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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이슬람세계관에 비춰본 「페만」
 

중앙일보 

1991-01-16 

1980년대 중반이래 진행돼온 탈냉전의 역사적 전개속에서 해빙의 봄을 맞이하고 있던 세계는 뜻밖의 복병으로 나타난 페르시아만 사태로 인해 심한 봄추위를 겪고 있다.


페르시아만 사태는 단순히 페르시아만 주변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직결되어 있으므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이러한 페르시아만 사태에 대한 우리의 적절한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페르시아만 사태의 장래에 대한 조심스러운 검토를 필요로 한다.


○한반도 안전에도 직결


페르시아만 사태의 장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세 수준에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미국의 페르시아만 사태에 대한 대응책의 전망이다. 미국이 페르시아만 사태의 해결을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것인가의 여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9일의 미국­이라크회담에서 후세인 대통령에게 전달하려다 거부당한 서한에서 다국적군과 이라크의 전쟁은 이라크의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철수에 의해서만 막아질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미국의 통보는 단순히 이라크의 최종적인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외교적 위협이 아니라 실질적인 군사력의 사용결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미국이 페르시아만 사태에서 무력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군사력의 우위와 무력사용의 명분을 이미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은 이라크군에 비해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주고 있고 전쟁이 장기화되지 않는한 일기 및 지리의 특수성과 사막전의 경험부족을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군사력 우위와 함께 월남전의 경우와 달리 미국은 군사력 사용의 정당성에 대해 지난 14일 상하 양원의 페르시아만 무력사용 승인과 관련 11월의 유엔안보리 결의,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시리아 등의 다국적군 참여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교적 폭넓은 지지기반을 획득하고 있다.


○범아랍주의에는 한계


따라서 미국은 이라크의 실질적인 양보없이는 속전속결의 군사력 사용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아랍국가들의 페르시아만 사태에 대한 대응책의 전망이다. 이슬람세계는 명분상으로 유럽의 근대국제체제와는 다른 독특한 세계질서관을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슬람 세계질서의 기본구조는 이슬람교도 집단인 「이슬람의 가(Dar al­Isalm)와 이교도 집단인 「전쟁의 가(Dar al­harb)」라는 종교공동체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속에서 이슬람교도들은 복수의 정치집합체를 형성하고 전개시켜 왔으며 근대유럽국제체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오늘과 같은 다수의 아랍국가들을 형성했다.


따라서 오늘의 이슬람세계는 명분과 현실이 혼재한 속에서 아랍­이스라엘전쟁에서는 명분적인 이슬람 세계질서가 보다 주도적으로 작동하는 반면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서는 아랍국가들의 개별 이익이 보다 강하게 작동해 범아랍주의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이라크는 필요한 경우에 이스라엘을 공격해서라도 페르시아만 사태를 이슬람교도의 의무인 성전으로 만들려는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랍국가들이 하나의 종교공동체로서의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군하지 않은 속에서는 친이라크 경향의 리비아·팔레스타인해방기구·예멘과 이스라엘 주변국가인 시리아·요르단·레바논·이집트,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이 현실적으로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이라크의 페르시아만 사태에 대한 대응책의 전망이다.


미국의 군사력 사용결의,아랍국가들의 종교적 통일체로서의 한계속에서 이라크가 택할 성전(Djihad)과 평화(Sulh)의 선택이 최종적으로 페르시아만 사태의 장래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성전에의 동참 못얻어


이슬람 세계질서관에서 성전은 「전쟁의 가」를 「이슬람의 가」로 만들기 위한 이슬람교도의 군사적,그리고 비군사적 수단에 의한 부단한 노력을 말하며 평화는 이슬람교도의 이익이 되는 경우에 이슬람교도 공동체와 이교도 공동체간의 계약에 의해 성전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을 뜻한다.


이라크는 현실적으로 다국적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으며 명분적으로 다른 아랍국가들의 적극적인 성전에의 동참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이라크의 노력은 최종적으로 이슬람적 명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철군의 가능성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이슬람이라는 말의 뜻과 같이 알라신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될 것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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