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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좌담] 공격당한 미국 - “테러가 21세기 국제사회의 가장 큰 위협”
 

조선일보 

2001-09-13 

◈ 안병준박사(학술원회원·정치외교학)
▲경남 밀양 출생·65
▲연세대·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
▲외교통상부·국방부·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하영선교수(서울대·국제정치학)
▲서울 출생·54
▲서울대·미국 워싱턴대 국제정치학 박사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
▲통일부 자문 통일정책평가회의 위원


◈세계 최강국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과 뉴욕에 가해진 미증유의 자살테러공격은 향후 국제사회에 예측을 불허하는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상상을 초월하는 테러방식, 엄청난 사상자수, 전지구적인 충격 등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과 함께 향후 국제사회, 특히 우리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이 국제사회와 한반도 정세에 초래할 일파만파의 영향에 대해 안병준(안병준) 전 연세대 교수와 하영선(하영선) 서울대 교수가 긴급 좌담을 가졌다.
/편집자


▲하영선=테러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머리에 떠오른 것은 탈냉전 10년 동안 미국의 백악관, 국방부 등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4대 요소로 늘 강조했던 지역분쟁의 위협, 핵무기와 같은 잠재적 위험성을 가진 기술 확산, 국가와는 다른 조직으로 이뤄진 테러집단에 의한 초국가적 위협, 비대칭적 집단의 적대적 행위 중에서 세번째와 네번째 사항이었다.


사실 이 둘은 강대국 미국의 안보 위협이라는 면에서 조금 격이 떨어지는 요소가 아닌가 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테러사건은 전형적으로, 행위 주체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초국가적인 위협이고 동시에 동원된 폭력 수단도 그야말로 비대칭적 수단이다.


칼과 마분지 절단기로 핵폭발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보였다.


미국 스스로에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번째, 네번째에 꼬리표처럼 달고 있었던 위협이라는 게 명실상부한 21세기적 위협이 됐다.


▲안병준=이번 사건으로 소위 탈냉전 시대 미국에 대한 위협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 마디로 위협의 주체가 불분명한 무정형의 안보위협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위협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중시해왔다.


하나는 핵과 같은 대량파괴살상무기이고 또 하나는 테러리즘 환경파괴 에이즈 마약 밀수 등이다.


그런데 전자는 국경이 있어 물리력으로 막을 수 있지만 후자는 이번 사건에서처럼 대비 자체가 쉽지 않다.


테러는 사전예방이 최고의 방책인데 사실 최첨단기술을 가진 미국도 이러한 테러주의자가 어디서 나타날지를 사전에 찾아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국경없는 경제, 운송, 통신의 세계화 시대가 새로운 위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한 달 전쯤 오랜만에 뉴욕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최근 도쿄를 방문해 보면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우울함을 느낄 수 있는데 뉴욕은 지난 10년간 되찾은 것에 대한 밝음이 느껴졌다.


그런 뉴욕에서 미국, 나아가 세계 경제의 심벌이라고 할 수 있는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면서 21세기의 전쟁과 평화라는 것을 또 한번 보여주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폭력행위의 주체가 다양화되고 그 수단 또한 예측을 불허한다.


결국 그에 대응하는 대책 역시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안=문제는 이런 테러가 모방범죄식으로 이어지면서 계속 될 것이라는 데 있다.


지금까지 전쟁은 주로 영토쟁탈 혹은 국가의 이익 상충에서 발발했다.


그런데 테러는 영토뿐 아니라 소외 세력이 자기들의 원한과 불만을 표시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최대의 힘을 행사하는 데서 소외된 세력은 항상 등장할 테고, 군사력으로 전쟁을 할 수 없으니 결국 이들 세력은 테러 등 절박한 방법을 감행할 것이다.


▲하=앞으로 그 영향이 좋은 쪽으로 갈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는 것은 분명하다.


우선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서 채 1년도 안되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


부시는 선거 때부터 미국적 국제주의를 주창했고 집권 후에도 이 구호 아래 대외문제와 국내문제를 꾸려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미국적 국제주의에서 ‘미국적’에 더 무게가 실리면서 미국적 내셔널리즘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안=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 정부는 국방·안보 예산을 증대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MD나 국방예산을 감축해,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이 반발했는데 이번 사건 계기로 민주당의 이런 목소리도 줄어들 것이고 국방 안보관련 예산도 다시 증대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대외 강경론이 한 동안 지배하게 되지 않을까 전망한다.


