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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담] 급변하는 미·북 관계
 

조선일보 

2000-10-25 

“북 평화협정 체결 힘쏟아 미 미사일 포기에 관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은 한반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방북)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본지는 미국의 대북 접근의 외교·군사적 의미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미·북 관계를 전망하기 위해 정세현(정세현) 경희대 객원교수(전 통일부차관)와 하영선(하영선) 서울대 교수를 초청, 김창기(김창기) 정치부장 사회로 긴급 대담을 가졌다.
/편집자

 

▲정세현 전 차관=24일 북한 방문 일정을 사실상 마친 올브라이트 장관이 북한 미사일 문제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발사 중단’은 이미 지난 12일 조명록(조명록) 특사의 방미 때 북·미 공동성명을 통해 거듭 확인됐던 일이므로, 현재 남은 문제는 앞으로 북한의 미사일 개발 중단과 시험발사 포기, 수출 포기 등을 어떻게 받아내며, 그 대가로 무엇을 어떻게 주기로 하느냐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의 미사일 수출 중단 대가는 돈으로, 장거리 미사일 개발 중지는 첨단 기술 이전 등으로 ‘보상’하기로 합의를 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 회담이 남아 있지만 대략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의 큰 골격이 잡힌 것 같다.

 

이로써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성사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하영선 교수=미·북관계에서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핵과 미사일의 개발 저지이다.

 

클린턴 방북을 위해서는 이 문제에서 이번에 진전을 보지 않으면 안됐다.

 

북한은 결국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때 택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처리방식과 동일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즉, 우선 미사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최대한의 지원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반대급부의 구체적 내용은 현금·기술지원을 포함하여 심도있게 논의될 것이다.

 

미사일의 군사적 이용과 관련해서도 북한은 영변 핵시설 때와 마찬가지로 개발·발사·수출 등으로 세부적으로 나눠서 협상하려 할 것이다.

 

동시에 미국이 이 문제를 핵심과제로 생각하고 있음을 잘 아는 북한은 평화보장체계 논의와 연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은 클린턴이 북한에 가서 핵·미사일에 대해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는 명확한 그림을 그리려 할 것이고, 북한은 반대급부를 받으면서 동시에 평화보장 체계에 대한 언질을 받으려는 줄다리기를 하게 될 것이다.

 

▲정=클린턴 방북 전에 한·미간 조율이 중요하다.

 

평화체제와 관련해서 우리 국민 정서와 어긋나는 것을 미국이 불쑥 내놓는다면 햇볕정책 자체도 타격을 입는다.

 

또, 미사일 수출 중단 대가로 돈을 달라고 할 경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방식으로 하자면 곤란하다.

 

▲하=미국은 KEDO 방식과 비슷한 시도는 할 것이다.

 

미사일 수출 중단 대가로 지불할 비용 부담을 위해 한·미·일을 중심으로 하고 유럽 등을 붙여서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미사일에 관한 한 우리가 직접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실질적으로 중·장거리 미사일에 위협을 느끼는 일본이나 미국 등이 부담해야 할 것이다.

 

▲정=미사일 문제만 풀리면 외교, 경제는 다 넘어간다.

 

미사일 문제가 풀리면 미국의 대북(대북) 경제제재가 해제되고, 그러면 국제금융기구의 대북 차관 등도 가능해진다.

 

외교의 경우, 미·북간에 연락사무소를 하든, 대표부를 차리든, 대사관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과거 미·중간에 ‘연락사무소‘라고 해서 권한이 없지는 않았다.

 

기능이 중요하다.

 

▲하=북·미는 10·12 공동성명에서 ‘상호간에 오랜 불신을 해소하고 상호 관심사를 협의해 나간다’고 했다.

 

상호 불신은 핵·미사일과 테러인데, ‘테러’ 문제는 어느 정도 합의된 것이고, ‘미사일’이 합의되면 양쪽의 관심사는 외교와 경제다.

 

미국은 경제 제재를 풀기는 하겠지만 대북 직접 지원은 최소화하고, 대신 국제기구나 한국·일본이 최대한의 경제지원을 하도록 할 것이다.

 

▲정=이번 올브라이트 장관 회견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중요한 부분이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가진 최대 현안은 핵과 미사일의 개발 동결이지만, 북한이 미국에 대해 갖는 최대 관심사는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다.

 

조명록 특사의 방미 때 발표한 ‘10·12 미·북 공동성명’에서도 이 문제가 우선적으로 취급됐다.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가장 중시하고, 이번에도 올브라이트에게 이 문제를 강조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 미국은 ‘한반도 평화 문제는 4자 회담의 틀 안에서 이야기하자’고 설득했을 것이다.

 

지난주 서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때 방한했던 탕자쉬안(당가선) 중국 외교부장은 올브라이트 장관의 북한 방문을 환영하면서 ‘빨리 4자회담을 하자’고 언급했다.

 

장쩌민(강택민) 중국 주석이 내년초쯤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뜻의 말도 했다.

 

결국 북한을 놓고 중국과 미국이 외교전을 벌이는 것이다.

 

중국도 4자회담을 강조하고 있으니 북한이 4자회담 자체를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미·북 평화협정을 강조한다.

