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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잔치를 끝내고
 

중앙일보 

2005-11-21 

잔치가 끝났다. 제13차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주제는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였다. 잔칫상을 치우면서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우선해야 할 일은 공동체라는 말의 바른 이해다. 우리 정부는 동북아공동체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으며 일본의 고이즈미 정부도 최근 동아시아공동체라는 정치구호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라는 말을 정확하게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community'의 번역어로서 사용하는 공동체의 뜻을 바로 알려면 'society'의 번역어인 사회와 비교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다는 뜻은 머리로 이익을 계산해 모인 사회와 달리 마음이 맞아서 하나 된다는 것이다.

 

APEC은 1989년 참가국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동안 걸음마 과정에서 경제적 지역협력을 추진해 왔으며, 이번 부산 선언도 무역자유화를 비롯한 경제적 이해의 지역 협력을 핵심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런 수준의 APEC이 마음의 하나 된 모임인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제 길을 찾는 첫걸음은 섣부른 낙관론을 버리고 예측하기 힘든 고난의 행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한 다음에 해결로를 찾아야 한다.

 

동북아.동아시아 또는 아시아.태평양의 지역화가 유럽에 비해 훨씬 어려운 것은 이 지역의 복합성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하나가 아니다. 반APEC 시위자들의 아시아는 미국을 정상으로 하는 선진 자본주의 세력들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비정한 공간이다. 반대로 미국의 아시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직전 일본의 교토에서 행한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연설에서 웅변하고 있는 것처럼 자유라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확대시켜 나가야 할 무대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중화질서를 꾸려 왔던 중국의 아시아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APEC 회의 직전 한국 국회 연설에서 밝힌 것처럼 발전국가인 중국이 다양한 주인공들의 평화.발전.협력을 치밀하게 주도해야 할 지역이다. 일본의 아시아는 21세기 미.일 신동맹의 선택 속에서 일본형 동아시아 공동체를 꿈꾸는 공간이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들의 아시아는 주변 열강들 속에서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면서 명실상부한 아세안 공동체를 마련하기 위한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아시아는 균형자라는 가능성을 추진해 보고 싶은 공간이다.

 

한국의 전통의상인 두루마기를 모두 함께 입고 부산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21개국 정상의 가슴속에는 스물하나의 아시아가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하나의 공동체를 위한 도전과 변화'를 토론했다. 무엇이 이렇게 복잡한 무대를 연출시킨 것일까. APEC 무대는 어렵게 말하자면 일국 중심의 부국강병 무대가 생산하는 부작용을 아시아.태평양의 지역무대에서 풀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은 유럽무대와 아시아무대의 중요한 차이다. 유럽무대의 유럽연합(EU) 25개국은 머리와 가슴을 함께하는 복합국가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실험하고 있다. 지난 500년의 단일국가 건설의 피곤에서 벗어나 보려는 늙은 유럽의 회춘을 위한 처절한 연기다. 아시아무대는 다르다. 19세기 서세동점의 영향 아래 뒤늦게 근대 무대에 뛰어 든 아시아의 주인공들은 아직 젊다. 유럽의 노인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피가 끓는다. 유럽 방식으로 머리와 가슴이 하나로 움직이는 아시아 공동체를 꿈꾸는 것은 무리다. 전통국가.근대국가.냉전국가.탈근대국가의 성격이 비빔밥처럼 비벼져 있는 주인공들이 치열한 연기의 각축을 보이고 있는 무대 위에서 미.일과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공동주연을, 장기적으로는 단독주연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그 속에서 우리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하는 것이 부산 APEC 잔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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