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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미 회담과 한반도 평화
 

중앙일보 

2000-10-12 

평양에서는 조선노동당 창건 55돌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속에 조명록(趙明祿)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21세기 '강성대국과 자주통일' 을 위한 대미(對美)외교의 나들이가 이루어졌다.

 

趙특사는 워싱턴 도착성명에서 방미의 최우선 과제를 '한반도에 확산되고 있는 평화와 화해의 환경에 호응하도록 조.미관계를 증진' 시키는 것이라고 밝힌 다음에 "두나라의 뿌리깊고 오랜 불신을 제거하고 두나라 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올려놓는 획기적 변화를 이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이러한 공식입장은 21세기에 강성대국을 건설하고 자주통일을 이루기 위해 북한이 희망하는 대미외교의 기본방향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우선, 북한은 북.미관계의 근본문제를 북.미간의 평화협정 체결에 두고 있다. 다음으로, 북.미관계의 현실문제로서 핵.미사일문제와 테러문제 등의 불신을 제거하고 외교 및 경제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페리보고서 이래의 일관된 대북정책의 기본방향으로서 북한이 핵.미사일 계획을 포기한다면 평화체제 구축을 포함한 관계정상화의 길을 모색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위협을 봉쇄하는 행동을 취하겠다고 밝혀 왔다.

 

북한과 미국이 취하고 있는 이러한 입장 차이 속에서 21세기 북.미관계의 장래는 북한이 근본문제로서 삼고 있는 북.미간의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우선, 북.미관계의 현실문제인 핵 미사일문제와 테러문제 등의 불신을 제거하고 외교.경제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는 노력은 90년대에 들어서서 이루어졌던 제네바 합의(1994).뉴욕합의(99).베를린 합의(99)에 이어 일정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기대하는 핵.미사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생존과 자주권의 마지막 담보로서 쉽사리 포기할 수 없으며, 반면에 북한이 추구하는 북.미평화협정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따라서 북한이 북.미 관계의 진정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북.미 평화 협정의 지속적 주장이 한반도의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장기적인 노력의 일환이라는 한국과 미국의 불신구조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남북간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현재와 같이 소극적 입장을 보일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풀어나가는 동시에 이러한 평화체제를 주변국들로 부터 보장받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길 일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남북이 아닌 북.미를 축으로 풀어나가려고 노력하는 한 강성대국 건설과 자주통일의 달성이 평화지향적이라는 신뢰를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획득하기 어렵다.

 

한편 미국은 조명록 특사의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현안인 핵.미사일 개발과 테러문제의 불신을 해소하고 북한과 외교.경제관계 개선문제를 건설적 방향으로 풀어나가는 방향은 바람직 하나 북.미간의 평화협정 체결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과 함께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는 조명록 특사의 방미를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 이래의 남북관계 개선의 우선 순위와 속도를 다시 한번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북을 축으로 한 평화체제의 구축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교류협력과 자주통일 논의는 또 하나의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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