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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미국을 정확히 읽어라
 

중앙일보 

2001-02-16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앞두고 한.미간의 대북정책 조율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에 이어 임동원(林東源)국정원장의 방미가 이뤄졌으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3월 초순으로 확정됐다.

 

*** 낙관할 수 없는 공조체제

 

한.미간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 공조의 장래에 대해서는 낙관론.비관론, 그리고 신중론이 혼미한 속에 쉽사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3월의 한.미 정상회담이 이러한 혼미의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낙관론.비관론.신중론의 허와 실을 조심스럽게 따져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중론의 핵심은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외교분야의 신인이고, 동아시아담당 외교실무진이 현재 구성 중에 있는 단계에서 성급하게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의 방향을 논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공조의 핵심은 한반도 문제의 해결방안에 대한 김정일식 사고, 김대중식 사고, 미국 공화당 중도파식 사고의 갈등과 조화를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무진 구성과 대북정책 재검토 이전이라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급히 미국 대북정책의 방향을 주도하게 될 공화당 중도파의 대북문제에 대한 기본적 사고와 정서를 정확히 읽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의 우리측 첫 과제도 부시 대통령에게 남북 공조의 성과를 설득하려는 단기적 노력보다는 부시팀의 대북문제에 대한 기본입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려는 장기적 노력에 비중을 둬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한.미 공조의 신중론을 넘어서서 강한 낙관론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낙관론은 부시 신 행정부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원칙적으로 계승해 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론은 보다 신중한 재검토를 필요로 하고 있다. 공화당 중도파의 대북정책 시각을 잘 보여주는 아미티지보고서를 작성했던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해 한국 방문 때 클린턴 행정부 대북정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페리보고서를 B학점으로 평가했다.

 

아미티지 부장관이 페리보고서에 C학점을 주지 않은 이유는 외교와 군사의 2단계 접근에 원론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며, A학점을 줄 수 없는 이유는 화해 중심의 1단계에만 중점을 둠으로써 견제 중심의 2단계를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았고, 또 준비할 의사도 충분히 없었으며, 1단계에서 상호성과 투명성의 중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단체 외교협상 과정에서 미국 기준의 상호성과 투명성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에 클린턴 행정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2단계 군사 견제로 옮아갈 위험성이 높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한.미 공조는 어려움을 주게 될 것이다.

 

*** 미래 지향적으로 나가야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미 정상회담이 한.미간에 합의된 북한관 위에 북한이 대미 및 대남정책에서 지켜야 할 상호성과 투명성의 원칙을 함께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미의 북한관은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따라서 북한의 대미 핵.미사일 협상이나 북한의 대남 평화체제 협상에서 한.미 공조의 상호성과 투명성 기준 설정에 난관을 겪게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관론이 현실화되지 않게 하려면 우선 북한이 김대중 정부와 부시 정부의 대북 인식 편차를 메워줄 수 있는 방향으로 대남 및 대미정책을 미래지향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이러한 변화를 지원할 수 있는 보다 본격적 국제공조체제의 마련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河英善(서울대 교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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