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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NMD사고'와 정상회담
 

중앙일보 

2001-03-06 

한.미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반대 여부와 관련해 우리 외교에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답답한 것은 정부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예상치 못하고 있다가 상대방의 문제 제기에 따라 뒤늦게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악수를 계속해 두고 있는 것이다.

 

***실수 연발하는 외교당국

 

사고가 발생한 것은 지난달 27일 한.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ABM 조약을 보존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NMD 체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ABM 조약의 개정이 꼭 필요한 부시 행정부로선 가장 가까운 동맹국의 하나인 한국의 이러한 입장표명에 적지 않게 당황했으며, 동시에 한국은 미국의 문제 제기에 뒤늦게 당황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외교가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대형 사고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우선 정부 당국자들의 논평이 보여주고 있는 ABM조약과 NMD체제에 대한 이해도가 놀랄 정도로 낮다는 것이다.

 

ABM조약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전국을 방어하지 못하도록 하는 ABM조약과 전국을 방어하려는 NMD체제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강변을 할 용기는 없을 것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NMD 추진방향은 정부의 설명처럼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미국 내의 정치.경제적 고려와 러시아.중국 및 동맹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북한을 선두로 하는 대륙간탄도유도탄 개발우려 국가에 대한 제한적 NMD의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낮은 수준의 현실인식 위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의 표면적 입장인 ABM조약의 보존 및 강화를 받아들여 한국의 공식입장으로 밝힘으로써, 한국은 전세계가 놀라는 속에 미국 NMD 계획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대표적 국가로 급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동성명의 관련내용을 먼저 제의한 러시아는 오히려 표면적 입장과 달리 미국의 NMD가 러시아가 대상이 아니라 북한을 비롯한 우려국가 대상이라면 미국과 협력해 NMD를 검토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NMD 사고' 의 보다 큰 심각성은 사고의 발생과정에서 국가이익의 총체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남북한 이해의 고려에 비해 한.미 이해의 고려를 충분히 검토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선택이 소박한 평화철학이나 초보적 세력균형론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크다.

 

NMD를 둘러싼 대형 사고를 조기 수습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단기적으로는 한.미 정상회담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부당국이 표명하고 있는 전략적 모호성 속에 호의적 이해라는 입장은 사고 이전에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이미 한.러 공동성명에서 입장을 밝혀서 동맹신뢰도가 하향 조정된 것을 다시 회복하는 방법으로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정상회담의 핵심은 金대통령의 햇볕론적 사고와 부시팀의 NMD적 사고의 만남이다. 金대통령이 실추된 미국의 대한(對韓)신뢰도를 회복하면서도 북한의 신뢰획득에 기대를 걸기 위해서는 햇볕론적 사고와 NMD적 사고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

 

*** '사고' 원인 철저 규명해야

 

이러한 조화의 첫 출발은 북한을 비롯한 우려국가들의 핵.미사일 확산은 지구.지역.한반도 안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합의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확산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외교와 군사수단을 상정해야 하나 우선 외교적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체제의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당국이 한국정부의 기대를 저버리면, NMD의 국제공조는 결과적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NMD사고' 의 재발로 인한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의 단기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상회담이 끝나는대로 'NMD 사고' 의 발생원인을 보다 철저히 규명하고, 그 기반 위에서 제도적 결함을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하며, 동시에 전략적 사고에 걸맞은 외교정책을 발상할 수 있는 수준향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하영선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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