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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21세기를 내다보며
 

중앙일보 

2001-01-05 

명실상부한 21세기의 새해가 밝았다.

 

다가오는 한 세기를 여유있게 내다 보기에는 2001년은 '제2의 IMF관리체제' 를 걱정할 만큼의 경제적 어려움, 남북한 관계개선의 불투명,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출범에 따른 한.미 공조관계의 재구축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한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삼중고의 위험성은 일차적으로는 지난 3년간의 국정운영의 결과이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지난 두 세기 한국 근현대사의 자기전개적 한계 때문이다.

 

따라서 삼중고의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넘어서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통령 주도하의 국정쇄신 방안에는 불가피한 한계가 있으며, 세기를 내다보며 근본적 극복방안을 찾으려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국내적으로 21세기 한국형 모범국가 건설을 위한 새로운 주도세력의 등장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세계화.정보화와 함께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세계질서의 중심에서는 새로운 주도세력에 의한 21세기형 국가 재창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전개였던 군사 권위주의와의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세력들에 대한 보상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

 

머리로 21세기를 준비할 겨를 없이 온 몸으로 쫓겼던 민주화투쟁의 대통령부터 386세대까지가 21세기를 21세기답게 맞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21세기를 20세기 또는 19세기적으로 풀어나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진보세력으로 착각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풀어나가기 위한 해결의 실마리는 이미 역사적 임무를 완료한 민주화 주도세력이 무리하게 당일치기로 공부해 21세기를 감당하겠다는 과욕을 버리는 데 있다.

 

21세기를 21세기답게 풀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진보세력의 등장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 만족할 수 있을 때 한국의 21세기는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남은 2년 동안에 할 일이 무엇인가는 자명하다.

 

다음으로 닫힌 통일을 넘어선 열린 통일의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21세기의 역사는 한 국가로만 통하는 닫힌 통일이 아니라 국가뿐만 아니라 지구.지역.지방.개인과 모두 통하는 열린 통일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국내 통일논의 수준은 19세기의 닫힌 통일론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金대통령의 평양 방문이나 올해로 예정돼 있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한국 방문이 남북한 주민의 평화.번영.인권과 동아시아의 평화.번영을 동시에 품는 열린 통일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남북한 정상의 화려한 만남도 21세기 한반도형 모범국가 건설에 별다른 역할을 하기 어렵다.

 

21세기의 열린 통일을 위해 또 하나 시급한 것은 통일방안 논의의 비현실성 극복이다.

 

6.15 공동성명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공통성이 있으므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의 국가연합이나 연방제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면 그 성패 여부는 방안의 유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념과 체제의 유사성에 있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21세기 복합공간의 활용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21세기 세계정치는 새로운 세력균형론과 더불어 지구.지역.국가.지방.개인, 그리고 사이버공간을 동시에 활용하려는 지구조정(Global Governance)론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공간의식과 공간활용수준은 19세기의 세력균형론.자유주의론.제국주의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프로들의 바둑을 19세기 오목의 논리로 대결하려는 용기를 발휘하고 있다.

 

21세기 복합공간의 한국적 활용방안을 마련하려면 하루 빨리 19세기가 아닌 21세기 세력균형 방안을 터득해야 하며 이에 못지 않게 지구와 사이버공간을 포함한 복합공간의 한국형 지구조정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하영선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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