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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담] 갈등의 시대 넘어선 평화체제 구축필요
 

한국일보 

2000-01-03 

●한국 하영선(河英善)교수


서울대 외교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79년 미 워싱턴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80년부터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94-95년 일본 도쿄(東京)대 동양문화연구소 초청연구원, 93-96년에는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97년「한국과 일본:새로운 만남을 위한 역사인식(편)」에 이어 이달중 「국제화와 세계화:한·중·일 19세기와 21세기 비교(편)」를 출간할 예정이다.


● 중국 뤄웬쩡(羅元錚) 교수


46년 중국 화서(華西)대학을 졸업한후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연구했고 소련 레닌그라드대학에서 정치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개혁·개방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羅박사는 전국 정치협상회의 위원이며 경제위원회 위원으로 현재는 베이징(北京)대학 교수다. 저서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개조」 「교육과학문화와 사회경제발전관계」 「뤄웬쩡 문선」 등이 있다.


● 일본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埼久彦) 고문


1930년 중국 다이렌(大連)에서 태어나 도쿄(東京)대학 법학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에서 수학했으며 도쿄대 재학중 일 외무성에 들어가 정보조사국장,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주태국대사 등을 지냈다. 92년 퇴직후 하쿠호도(博報堂) 특별고문,「오카자키 연구소」 소장을 맡아 국제정치와 문명평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국가와 정보」 「전략적 사고란 무엇인가」 「새로운 아시아에의 대전략」 등이 있다.


21세기 아시아의 미래는 무엇일까. 특히 아시아의 주역인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의 위상과 역할, 상호관계는 어떤 변화를 맞을 것인가. 3국이 과거의 갈등과 불신을 떨쳐내고 새천년에서의 공동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한 인식의 전환과 그에 바탕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해 볼 시점이다. 한·중·일의 전문가를 초청, 「3각 지상좌담」을 통해 21세기의 동북아 신질서와 3국 관계를 조망해 본다. /편집자주
_한국 중국 일본 3국의 관계는 뉴밀레니엄을 맞는 아시아의 신질서 구축에 관건이고 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이다. 21세기를 입문하는 시점에서 3국의 관계는 떻게 설정돼야할 것인가.


하영선 교수=한·중·일은 19세기에 들어서 구미가 주도하는 근대 국제질서를 수용하면서 본격적인 갈등의 역사를 겪어왔다. 21세기의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근대와 탈근대의 복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근대 전략은 한·중·일이 근대적 의미의 자강(自强)과 균세(均勢)에 기반하여 정치적 신뢰구축, 군사적 신뢰구축, 군비축소, 갈등해결의 제도화 등을 추진함으로써 평화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탈근대 전략은 국가간의 갈등관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중·일 관계를 복합화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를 넘어서는 지역적, 지구적 안보협력과 시민사회의 평화연대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복합적 단위체들이 소극적 의미가 아닌 적극적 의미의 평화를 추진해야한다. 그러나 이러한 동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본격적 노력은 이 지역에서 근대의 모순이 보다 심화될 때에 비로소 본격화할 것이다.


뤄웬쩡 교수=3국 관계가 아시아 신질서 정립의 관건이다. 3국은 공통적인 문화 전통 역사를 갖고 있기때문에 보완성이 크고 협력 가능성이 높다. 3국은 인민의 장원하고도 근본적인 이익에 부합되고 아시아, 나아가 세게의 평화와 안정, 발전에 유리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대은행, 대기업은 국경을 초월해 통합되고 있다. 3국은 비슷한 역사와 문화적 기초를 갖고 있고 국제관계에서 허다한 공동 인식과 이익이 있다. 평화와 발전의 대전제하에 평등과 상호이익 상호보완 진실협력의 원칙에 근거, 21세기 우호협력관계의 새 장을 추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오카자키 고문=한국과 일본은 다방면에서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아직 충분하지 않았지만 97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일 후 협력의 발걸음이 크게 빨라졌다. 안보협력도 예외가 아니다. 안보 협력에는 동맹관계와 다자간 대화 등 두 가지가 있으나 동맹이 기본이다. 다자간 대화는 이를 보완하는 것으로 있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동맹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 한일 양국은 정식 동맹관계는 아니지만 각각 미국과 같은 목적으로 동맹관계를 맺고 있어 사실상의 동맹관계에 있다. 양국간 안보 대화와 정보 교환은 사실상 동맹으로서의 대화, 동맹으로서의 정보 교환이다. 반면 중국과의 안보협력 관계는 다자간 대화 차원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현상이고 앞으로의 한계이다. 그것이 동북아에서 3국의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제약하고 있다.


