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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외교난국 타개 급하다
 

중앙일보 

2001-03-30 

3.26 개각과 함께 새 외교안보팀이 구성됐다. 새 팀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당면 외교난국의 심각성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당국이 외교난국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것은 한.미 정상회담의 준비.진행, 그리고 결산과정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각성 드러낸 공조문제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공조의 비관론이나 신중론보다는 낙관론에 기대를 걸었던 정부는 정상회담의 사전 조율을 위해 이례적으로 외교통상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미국에 보내는 이중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과 미국은 정상회담에서 상대방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공조의 모습을 보였으나, 상당한 대북관의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남.북.미 공조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정상회담 결산 과정에서도, 정부당국은 한.미 공조의 낙관적 가능성만 강조하고, 남북 공조와 한.미 공조의 갈등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한.미 공조와 남북 공조의 갈등이 외교난국으로 악화하고 있는 것을 새 외교안보팀이 하루 빨리 인식하고 타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다시 한번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북.미관계는 1990년대 이래, 영변 위기, 금창리 위기, 대포동 위기라는 위기 주기 속에서 사건의 발단, 쌍방의 벼랑끝 외교, 협상타결의 길을 걸어왔다. 클린턴행정부가 대포동 위기를 협상타결하기 위한 작업을 끝내지 못한 채 떠나 버린 후 부시행정부와 북한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언어의 벼랑끝 외교를 벌이고 있다.

 

외교난국의 위험성은 언어의 벼랑끝 외교보다는 미사일 위협과 NMD체제 문제의 협상과정에 있다. 북한은 이 문제에 대해서 "미국이 떠드는 우리의 미사일 위협이란 저들의 국가미사일방위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명분을 세우고 그를 위한 시간을 얻어내기 위해 꾸며낸 한갓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반면 부시행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현재 국방장관인 도널드 럼즈펠드가 주관해 98년 7월 의회에 제출했던 럼즈펠드 보고서의 지적대로 허구가 아닌 실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햇볕정책에 쏟는 정성만큼 부시행정부가 신경을 쓰는 NMD 정책은 러시아와 중국의 강한 반발을 회피하기 위해 1단계에서는 위험국가들의 대표로 평가하고 있는 북한에 적용될 것이다.

 

이러한 대조적 입장 속에서, 부시행정부는 클린턴행정부에 비해 훨씬 강화된 상호주의와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북한은 자주외교의 원칙에서 이러한 요구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므로, 협상 국면은 어렵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새 외교안보팀이 난국 타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공조의 기반 위에 남.북 공조 가능성을 모색하는 세련된 복합조종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北.美 복합조종외교 펴야

 

북한의 닫힌 자주외교와 미국의 닫힌 동맹외교의 갈등 속에서 한국이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모두 소외 당하지 않고, 남.북.미 공조의 가능성에 기여하려면, 북한의 열린 자주외교와 미국의 열린 동맹외교의 만남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 능력에 기반한 닫힌 자주외교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외교.경제적 지원에 기반한 열린 자주외교를 추진하도록 최대한 조종해야 한다.

 

한편, 우리 정부는 미국이 NMD체제에 기반한 닫힌 동맹외교를 한반도에서 최후수단으로 선택하기 이전에 외교.경제적 수단에 기반한 열린 동맹외교를 최대한 펴나가도록 조종해야 한다.

 

이러한 복합조종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지 못한다면, 우리의 외교난국은 점차 어려움을 더해갈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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