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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6자회담
 

중앙일보 

2005-07-11 

6자회담이 오랜만에 열리게 됐다.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6월 제3차 6자회담 이후 올해 초 미국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과 북한의 핵무기 보유 공식 선언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연돼 왔던 제4차 6자회담이 드디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회담이 열리기까지 앞으로 2주일 동안 북한과 미국의 새로운 전략적 결단이 없는 한 회담의 전망은 어둡다. 회담의 주역인 북한과 미국이 비교적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6자회담 전략이 가시적 성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회담에서 발표될 북한의 기조연설문을 미리 좀 훔쳐보기로 하자. 북한은 핵무기 보유 공식 선언 이후 3월 31일 '6자회담은 비핵화, 군축회담으로 되어야 한다'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6자회담의 기본 성격을 새롭게 규정했다. 이제는 6자회담에서 동결과 보상을 주고받기 식의 문제를 논할 시기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당한 핵무기 보유국이 된 지금에 와서 6자회담은 마땅히 참가국들이 평등한 자세에서 문제를 푸는 군축회담으로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 기조연설문의 예상되는 골격은 선명하다. 6자회담의 목표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조선반도 핵 문제'의 해결이다. 그리고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우리로 하여금 핵무기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근원인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가증되는 미국의 핵 위협을 청산하고 우리와 유관국들 사이에 신뢰 관계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선(先)핵 포기를 요구하는 대신 미국의 핵 위협을 우선적으로 제거하고 검증해야 하며 미국이 북한의 '제도 전복'을 포기하고 평화공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6자회담 전략은 회의의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제3차 회담에서는 핵 포기와 핵 동결,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의 구체적 내용이 협상의 주요 의제였다. 그러나 4차 회담에서 북한이 미국의 핵 위협 제거와 평화공존 정책을 새로운 의제로서 제시하게 되면, 미국은 현실적으로 북한과 실질적 협상을 전개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북한에 못지않게 미국의 입장도 분명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4차 6자회담에서 새로운 제안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미 제3차 6자회담에서 새로운 제안을 했고, 이번 회담에서는 이 제안에 대한 북한의 대답을 들을 차례라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지난주 아시아 순방을 시작하면서 한 기자회견에서 솔직하게 북한이 6자회담에서 어떻게 행동할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4차 회담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제3차 회담 당시 미국의 제안에 대한 북한의 답변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미국은 제3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리비아식 모델의 선례에 따라 우선 모든 핵 프로그램을 영구적으로 완전히, 그리고 투명한 검증절차를 거쳐 폐기할 것을 약속하고 구체적 실행계획에 합의한 뒤, 마지막으로 폐기절차를 실행하도록 요구했다. 한편 미국은 이에 상응해 경제.안보.외교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3차 회담 때보다 훨씬 경직화된 새로운 제안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은 미국의 이러한 제안을 협상의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미리 보는 6자회담의 모습이 불행하게도 7월 말 현실화된다면 한국은 그동안의 6자회담 중에 가장 힘든 회담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은 더 경직화된 새로운 제안을 하고 미국은 보다 유연한 새로운 제안을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이나 북한을 설득해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꿈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국제정치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제4차 6자회담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북핵 문제는 서서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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