_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정의했다. 3국 역시 예외는 아닌 것같다. 화합의 21세기를 맞기 위해선 특히 과거사의 정리가 필수적인데.


뤄교수=그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정의한데 대하여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일간의 과거사 정리는 필요하다. 그 방법은 역사를 거울로 삼아야한다. 유럽은 과거사 정리를 비교적 잘했다. 독일은 파시즘의 오류를 인정하고 피해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못하다. 일본은 미국의 도움하에 성장했다. 그래서 역사인식이 투철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하다. 그들은 침략을 인정하지않고 있다. 나는 역사에 대해 「지난 일을 잊지않고 후세에 스승으로 삼아야한다(前事之忘 後世之師)」라고 말하고 싶다』


오카자키 고문 『80년께만 해도 과거사 문제는 존재하지않는듯 했다. 한 세대가 흐르면 과거사는 잊혀지게 마련이며 적어도 국가간의 문제가 되기는 어렵다. 그 이후의 과거사 문제 부각은 일본의 내정에서 비롯했다. 중국의 일본 비판도 일본내에 동조 세력이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국민 모두가 반발, 중국의 국익을 해치는 상황에 이르면 중국도 중단할 것이다. 물론 감정의 앙금은 몇세기까지도 남고 국민간의 감정도 쉽사리 해결되지않는다. 지금도 보스턴 사람들은 영국의 혹독한 식민지 정책을 비판한다. 그렇다고 미영 양국간에 역사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서로 국익을 해치지않는 범위내에서 감정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교수=3국의 근대적 만남은 비극의 역사였다. 19세기 후반 이래 일본이 지역 제국주의를 추구하는 속에 조선은 신민지로, 중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3국이 21세기를 맞이하면서도 아직까지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의 비극이다. 과거사의 반성은 단순한 언어적 실천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행동적 실천을 통해서 상대방의 믿음을 얻을 수 있을때 비로서 가능하다. 따라서 19세기 일본이 주장했던 한·중·일 협력의 삼화주의(三和主義)가 일본의 지역 제국주의의 표현이었던 것과 달리 21세기의 진정한 삼화주의를 위해서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감동시킬 수 있는 미래지향적 실천이 필요하다.


_중국의 세게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경제교류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자유무역지대 구축 또는 동북아 경제통합 내지 경제블럭 논의도 무성하다. 3국의 경제협력은 어느 수준까지 발전될 수 있을 것인가.


오카자키 고문=한일 양국의 자유무역 지대 실현은 역사적인 일이 될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예로 보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완전한 자유경제 체제가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 중국이 포함된다면 세계사가 바뀔 정도의 대사건이겠지만 우선 중국이 그것을 바라지않고 있다. 중국의 경제체제는 정치체제의 변화없이는 불가능하다. 엔의 국제화는 일본으로서는 바라는 바이지만 불가능하다. 중국이나 태국 필리핀에 달러 대신 엔화를 보유하라는 요청이 먹힐 리 없다. 미국은 1,000개의 대륙간 탄도탄(ICBM)과 12척의 항공모함으로 은행을 지키고 있다. 이런 안전한 미국을 외면하고 일본에 돈을 맡기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뤄교수=3국이 자유무역구를 이뤄야한다. 중국은 정치적 동맹은 원하지않으나 경제적 쌍변 또는 다변 블럭에는 찬성한다. 동북아 지역의 다무(多貿) 경제협력 추진은 현실적이고도 심원한 의의가 있다. 동북아 경제규모는 세계 경제의 20%를 차지한다. 동북아 경제의 기초조건과 그 거대한 잠재력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3국은 이미 체결한 무역, 과기(科技), 문화협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협력을 강화, 아시아 금융위기의 영향을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 중국은 전진중에 곤란을, 일본은 거품경제의 영향하에, 한국은 이미 회복경제의 단계에 있다. 3국은 상호학습과 경험을 살려 국제경제의 새 질서 건립에 힘쓰고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투기풍파의 충격, 특히 「금융 악어」의 침범에 대비해야 한다.
하교수=21세기 세계 경제질서는 개별 국민경제의 각축과 함께 유럽연합(EU), 북미무역자유협정(NAFTA)과 같은 지역 경제통합, 지구 경제조직의 강화, 그리고 사이버 경제의 등장과 함께 복합화 현상을 겪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속에서 아시아 국가도 개별 국가이익의 갈등을 조절하는 동시에 다른 지역경제 단위체나 지구경제조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차원의 열린 지역 경제통합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노력은 우선 이 지역의 위계적 경제질서의 갈등을 협조로 전환시켜야하는 어려움, 이 지역 국가간의 정치·군사적 갈등의 조정과 해소의 어려움, 그리고 아시아 정체성 형성의 어려움때문에 21세기에 들어서도 커다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3국은 경제발전 단계가 일정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기때문에 동아시아의 공동번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주도하는 수직구조의 경제협력이 아니라 한·중·일이 상호보완할 수 있는 복합구조의 경제협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동시에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와 같은「환동해 경제권구상」「환황해 경제권구상」을 통한 지역 경제협력의 모색, 세계무역기구(WTO)나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지구경제 관리체제의 적극적 참여, 그리고 새로운 사이버 경제의 본격적 활용을 추진해야한다.


