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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이라크戰 명분 약한 전쟁… 美 리더십 시험대
 

조선일보 

2003-03-22 

 
▲사진설명 : 河英善교수(왼쪽)-1947년생, 미국 워싱턴대 국제정치학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文正仁교수-1951년생, 미국 메릴랜드대 정치학박사,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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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공격 개시로 빚어질 국제질서의 변화 가능성과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미칠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해, 조선일보는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河英善) 교수와 연세대 정외과 문정인(文正仁)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 전쟁의 성격과 목표


문정인 교수 =미국의 목표는 사담 후세인 제거다. 이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의 목표는 오사마 빈 라덴 체포와 알 카에다 와해였지만 달성하지 못했다. 특정지도자 제거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영선 교수 =세 가지 명백히 할 부분이 있다. 첫째는 공격 목표다. 기존 미국적 시각으로 보면 대(對)테러전 해결은 외교전→경제전→정치전(정권교체)→군사대결의 수순을 밟아가는데, 이번에는 정권교체를 위해 바로 군사공격을 가하는 성격이다. 둘째는 30여개국이 지지한다지만 걸프전에 비해 국제적 지지도가 떨어지는 가운데 개전이 됐다. 셋째는 12년 전 걸프전과 비교할 때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전쟁이어서 전쟁 수행의 수단과 목적이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문 =이번 전쟁은 미국이 수행한 역대 전쟁 중 명분이 가장 약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알 카에다와 후세인 연계설의 근거가 아주 약하다. 유엔에서 표결에 질 것 같으니 포기한 것도 유엔을 통해 다자주의로 가겠다는 기존 미국 입장과 상당히 다른 것이다.

 

하 =그래서 이번 전쟁은 시작보다 끝난 후가 중요하다. 때리고 보니 대량살상무기가 있고, 알 카에다와의 연계가 드러나고, 이라크 국민 극소수만이 후세인을 지지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미국은 사후라도 국제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전쟁 발발의 배경


문 =9·11테러 이후 부시는 세 가지의 독트린을 만들었다. 첫째는 미국 입장에서 선악을 가르는 ‘도덕적 절대주의’다. 둘째는 미국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일방주의’다. 셋째는 ‘공세적 현실주의’인데, 미국이 위험의 근원을 찾아내 선제 차단하겠다는 것과, 미국의 이익과 명분을 위해서는 타국의 기존 주권 개념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배경이 됐다.

 

하 =거시적으로 보면 부시 입장에서는 21세기 팍스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의 중요한 실험일 수 있다. 이 싸움을 제대로 마무리하려면 명분을 얻어야 한다. 전쟁의 목표를 국제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느냐와 전쟁 과정에서 폭력 사용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느냐다. 그런 점에서 목적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대량살상무기가 나왔다든지, 민간인 피해가 거의 없어야 한다. 이런 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미국이 팍스아메리카나를 끌고 나가는 데 상당히 타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

 

◆ 전쟁 결과의 위험성


문 =부시 행정부가 바그다드에서 미군 환영 물결이 일 것으로 생각한 것은 잘못됐다. 이번 역시 이라크가 인간 방패를 쓰기 때문에 걸프전과 마찬가지로 민간인 살상자가 많을 것이다. 이게 전부 반미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민심을 추스르면서 민주공화정을 세우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크게 보아 이라크의 북쪽 쿠르드족, 바그다드 중심의 회교 수니파(Sunni派), 남쪽의 시아파(Shia派)가 각각 자치권을 원하며 대립하고, 해외에서 반(反)후세인 운동을 한 세력도 귀국할 것이다. 미국이 승리해도 복잡한 국내 상황을 갖게 될 것이다. 아버지 부시가 시리아, 터키, 이란이 중동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할 것을 우려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 =두 단계가 예상된다. 하나는 현재의 이라크 지도부를 와해시켜 반후세인 세력을 득세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세력을 규합해 하나를 만드는 단계가 있을 것 같다.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문 =후세인 집권 후 피해를 많이 본 쿠르드족(族), 수니·시아파 모두 후세인 격퇴에 큰 이견은 없지만, 전쟁 과정에서 피해가 많으면 미국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 이슬람이 강한 곳이라 이슬람 공화정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올 수도 있다. 쿠르드족 독립국가는 터키와 이란이 극히 반대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시아파들이 자치권을 갖는 것은 자기 영향력이 증대하기 때문에 찬성하고 있다. 이라크 국내·외 문제 모두 꼬일 가능성이 있다.

