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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중-일 협력의 장래;동북아 재구성 필요성 대두
 

조선일보 

1999-12-03 

복합화’로 독주 배제해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아세안+3국(한-중-일) 정상회담’에서 한-중-일 정상들이 처음으로 함께 만나 3국 정상회담의 정례화와 경제협력을 위한 공동연구 착수에 합의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한반도가 위치하고 있는 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천하(천하) 질서’의 공간의식 속에서 살아오다가, 19세기에 들어서서 구미(구미)세력의 지구적 확장과 함께 아시아주의와 구미주의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아시아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대동아공영권(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의 일본 지역제국주의로 전락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냉전의 동아시아 공간은 21세기를 앞두고 소련의 해체와 탈근대 공간의 등장과 함께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하는 커다란 숙제를 짊어지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마닐라에서 보여준 동아시아 3국 정상의 첫걸음이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성급한 자신감보다는 신중한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선 한-중-일 3국은 마닐라의 정상회담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공통의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구미가 주도하는 근대문명의 기준을 따라잡으려는 지난 한 세기 반의 노력 속에서 상당한 정도의 이질화를 겪어야 했다.


따라서 탈냉전 이후 ‘근대의 노년기’에 접어든 유럽국가들은 유럽연합을 통해 일국중심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세기적 실험을 실천에 옮기고 있으나, ‘근대의 청년기’에 접어든 동아시아 3국들은 21세기에도 쉽사리 일국중심주의의 각축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중-일 3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차원의 세계화, 지역화, 근대국가화, 지방화, 또는 개인화가 아니라 복합국가의 건설을 통한 동아시아의 복합화이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복합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21세기 동아시아의 공간 재구성 문제이다.


냉전시기의 미-소 중심의 동아시아 공간이 탈냉전 시기의 미-일 대(대) 중국 중심의 공간으로 변화되는 속에 한-중-일 중심의 동아시아 공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복합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한-중-일 지역협력의 장래를 크게 좌우할 것이다.


동아시아의 공간 재구성 과정에서 또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은 20세기 상반기에 지역공영의 명분하에 일본화를 겪었던 것처럼, 21세기의 동아시아 복합화가 실질적으로 일본화 또는 중국화의 길을 걷게 될 위험성을 효율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진정한 복합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강(자강)과 균세(균세)라는 근대적 생존전략의 지속적 추구와 함께 지역화, 세계화, 그리고 지방화, 개인화라는 탈근대적 생존전략을 함께 추구해야만 한다.


동아시아의 복합화 과정에서 공간 재구성 문제와 함께 중요한 것은 이 지역의 국가들을 비롯한 초(초)국가 및 하위(하위)국가 행위자들의 활동의 복합화이다.


3국 정상들이 마닐라에서 지역협력을 위해 일차적으로 경제협력을 위한 공동연구에 합의하였으나, 이것은 하나의 작은 출발에 불과하다.


19세기 중반 이래의 동아시아 질서가 근대 국민국가의 부국강병 추구라는 틀 속에서 형성되었다면, 21세기 동아시아의 공생질서는 지역 내 국가들의 안보, 번영, 정보화, 복합문화, 생태균형, 인적자원의 개발, 민주적 질서운영의 복합적 추구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중-일의 지역협력을 위한 노력이 동아시아 공생질서의 자리잡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일국중심의 부국강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합국가를 기반으로 한 복합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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