_3국 모두에게 미국은 중요한 파트너중 하나다. 미국은 또 아시아의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세게적 주도권을 떻게 정리하고 대응해야 하나.


하교수=20세기 냉전질서를 소련과 함께 주도하였던 미국은 21세기 세계질서를 계속해서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21세기 동아시아에서도 일본과 한국을 제휴세력으로 삼고 중국과 북한을 관리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동아시아 3국은 이러한 미국을 근대의 이분법적 발상인 친미 또는 반미의 시각을 넘어선 「용미(用美)」의 시각에서 동아시아 국가의 근대적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세력균형자로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을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세력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종속성과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국가들이 자강과 균세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동아시아의 복합적 그물망속에 미국을 위치지워야한다.


오카자키 고문=역사적으로 앵글로 색슨족은 16세기에 스페인, 17세기에 네덜란드, 18세기에 프랑스에 이겼다. 20세기에 들어와 독일과 일본을 이기고 마침내 러시아에도 이겼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미국의 주도권은 정치·경제·군사 등 모든 면에서 50년, 100년은 지속될 것이다. 한일 양국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겠지만 중국도 미국에 저항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미국과 대결한다면 독일이나 일본처럼 된다. 어떻게든 사이좋게 지내야한다. 최근의 타이완 문제나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러시아 방문에서 행한 발언 등을 보면 중국이 위험 지역에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뤄교수=미국의 영향력은 크다. 경제동반자로서 큰 영향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권력이 있다고 세계 문제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설사 정치·경제·군사력이 막강하다 해도 세계를 주도할 권리는 없다. 왜냐하면 「국가 대(對) 국가」는 평등하고 독립적이며 주권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미국의 영향력과 역할은 인정하지만 주도권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미국이 아시아와 다변 무역협력을 발전시키는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에서 방호체제를 구축하고 제3국과 동맹을 맺는 행위에 중국은 찬성하지않는다.


_북한문제는 동북아 안정에 있어 태풍의 눈이다. 새 세기에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뤄교수=20세기말의 아시아 안정은 북한 문제가 관건이 됐다. 그러나 21세기 북한을 둘러싼 갈등은 화해의 추세로 전환할 것이다. 남북한이 전쟁에 이를 가능성은 적다. 반면 화해의 가능성은 어느때 보다 높다. 중국은 한반도 전쟁에 개입했으나 수십년 변화를 통해 4자회담 참여 등을 통해 이 지역의 평화·안전에 노력하고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남북이 주장하는 현재의 통일방안은 서로 익숙치않다. 그러니 기다려야한다. 기다리면 경제발전과 같이 상호유익하고 혜택이 발생하고 합리적인 방안이 돌출될 것이다. 이 방안으로 통일을 실현하면 된다.


하교수=북한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세련된 복합전략의 추진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의 군사대국을 위한 노력이 한반도와 주변국가의 평화와 번영에 위험을 가져다주는 것을 막아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의 정치·군사적 위험성을 비현실화하도록 하는 개별적, 그리고 다자적 방어 및 억지체계의 마련이 이루어져야한다. 다음으로 북한이 반외세 민족대단결과 인민민주주의 통일전선의 논리에 기반한 사상과 정치의 강국을 모색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정치적 불안정을 증가시키지않도록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주민, 한국 그리고 주변국 모두에게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반외세와 인민 민주주의의 논리에 대한 개별적 그리고 다자적 선의의 무시정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정치주도세력은 21세기의 「강성대국」건설을 위해 경제강국을 강조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21세기 북한경제의 효율적 관리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북한경제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대북 교류협력의 강화와 함께 북한의 에너지, 식량, 기술, 정보, 환경 등을 한반도에너지기구(KEDO)와 유사한 다자적 관리의 틀에서 해결해나가려는 시도를 해야한다.