 

◆ 중동과 세계질서의 변화 가능성


하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반테러 명분을 내걸었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 여론은 미국이 상당히 어려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결과에 따라 부시 행정부가 미국 내에서 어려워질 수도 있고, 국제 질서 속에서 미국의 위상이 올라갈 수도,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문 =사실 과거 알 카에다는 후세인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후세인을 타도 대상으로 삼았었다. 그런데 후세인이 미국과 맞서면서 이슬람 영웅으로 부각됐다. 비례해서 이슬람 세계의 반미 감정이 고조됐다. 이집트, 사우디 집권층은 이번 전쟁 과정에서도 미국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데,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높아져 고민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전쟁의 결과, 자칫 중동의 큰 국가들이 반미 분위기에 휩쓸릴지도 모른다.

 

하 =최근 전쟁은 군사력과 경제력 등 하드 파워에다, 상대방 가슴을 움직이는 문화적 부분 등 소프트 파워도 중요하다. 미국은 오만과 일방주의로 비치는 것을 감수하면서 개전을 했다. 전쟁 진행과정에서라도 ‘정의로운 폭력’ 사용이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면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겪지 않을 수도 있다.

 

문 =미국이 이번 전쟁에서 도덕적 정통성을 잃어 미국과 각국 간 동맹체제에 엄청난 균열이 생겼다. 50년 이상의 동맹체제를 부인하고 일방주의로 가는 것은 세계질서가 미국 중심으로 가긴 가는데, 안정적 세계질서가 아니라 불안정한 세계질서로 가는 것이다.

 

하 =9·11테러 이후 미국은 전통적인 동맹국의 개념을 바꿨다. 대(對)테러전 수행 여부에 따라 동맹국 여부가 갈린다. 미국은 이미 이라크와 북한 등 7개국이 포함된 테러 지원국을 타깃으로 보고, 이에 맞서는 나머지 국가를 대테러 동맹국으로 설정하고 있다.

 

문 =9·11테러의 충격이 크다는 것은 안다. 그렇다고 이를 계기로 세계질서를 미국 취향대로 재편하려면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조지프 나이 교수도 ‘미국의 역설’이란 책에서 미국이 절대적 패권국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량살상 무기나 테러를 추방하는 것은 혼자서 못한다고 지적했다. 9·11 테러 이후 일방적 협조 요청을 하는 식의 미국 외교방식은 결국 상당 기간 혼미한 상황을 지속하다가 이라크 전쟁 이전의 다자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 이라크 전쟁과 한반도


하 =이라크전이 났다고 해서 곧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것이라고 성급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끝내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주력할 것이다. 테러 지원국을 어떤 형태로든 길들여야겠다는 전략에 따르면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북 핵 문제는 미국 주도하에 국제적 공감대 확보를 위한 외교전이 진행 중이다. 북한은 독특한 배짱외교 정책을 펴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제재 방안이 논의될 텐데 1차로는 유엔을 통한 경제제재일 것이다. 이 경우 우리도 어려워진다. 이라크 사태에 대해서는 우리 입장이 빨리 정해졌지만 북한문제는 다르다. 북한이 위험한 ‘레드 라인(red line·금지선)’을 넘어서면 유엔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상황이 되면 우리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국이 군사 행동으로 북한정권 교체를 꾀할 경우 중동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문 =이라크전이 끝나면 북한이 집중 견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라크 전쟁을 이길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북한으로 간다는 것이 바로 ‘윈·홀드·윈(win·hold·win)’ 정책이다. 하지만 이라크전이 장기전화하고 미국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북한문제에 힘을 쏟기 힘들다. 파월 국무장관의 말대로 북한이 이라크와 다른 이유도 있다. 이라크는 수십 차례에 걸쳐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고, 테러를 지원하는 중대한 과오도 저질렀다. 반면 북한의 핵개발은 제네바 합의 위반이지만 아직 의혹 단계다. 안보리 결의를 먼저 위반한 것도 아니다. 북한이 사용 후 연료봉을 이용해 플루토늄을 생산·수출하거나 정전협정 파기, 미사일 발사실험 같은 ‘레드 라인’을 넘지 않으면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있다.

한·중·일·러가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라크와는 지정학적 환경이 다른 것이다. 미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중동의 대규모 병력을 다시 동북아로 끌고 와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실제 있어서는 안 될 시나리오다.

 

하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가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현재는 미국과 북한 입장간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부러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낙관만 할 일도 아니다. 정말 한반도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을 막으려면 민족공조냐, 국제공조냐 하는 이분법이 아니라 민족적 국제공조가 필요하다. 한반도 차원을 넘어 아시아와 글로벌 차원에서 협력해야 한다.

 

문 =최근 부시와 전화 회담한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공병대를 파견하기로 한 것은 부시에게 큰 힘이 됐다. 북 핵 문제도 한·미가 공동 전략을 만들고 같이 풀어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더이상 ‘주도권’이나 ‘중재’라는 말을 안 쓰고 ‘더불어 푸는 지혜’를 터득하는 중이라고 하니, 오는 5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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