 

4자회담을 연다고 해도, 미·북을 중심으로 하려 할 것이다.

 

한국이 정 반발하면 북한은 한국을 포함시킨 3자회담을 하자고 할지 모른다.

 

▲하=한반도의 시각에서 보자면 핵·미사일 문제보다도 북한이 근본문제로 보는 ‘새로운 평화체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북 ‘잠정 협정’ 체결을 제의한 북한의 1996년2월 외교부 성명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한은 미국의 대한(대한) 정책과 ‘북·미관계 수준을 고려해서’ 평화협정 대신에 ‘조·미(조·미) 잠정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안을 했다.

 

북·미간에 잠정협정을 체결하고 그 이행을 위해 북·미간 공동군사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북한이 이 입장을 견지하는지, 아니면 더 진전된 자세인지를 주목해야 한다.

 

만약 북한이 4년전 입장에서 논리를 전개한다면, 문제가 어려워진다.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한반도 평화협정은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어 체결하고 미·중이 이를 보장하자는 ‘2+2’이다.

 

그러나 북한의 잠정협정 체결방식에 따르면 남·북은 불가침선언과 군사공동기구를 구성하고, 미·북간에는 평화협정과 공동군사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번 미·북 공동성명에서 가장 애매모호한 것이 평화보장체계 문제였다.

 

북이 원하는 문항과 미국이 원하는 문항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한국형 ‘2+2’를 관철하려는 한국 입장과, 분리된 ‘2+2’를 하려는 북한 입장 속에서,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할 것이냐가 대단히 중요하고 주목할 대목이다.

 

일부 떠돌아 다니는 소문에 따르면, 북·미간에 수교협정을 체결하면서 부속문서의 형태로 평화협정과 같은 내용을 포함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사실 그것이 새로운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의 입장에서 실질적 체제 불안은 미국에서 온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문서로 체제 보장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이 미국과 수교를 하면서 평화우호조약 같은 성격의 합의를 수교협정에 포함시킨다면 우리가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다.

 

미국이 북한 체제를 그런 식으로 문서로 보장해주는 것이라면, 우리도 괜찮고, 북한도 좋고, 중국도 양해할 수 있다.

 

▲하=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과거에 대한 법적 정리의 측면이 있지만, 궁극적 목적은 미래의 정치군사적 담보를 위한 것이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협정이라면 당연히 당사자인 남북이 주(주)가 되고, 미·북 관계는 종(종)이 돼야 한다.

 

북한과 미국의 협정이 주가 되고 남한이 종이 되는 구도는 곤란하다.

 

▲정=과거 북한은 잠정협정을 주장하다가 결국은 제네바 4자회담에 응했다.

 

북한이 1996년 이후 입장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미 한반도 정세는 많이 바뀌었다.

 

미·북이 수교를 하면 수교 협정은 필요하다.

 

미국과의 평화관계 설정을 수교협정의 부속 조항으로 넣는 것은,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일 수 있다.

 

▲하=미·북 수교를 위해 조약을 맺는 것은 좋은데, 한반도의 평화 문제를 미·북간 협정에서 다루는 것은 곤란하다.

 

미·북간 조약이 그들끼리의 수교를 위해 맺어지고, 한반도 평화에 관해서는 남북간에 전체적인 조약이 맺어진다면 괜찮다.

 

하지만, 최근 남북 군사당국 회담에서는 평화문제는 별로 논의되지 않았고 그 수준이 낮았던 반면, 북한이 미국에는 조명록이라는 군 대표를 보내고, 주로 평화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은 우려할 현상이다.

 

남북 정상회담 때 우리는 평화문제를 주로 논의하려고 갔지만 ‘자주적 통일’이 주로 논의됐다.

 

미국은 북한에게 핵·미사일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만, 조명록 방미 때 나온 공동성명은 평화문제를 제일 앞에 올려놓았다.

 

이런 구도 속에서 볼 때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정=북한이 미국을 붙잡는 것은, 미·북 문제가 풀려야 일·북관계가 진전되고,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금 문제도 빨리 매듭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기 돈을 풀지 않고 일본 돈을 풀려고 하든, 국제기구에서 돈을 주도록 허용하든 간에, 북한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크다.

 

일시적으로 미·북 관계가 남북관계보다 앞서갈 수는 있다.

 

우려할 필요 없다.

 

걸을 때 오른발 왼발이 서로 엇갈려 나가지 않나.

 

어떻게 두발 함께 깡충깡충 뛰나.

 

미·북 관계가 잘 되면 일본과 국제금융기구의 돈이 북한에 들어갈 것이므로 우리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하=미·북 관계가 우리보다 앞서느냐 뒤서느냐의 논의는 큰 의미는 없다.

 

문제는 미·북 관계가 어떤 내용으로 진전하느냐다.

 

미·북간의 외교·경제관계 개선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에 연관된 사안에서 미·북이 주(주)가 되고, 한국이 종(종)이 되는 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미국은 핵·미사일만 해결되면 대북정책에서 우리보다 좀 더 유연하게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각각 최종 복안은 숨긴 채, 일단 서로 하나씩 카드를 보인 상태다.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과제다.

 

지금 굉장히 복잡한 게임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리=박두식기자 dspark@chosun.com

 

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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