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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입장 구조적 차이를 좁혀라/남북총리 1차회담을 보고
 

동아일보 

1990-09-06 

나는 남북 고위급회담을 축하하는 만찬장의 한 구석에 앉아 남북한 총리들의 화려한 만찬사를 들으며 과연 오늘의 남북한 정부당국의 만남이 남북한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 회담이 될는지,아니면 또 하나의 내실없는 잔치로 끝나게 될는지를 곰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한의 정책실무 책임자들이 국내외의 어떠한 이유이든간에 공식적으로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남북한의 만남의 형식에서 역사적이라고 불릴 만큼 새로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만남이 동시에 역사적으로 새로운 내용의 만남이었는가는 보다 조심스러운 내용의 검토를 필요로 한다.


남북한 대표들은 이틀동안의 회담과정에서 예비회담에서 이미 합의한 의제인 「남북한의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문제」를 중심으로 입장을 밝히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남북한이 합의한 의제에 대한 입장을 검토하기 위해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평면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나 일부 항목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을 비교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이 이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밝히는 데에 있다. 이를위해서는 남북한의 입장을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방안,정치적 대결상태 해소방안,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방안,기본입장의 순서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첫째,남북한관계의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 되어 온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한국은 정치적 신뢰구축,군사적 신뢰구축,남북한 군비감축추진의 3단계 군비통제방안을 제시했고 북한은 지난 5월31일의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에 기반한 방안을 내놓았다.


이 두 방안을 비교해보면 우선 한국정부안은 군비통제의 필수조건으로서 정치적 신뢰구축을 강조하고 있으나 북한정부는 이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으며 반대로 북한정부는 외국무력의 철수를 강조하고 있으나 한국정부는 이를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군사적 신뢰구축 또는 조성방안의 경우에는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나 고위군사당국자간의 직통전화와 같이 남북한이 함께 제안한 것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한국은 쌍방의 군사력과 군사적 의도의 투명도를 높이는 방안을 중심으로 제안하고 있고 북한은 군사훈련과 군사연습을 제한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북간 군비감축 또는 북남 무력감축의 경우에는 한국은 공격형 전력구조의 방어형 전력구조로의 전환과 무기중심의 불균형 감축을 제안하고 있고 북한은 병력중심의 균형감축과 군사장비의 질적 개선중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남북한 모두가 현장검증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밖에 남북한은 군축과 그 이후의 평화보장방안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남북 고위급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군비통제방안이 처음으로 공식회됨에 따라 남북한의 군축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남북한의 군축방안은 부분적으로는 공통되는 부문이 있으나 구조적으로 상충되고 있어 실질적인 협상의 돌파구는 정치적 신뢰구축이나 외국무력의 철수에 대해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남북한의 국내역량의 강화가 이루어지는 속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남북한관계의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되어온 정치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한국은 상대방 체제의 인정과 존중을 강조하고 이에따라 상대방을 비방 중상하지 말고 파괴 전복하려 하지 않고 쌍방당국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으나 북한은 상호 비방의 중지이외에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반면에 북한은 민족적 단합과 통일에 배치되는 모든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제거하고,물리적 장벽을 제거하고,국제정치무대에 남과 북이 공동으로 진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한의 정치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경우에도 남북한은 부분적으로는 유사한 방안을 제의하고 있으나 상대방 체제의 인정과 존중이라는 중심고리가 풀리지 않는 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다각적 교류협력실시방안의 경우에 한국은 세부적인 방안을 제의하고 있으나 북한은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한 기초위에서만 교류협력이 의미를 가진다는 입장에서 원칙적인 언급만을 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보면 남북한관계의 돌파구를 한국이 기대하는 것과 같이 다각적인 교류협력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까지의 검토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한이 취하고 있는 기본입장의 구조는 단기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상당한 상충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 모두 단기간에 남북 고위급회담이 커다란 내용의 성과를 가져오리라는 기대를 가지기 보다는 남북한의 기본입장의 구조적 차이를 좁혀나가기 위해 끊임없는 내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속에서 평화통일의 여명이 밝아올 것이다.<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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