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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정일의 벼랑끝 외교
 

조선일보 

2001-07-27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 방문길에 올랐다.


한·러 수교와 함께 악화되었던 북·러 관계는 1990년대 중반부터 개선되기 시작하여, 지난해 7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러 공동선언’에 합의함으로서 정상화되기에 이르렀다.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이루어지는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지난해 쌍무관계와 상호관심의 국제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뤘던 공동선언 내용을 재점검하고 북·러 간의 보다 구체적인 외교·군사·경제협력문제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러 공동선언’이 실리조항보다는 명분조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국내외의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난제 해결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북·러 관계를 넘어서서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이 현재 풀어야 할 최대의 숙제는 북·미 협상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전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거친 후, 6월 초 북한과의 대화재개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제안한 핵, 미사일, 재래식 군사력태세 등의 의제가 일방적이고 부당하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의 적대시정책과 원자력발전소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보상문제부터 토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북·미 협상은 역사적으로 사건의 발단, 쌍방의 벼랑끝 외교, 협상타결의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와 미사일협상을 본격화했으나, 부시 행정부 등장으로 다시 한번 벼랑끝 외교과정을 거쳐야 하는 형편에 놓여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뒤따라 이루어질 장쩌민(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방문을 대미(대미) 벼랑끝 외교의 수단으로서 최대한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탈냉전 세계군사전략의 방향을 핵전력의 감축과 정보기술혁명에 기반한 ‘다층적 억지와 방어’능력의 개발에 두고, 러시아 대신 중국을 잠재적 가상적으로 하는 새로운 21세기 동맹체제의 구축을 시도하는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벼랑끝 외교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 벼랑끝 외교의 위험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21세기 동북아의 새로운 판짜기에 대비해야만 한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이후 남북 관계 전망은 러시아 방문 자체보다는 북·미 협상의 전개과정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북한은 지난 10년간의 북·미 및 남북 협상과정에서 북·미 협상이 벼랑끝 외교로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한반도 긴장이 정책수단으로 필요하므로 남북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으며, 북·미 협상이 타결국면으로 들어서면 남북대화를 활성화하였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북·미 협상의 벼랑끝 외교로 이어진다면 남북관계는 쉽사리 활성화되기 어렵다.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오는 9월 장쩌민 주석의 평양 방문을 맞아, 우리 정부가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성급한 판단으로 한반도의 위기와 주변4강으로부터 사면초가를 초래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4강 외교가 한반도의 위기로 전개되지 않게 하려면, 북한의 닫힌 자주외교와 미국의 닫힌 동맹외교가 한반도에서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한국형 예방외교를 시급히 가동해야 한다.


동시에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21세기 동북아의 새로운 판짜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19세기의 역사적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21세기 동맹외교를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가를 보다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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