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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양무호(한국의 첫 군함)'의 비극
 

중앙일보 

2005-05-07 

네번째 한국형 구축함인 '왕건함'이 진수식을 했다. 한국 근대 해군사를 잠깐 되돌아보자. 고종 황제가 한국의 첫 군함으로 일본에서 구입한 '양무호'는 1903년 4월 16일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중고 화물선에 고물대포를 장착한 '양무호'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 해군의 첫 군함 역할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다 결국 1909년 일본에 화물선으로 되팔려 가 1916년 철광석을 적재하고 싱가포르로 운항하던 중 침몰했다.

 

'양무호'의 비극적 운명과는 대조적으로 일본 해군은 1894년 청일전쟁 당시에는 세계수준의 전함이 한 척도 없었으나 1904년 러일전쟁 때는 세계 수준의 전함 6척, 장갑순양함 6척을 기간으로 해 152척, 26만t의 함정을 보유하게 됐다. 일본 해군은 세계의 치열한 건함 경쟁 속에서 계속해서 주력함을 늘려나갔다. 건함 경쟁에서 일단 숨을 돌린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일본은 영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해군력을 인정받았다.

 

2004년 12월에 일본은 2015년까지의 군사력 추세를 보여주는 '신방위계획대강'을 발표했다. 이 안의 실질적 밑그림을 그린 일본 총리부의 '안전보장과 방위력에 관한 간담회 보고서'의 서문에서 좌장을 맡았던 아라키 히로시(荒木浩) 도쿄전력 고문은 13차의 간담회 내내 자신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이노우에 시게요시(井上成美) 제독의 한 마디를 흥미 있게 소개하고 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일본 군령부(軍令部)는 대함거포(大艦巨砲)의 건조를 요구하는 방대한 해군군비확장계획안을 제출했다. 당시 일본 해군의 지성을 대표했던 이노우에 항공본부부장은 메이지(明治)의 머리로 쇼와(昭和)의 군비를 다루지 말라고 비판하면서 해군의 공군화를 강조했다. 아라키 고문은 이노우에의 머리로 21세기 일본 방위력을 생각해 본다면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결집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탈냉전과 9.11테러의 격변을 겪으면서 세계 군사질서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국방부 보고서인 '미래를 대면해서(Facing the Future)'에서 그물망과 정보의 두 축으로 요약될 수 있는 변환 전략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되고 집행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2004년 국방백서'에서 2020년까지의 국가 기본 목표인 소강사회 전면 건설을 위한 중국 특색의 군사변혁을 밝히고 있다. 일본은 '신방위계획대강'에서 다기능 탄력적 방어력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도 10월 군사개혁 입법화를 앞두고 군사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양무호'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고, 이노우에 제독의 비판을 남의 얘기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국 특색의 군사개혁을 추진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선 21세기 상반기 한국이 겪게 될 동아시아 및 세계 정치의 모습을 21세기의 눈으로 꿰뚫어 보고 밑그림을 제대로 그려 국민적 합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1세기의 눈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으로 한국의 진보적 시각은 아직 20세기를 졸업하지 못하고 있다. 군사개혁 논의의 21세기적 토론의 첫 출발은 19세기와 20세기 발상의 혼합인 협력적 자주론의 21세기적 변환부터 해야 한다.

 

21세기 한국 군사개혁안은 세계 초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단 중진국의 독특한 공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마련해야 한다. 전 세계가 냉전의 역사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문명사적 실험을 통해 근대적 경쟁시대를 서서히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뒤늦게 근대적 경쟁질서에 뛰어든 동아시아 국가들은 유럽적 해결책을 모색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21세기 지구 안보질서도 주인공과 무대, 그리고 연기의 내용이 20세기와는 크게 다르다. 한국의 군사개혁안은 3중적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전 세계 어느 국가의 개혁안보다 복합화된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21세기 시공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 정책화할 수 있는 안목과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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