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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세가지 위험에 대비하라
 

중앙일보 

2003-06-19 

노무현 (盧武鉉) 대통령이 지난달에 한.미 정상회담을, 그리고 이달에 한.일 정상회담을 치렀다. 대통령으로서는 국내정치와 비교해 전혀 생소한 국제정치에 본격적으로 익숙해지기 시작한 셈이다. 이때가 가장 조심할 때다.

 

자동차 운전자가 사고를 낼 위험성이 가장 큰 때는 운전면허를 딴 직후가 아니라 운전에 조금 익숙해져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盧대통령이 외교의 초보 운전자로서 가장 조심해야 할 위험들은 무엇일까? 우선, 북핵문제다.

盧대통령은 두 정상회담을 치르고 난 후, 북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쉽게 풀리고 있지 않다.

*** 北核·한미동맹 낙관론 폈지만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5자회담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 경제제재, 육상.해상 및 공중 정지 및 나포, 군사적 선택으로 구성돼 있는 PSI가 미국 주도의 국제연대 아래 실천단계에 접어든다면 북한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무기수출.마약밀매.불법송금은 모두 합쳐 연 1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수출 7억달러, 수입 17억달러로 10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본 북한에 연 10억달러 이상의 외화수입을 봉쇄한다는 것은 단순한 대화를 위한 압력이 아니라 체제 사활의 문제다.

 

따라서 북한의 PSI 비난은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격렬하다. 盧대통령의 낙관과 달리 사태는 유동적이다. 미국의 PSI와 북한의 핵 억지력 준비의 악순환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시급하다.

 

다음으로, 한.미 동맹문제다. 盧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의 기자회견에서 한.미 동맹은 지난 50년보다도 앞으로 50년 동안에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20세기와 21세기의 동맹 내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한.미동맹은 1950년대 한국전쟁과 연관된 냉전의 산물이다. 그러나 9.11 이후의 21세기 미국은 새로운 동맹질서를 구축하기 시작하고 있다. 1차적으로는 지구 테러 그물망과 대량살상무기 이전 지원세력에 대항하는 반테러동맹이다. 다음으로는, 중국과 같은 21세기 성장대국에 대비하는 지정학동맹이다.

 

또 한편,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지경학동맹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은 한.미동맹을 여전히 한반도 냉전동맹으로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21세기 동아시아 세력균형과 경제번영을 위해 불가피하게 미국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읽고 상대방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한.미동맹은 21세기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건설문제다. 그러나 한반도를 동북아 평화와 협력의 허브(hub)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21세기 진보의 시각에서 보면 구시대적 발상이다. 21세기는 국내외적으로 중심을 강조하는 허브의 세기가 아니라 탈중심을 강조하는 노드(node)의 세기다.

*** 구시대적인 동북아 허브 발상

동북아의 허브 되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그물망을 지구 그물망, 그리고 그물망 국가들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유럽이 근대의 노년기를 맞이해 비로소 유럽연합을 건설하기 시작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근대의 청춘기를 겪고 있는 동아시아는 상당한 기간 동안 협력과 함께 갈등의 만남을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동아시아 신질서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盧대통령 외교가 초보운전에서 무사고 모범운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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