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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평화학창시자 요한 갈퉁·하영선 한국평화학회장
 

조선일보 

2001-10-31 

수천 명이 숨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참사와 미국의 아프간 보복공격, 탄저균 공포의 확산….


9·11 테러 후 세계는 혼돈스럽다.


충북대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엄 ‘사랑, 평화, 정의 그리고 인류의 미래’ 기조강연차 방한한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71) 유럽 평화대학 교수와 한국평화학회 하영선(하영선·54·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회장이 29일, 충돌로 치닫는 세계질서를 진단하고 평화 회복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대담을 나눴다.


갈퉁 교수는 “1943년 열 세 살때 아버지가 나치 수용소에 끌려가면서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영선=9·11 테러사건은 단기적으로도 충격적 사건이지만, 21세기 세계질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입니다.


기원전(B.C.)과 기원후(A.D.)처럼 9·11사건을 기점으로 ‘테러 이전’(B.T.·Before Terror)과 ‘테러 이후’(A.T.·After Terror)란 표현이 나올 정도입니다.


△갈퉁=이번 테러사건을 통해 초강대국 미국이 얼마나 취약한 나라인지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크루즈 미사일이나 탱크가 아무리 많아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비행기 3대가 이 모든 걸 바꿔놓은 겁니다.


이제 세계는 결코 테러 이전과 같지 않을 겁니다.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미 의회가 목표가 됐다는 것은 미국이 약소국과 빈국(빈국)에 행사해온 정치·경제·군사적 폭력에 대한 보복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입니다.


△하영선=서구에선 정의로운 전쟁론(Just War)과 평화주의간에 오랜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갈퉁 교수의 표현인 ‘구조적 제국주의’(미국)에 대한 테러와 이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이런 논쟁의 시각에서 본다면 어떻게 평가합니까?


△갈퉁=이번 테러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어떤 경우라도 평화적 수단으로 성취해야 합니다.


폭력이 일시적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는 있어도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군사 정책 때문에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도 바꿔야 합니다.


지금 미국이 공격하고 있는 탈레반 정권은 구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미국이 지원했던 세력 아닙니까.


△하영선=21세기 세계가 죽음으로부터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9·11 테러의 책임을 심층적으로 진단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테러사태의 근본 책임을 ‘구조적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의 중동정책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는가 하면, 미국의 중동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테러의 일차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테러집단의 경직화된 이분법적 과격주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갈퉁=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순 없으나 미국 중동정책의 오류가 먼저입니다.


걸프전 이전, 아라비아 반도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은 수천 명 안팎이었으나 전쟁 이후 수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정책을 바꾸고,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게 해결책입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오사마 빈 라덴과 부시 대통령은 거의 비슷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 공습 이후 낸 성명서 후반부는 이 세계를 선과 악의 두 편으로 나누고 대결을 부추기는 부시 연설과 흡사합니다.


△하영선=9·11테러와 응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요? 과연 테러의 원인 제공 요인들을 현실적으로 제거해나가는 방안은 무엇이며, 동시에 테러와 같은 정의롭지못한 대응수단을 막는 길은 무엇일까요?


△갈퉁=테러와 싸우기 위한 세계 네트워크는 필요하지만, 미국 주도가 아니라 유엔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미국은 행동에 나서기보다 깊은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타 문화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교육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정리〓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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