오카자키 고문=북한의 행동은 참으로 점치기 어렵다. 그것이 한반도의 미래상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다만 지난 1년간 대단한 진전이 있었다. 한·미·일 3국의 공조가 확고해져 북한의 이간책이 불가능해졌다. 앞으로도 무슨 일만 있으면 즉각 3국 협의가 이뤄질 것이다. 북한 문제와 관련, 중국의 협력을 얻어내는데도 한·미·일 3국의 확고한 공조가 전제이다. 중국과 어떤 협력체제를 이루어갈지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해야 하며 중국의 협력이 이뤄지면 한국과 일본은 안전하다.


_종종 아시아의 특수성을 인정하거나 살려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뤄교수=아시아에는 민족이 많고 다양한 국가, 선진 후진 등 발전정도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연맹」이 없다. 이것이 아시아 평화·안정 발전의 중요 요소다. 세계는 나날이 국제화, 지역집단화, 일체화하고 있다.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의 특장이 있다. 비록 현실이 같지 않더라도 아시아적 가치를 살려 세계평화의 발전에 유리한 방향으로 힘있게 추진해야한다.


오카자키 고문=「아시아적 가치」가 따로 존재하지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김대통령이 정확히 밝혔다. 워싱턴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구미가 발명했을지 모르지만 기관차와 마찬가지로 좋으면 사용하면 그만이다」라고 밝혔고 일본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한·중·일 3국이 공통적으로 유교적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연고, 화합을 중시하는 태도는 문화적 태도의 차이일뿐 자유와 민주주의를 엎을만한 별도의 가치라고 볼 수는 없다.


하교수=「아시아적 가치」의 존재 여부와 아시아의 경제발전에 미치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관한 논의는 21세기의 현실에서 보자면 비생산적이다. 왜냐하면 우선 「아시아적 가치」와 「구미적 가치」의 이분법적 구분이 비현실적이다. 한·중·일은 19세기이래 전통적 가치를 기반으로 「구미적 가치」를 복합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변용시켜왔다. 따라서 오늘의 한·중·일의 가치체계는 단순히 「아시아적 가치」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적 가치」와 「구미적 가치」의 복합체로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3국의 과제는 「아시아적 가치」의 부활이나 탈피라는 진부한 발상을 넘어 「아시아적 지구표준」의 창출이라는 복합적 발상일 것이다.


_21세기는 정보화 시대다. 인터넷으로 인해 문화적 국경은 의미를 상실했다. 3국간 문화교류는 어떻게 되리라 보는가.


하교수=동아시아의 문화질서는 역사적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질서의 틀 안에서 상당한 동질성의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이래 동아시아 3국은 뒤늦게 구미의 근대국가 모형을 수용하게 됨에 따라 전통과 근대가 복합화된 새로운 삶의 모습을 형성해왔다. 21세기 신문명의 표준으로서 세계화, 정보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속에 3국이 21세기 신문명의 주도세력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개별문화의 기반위에 아시아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복합문화를 키워나가야하며 더 나아가 안과 밖으로 열린 아시아의 복합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한다.


뤄교수=다음 세기는 국가간 정보교류의 발달로 문화국경은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민족적인 문화특색은 시간이 갈수록 빛날 것이다. 중국은 다른 나라가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문명이 있다. 일본은 서양문화를 수용하면서도 민족전통을 잘 발전시키고있다. 한국도 독특한 자신만의 문명을 유지하면서 발전시켜 전통을 세웠다. 3국이 전통문화를 갈고 닦으면 공통문화도 창조될 것이다. 21세기 국가간 교류협력은 더욱 밀접해진다. 그러나 상대국가의 전통문화는 존경하고 중시해야한다.


오카자키 고문=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아직 민족주의 시대다. 국가간의 장벽이 높은 것도 그때문이다. 그러나 문화교류는 이런 국가간 장벽과는 무관하다. 독자적 문화를 가진 나라 사이에 문화적 영향을 주고 받은 일이다. 한·중·일 3국은 고전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분명히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어 문화교류에 의해 독자적 문화가 사라질리 없다. 한일 양국은 생활양식이 대단히 비슷해 단순히 대중문화의 개방 정도가 아니라 보다 깊은 교류가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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