶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공감대의 확산이 전국민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때 가능하게 될 것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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