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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이라크戰은 명분전이다
 

중앙일보 

2003-03-27 


"미국이 추진하는 反테러 동맹체제 성패는 국제합의에 달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포기하고 이라크 공격을 현실에 옮겼다. 이라크전이 1991년의 걸프전과 비교해 색다른 것은 우선 공격의 핵심 원인이 반(反)대량살상무기 테러라는 것이다.

물론 석유와 같은 경제적 원인이나 지역패권과 같은 정치적 원인도 중요하지만 원인의 중심에는 대량살상무기 테러 지원국의 제거가 자리잡고 있다.

다음으로 부시 행정부는 국내적으로는 비교적 높은 언론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국제적으로는 낮은 지지 속에서 공격을 시작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 21세기 세계질서의 새 주인공

그리고 이라크 전쟁은 첨단기술전쟁이라는 표현을 유행시킨 걸프전을 질적으로 훨씬 뛰어넘는 신첨단기술전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이라크 전쟁의 찬성론.반대론.활용론이 어수선하게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현실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미국이 과거와는 다른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어떤 변모를 겪을 것인가를 깊이 있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질문은 단기적으로는 한반도의 사활이 걸린 북핵 문제의 해결 방향을 전망하고, 장기적으로는 세계 질서의 전개 방향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 개인의 운명도 알기 어려운데 한 나라의 운명을 전망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미국은 베트남전의 실패, 경제적 쇠퇴 등으로 80년대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상대적 쇠퇴론의 위험을 맞이했다.

그러나 21세기 신문명의 핵심 표준으로 부상한 정보기술혁명을 성공적으로 치름으로써 미국은 예상을 깨고 21세기 세계 질서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 그러나 이 순간에 미국은 9.11 테러라는 복병을 맞이했다.

독립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본토 공격을 받아보지 못한 미국은 항상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국가들이 보기에는 과민하다고 할 만큼 반테러를 국가 이익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그 중에서도 대량살상무기 테러를 막기 위한 필사적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지구적으로 그물망화되고 첨단기술화된 21세기 테러 조직과 싸우기 위해 테러 조직을 파괴하고, 테러 지원국을 제거하며, 테러 발생의 기반을 약화시키며, 마지막으로 미국민을 방어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세기의 냉전 동맹체제에 이어 21세기의 반테러 동맹체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냉전 군사동맹체제를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면, 이라크 전쟁은 반테러 동맹체제의 성패를 가름하는 갈림길이 될 것이다.

미 국무부의 공식 발표로는 42개국이 이라크전을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걸프전쟁 때와 달리 이라크 전쟁의 개전 과정에서 국제적 명분 획득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개별 국가들의 상이한 정치.경제적 이익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핵심적인 것은 반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명분이 충분히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 전쟁의 핵심은 군사전보다 명분전이다. 미국이 전쟁의 개전 과정에서 전쟁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에 대한 충분한 국제 합의를 얻어내지 못했다면 전쟁을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이 숙제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오만·일방주의 부담 털어내야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경우에 미국이 추진하는 반테러 동맹은 성공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실패할 경우 미국은 오만과 일방주의에 대한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 질서 조정비용이 빠른 속도로 증가함으로써 미국은 다시 한번 쇠퇴론 논쟁을 겪게 될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이어 다음 번 설 무대는 한반도의 북핵 문제다. 미국이 21세기 세계 질서의 주인공으로 계속 활약하기 위해선 이라크 전쟁의 어려움을 교훈삼아 철저한 국제 공조 속에 한반도의 이해를 충분히 고려해 오만과 일방주의의 비난을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미국의 노력에 대해 한반도의 남북이 새로운 시각에서 '민족적 국제 공조'로 화답할 수 있을 때 한반도의 핵 문제는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河英善(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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