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한국은 자강(自强)과 균세(均勢)의 절박한 생존전략을 위해서 미국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했으나 슬픈 결말을 맞이해야 했다. 20세기 중반 냉전질서의 출범과 함께 한국과 미국은 한국전쟁을 중매삼아 맞사랑을 시작했다.
탈냉전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촛불데모가 밝히고 있듯이 한·미동맹은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맞사랑을 마감하고 헤어질 때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탈냉전의 세기사적 변화 속에서 냉전의 마지막 고도(孤島)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 ‘선군정치(先軍政治)’의 불안정에 대한 7000만의 생명보험은 여전히 절실하다. 생명보험의 규모와 심각성 때문에 남북의 초보적 정치·군사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보험료를 지급하고 국제적 재보험에 들어야 하는 비극적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보험을 넘어서서 21세기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숙제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다. 중국의 역할이 커질수록, 중국과 일본은 보다 치열한 지역주도권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을 좌우에 품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강의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21세기 신문명 주도국 미국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미국도 한반도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미국은 대테러전을 수행하기 위해 지구적 그물을 필요로 하며, 한반도는 가장 중요한 그물코의 하나이다. 동시에 중국과 일본의 지역적 각축이 예상되는 속에, 미국이 아태지역의 주도권을 지속적으로 장악하기 위해서도 한반도는 중요한 거점이다.
그러면 한국과 미국이 맞이한 힘든 조정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선, 냉전시기에 형성된 비대칭적 국가 중심의 동맹을 21세기 그물 동맹으로 확대·발전해야 한다. 다음으로, 한·미동맹은 단순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정의로운 주먹의 만남이 아니라, 공동번영을 위한 돈의 만남, 서로의 이해를 합리적으로 조종하는 머리의 만남과 함께,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가슴의 만남이라야 한다.
또 한국은 냉전 사고의 유물인 친미와 반미논쟁을 넘어서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용미론(用美論)으로 남남갈등을 우선 극복해야 하며, 미국은 오만과 일방주의의 유혹을 넘어서서 동맹국들의 가슴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영선/서울대 외교학과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