▲하=일부에서는 부시의 미사일 방어(MD) 중시정책이 테러문제에 대한 소홀함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번 사건으로 미사일 방어구상이 후퇴하리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반대로 미사일 방어구상은 국방예산 증대와 함께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본다.


▲안=이번 사건은 미사일 방어구상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유는 미 공화당 일부 전략가들은 탄도 미사일도 테러무기라고 보고 있다.


거기에 미국이 무방비상태에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여론이 확산될 것이고 결국 미사일 방어계획에 대해 삭감됐던 예산 등을 다시 올리고 적극 추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적지 않은 부정적 효과들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하강국면에 있는 미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있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터졌다.


미국의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이 상당히 장기화되면서 우리에게도 어려움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군사안보적 차원에서는 미국이 대내외적으로 다시 추스려 미국적 국제주의를 추진해 나가야 하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국제 군사정책 차원에서 대응 폭이 상당히 경직될 가능성이 있다.


부시 행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의 폭이 좁다는게 문제다.


대북정책의 경우에도 기왕의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문제 등에 대해 더 엄격한 조건과 실천이행을 요구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훨씬 더 엄격해질 것 같다.


▲안=이번 사건이 단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세계 지도력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시가 앞으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미국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느냐에 따라 오히려 부시가 국민적 호응을 받는 기회도 될 수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94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고 자기 부인 힐러리가 강력히 밀었던 건강보험에 대한 법안을 의회가 반대해 큰 위기에 처했는데 같은 해 발생한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 폭발사건 후 보여준 호소력 있는 지도력으로 인기가 급부상, 그 이후 잘 풀어나갔다.


이번에도 부시가 지도력이 좀 약하다는 비판을 받는 시점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


미국민의 지지를 받고 우방과 동맹국의 지지를 얻고 부시가 테러리즘에 잘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미국 내부적으로 본다면 분명 부시의 지도력이 검증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국제적인 지도력 문제에 있어서는 이번 사태가 새뮤얼 헌팅턴 유의 불길한 예언이 가시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돼서는 안될 것이다.


헌팅턴이 얘기하는 것은 문명의 충돌이 있으니 서구 문명이여 단결하라는 것이다.


근본주의자 강경론자들에 강력 대응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테러행위를 문명의 충돌이라는 것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자이드의 반론도 있었다.


이번 테러사태로 미국민의 수많은 죽음이 있었고 미국이 테러의 후유증 극복을 위해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대응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지지를 얻어 나가는 것도 반드시 챙겨야 할 중요 문제다.


▲안=이번 사건은 문명간의 충돌이라기보다는 문명 대 비문명, 문명 대 야만의 충돌이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상징을 공격함으로써 미국의 위상이 좀 떨어지겠지만 그것은 일시적 현상이다.


오히려 미국의 힘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테러행위가 미국에서 생겼지만 다른 나라에도 얼마든지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인류 공통의 가치, 즉 생명 등에 대한 테러이기 때문에 미국에 반대하는 나라도 테러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지도력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북·미외교와 관련해서도 분명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일단은 좋은 방향보다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원래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조건도 엄격한데 이번 테러사건으로 대북협상의 조건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북한의 전향적 자세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미국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안=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1993년 북한이 NPT 탈퇴 선언을 했는데 그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 협상을 해서 제네바 핵 합의를 했다.


그것은 북한이 NPT조약 탈퇴를 철회하지 않으면 95년 4월에 NPT조약을 갱신하게 돼 있었는데 전세계적인 NPT조약이 깨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어떤 면에서는 당황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위협이 실질적으로 감소해야 한다.


그래야 상응조치를 하겠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지킬 것으로 본다.


더 강경해지리라고는 보지 않아도 유독 북한에 양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하=직접적 남북관계를 연관해서 생각을 하면, 북·미협상과 남북관계라고 하는 것이 별개로 작용하지 않고 또 이번 일련의 사태를 통해 북·미 협상이 순항될 전망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그 한계 내에서 남북관계가 조정될 것이라고 전망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문제도 북·미협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면 현실의 변화를 차갑게 읽고 대응해야 할 것임을 정책당국자에게 권고하고 싶다.


▲안=남북관계와 관련해서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좋지 않다.


이것이 남북한 관계에 어떤 영향 미치느냐는 북한의 태도에 달렸다고 본다.


15일 열리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이 좀 더 성의를 보이고 이미 약속했던 것은 이행하고, 예를 들어 경의선 복구사업에 대해 투자행동을 취한다든지, 중단된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속개한다든지, 이런 면이 보이면 북·미 협상의 여지가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북, 북·미관계는 상당히 어려운 국면을 맞는다.


/정리=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김덕한기자 duck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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