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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담] 미-북 베를린 합의를 보고
 

조선일보 

1999-09-14 

대담: 김경원  <사회과학원장> 하영선 <서울대 교수>;“화해의 서곡 아닌 위기 과정의 ‘간주곡’인듯”


미-북간 베를린 합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미-북 관계와 한반도, 동북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김경원 사회과학원장과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의 긴급 대담으로 해답을 구해 본다./편집자


▲하영선 교수=이번 합의문 형태가 추상적이지만, 단기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추가발사 유보와 미국의 대북경제제재의 해제가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미-북한 관계개선 문제, 동북아 아태지역의 평화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이번 합의의 기본성격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낙관적 입장에서는 냉전구조 해체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어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반면 비관론에서는 지난 94년 제네바에서 이번 합의보다 더 포괄적인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5년 후 다시 베를린 합의가 필요했다는 사실에서 딜레마를 느낀다.


낙관론의 입장에선 이번 합의가 냉전해체의 ‘서곡’으로 보이지만, 비관론에서는 한반도의 위기가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간주곡’ 정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김경원 원장=이번 합의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선 북한이 왜 이런 합의를 했는가 하는 동기부터 깊이 생각해야 한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북한이 원했던 ‘선물’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북한쪽 사람들이 서슴지 않고 ‘선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 하나는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에 따를 위협을 암시하고, 북한이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이번 합의가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번 합의의 전개과정이 핵문제를 다룬 지난 94년 제네바합의,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미-북간 합의의 도출과정과 논리가 놀랄 정도로 같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평화를 담보로 미국으로부터 ‘선물’을 요구하고, 그 선물을 확보하는데 안보위협을 활용하는 패턴이 이제 확실히 드러났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합의가 미-북 관계를 일단락짓는 효과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유사한 문제와 해결 패턴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된다.


이번 합의가 다행인 것은 일본과 관련이 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일본사회의 우경화에 촉진제 역할을 했다.


이번에 제대로 해결이 안 됐다면 동북아 지역안정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하영선 교수=동기에 대해서는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강성대국론의 틀 속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강성대국론은 정치 사상 군사가 우선되고 경제는 후미에 있다.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선물을 수용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는 반면, 강성대국론이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군사분야에선 마이너스다.


북한으로선 선물을 받아들이되 군사부문에 결정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 변형(변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단 미사일 추가발사가 유보됐지만, 강성대국론의 입장에선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합의가 냉전체제 해소의 서곡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하는 것은 문제다.


길게 보면 간주곡의 성격을 띨 가능성이 더 짙다.


제네바 합의 이후처럼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다.


▲김경원 =이번 합의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과 북한간의 합의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번 합의의 결과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하는 점을 알기 위해선 미-북한과의 관계가 어떠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푼다고 해도 미국이 북한에 가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경제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는 소극적인 견해이다.


또 하나는 이미 북한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와 접촉을 확대하는 쪽으로 기본방향이 바뀌어 있기 때문에 미국기업들도 북한에서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로 북한이 미국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금융거래 제한이 풀리면 미국기업보다 일본기업들이 더 빨리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경제관계에선 미-북 관계 변화의 속도가 빠를 수 있고, 이 경우 우리의 대북정책이 상당한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영선 교수= 보다 걱정스런 것은 북한이 경제만을 떼지 않고 정치 군사관계를 포괄적으로 풀어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앞으로도 대단히 큰 숙제다.


다시 그 문제가 제기되면 미사일 전문가 회담과, 관계개선을 위한 고위급 회담이 보조가 맞지 않아 삐걱거릴 가능성이 있다.


이번 합의로 부분적으로 돌파구가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5년 간 거쳐온 과정을 돌아보면 앞으로도 막히는 부분이 나타나고, 딜레마에 직면하기도 쉬울 것이다.


고속도로가 뚫렸다고 보기는 힘들고 우여곡절을 거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경원 = 미국이 이번 합의에서 얻은 것은 적지 않다.


미국은 동북아의 세력균형, 또는 질서 유지에 위협이 되는 요소를 일단 제거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실제로 발사했다면 일본을 자극하고, 일본의 반응은 중국의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이며, 결국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성국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경제제재를 해제해주는 것은 북한에 크게 양보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 이런 약속은 94년 제네바 합의 때 이미 다 한 것들이다.


미국은 94년 제네바 합의에 이용했던 수단을 이번에 다시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 행정부로서는 94년 제네바 합의에 대한 미국 내 보수세력의 반발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더이상 대북 양보를 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이번 합의는 미국 행정부가 이미 하려고 했던 대북 제재완화 조치를 실제로 이행할 수 있도록 미국 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영선 교수=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보가 일회적인 것이냐, 장기적인 것이냐는 점이 중요하다.


미사일 전문가 회담이 빠른 시일 내에 재개될 것이라는 발표를 보면 일회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번 합의가 일회적인 유보 합의라면 미-북한 관계 개선을 위한 고위급 회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문제가 다시 악순환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의 사이클이 반복될 위험이 내재하고 있다.


▲김경원=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분명하다.

 

남한 ‘정부’는 상대하지 않고, 남한 ‘사회’를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합의가 북한의 그런 입장을 변화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대응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 정부를 상대로 안보와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와 대화하고 협상하도록 설득하고 강요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구태여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북한 사회의 변화이다.


북한 사회가 변화함으로써 북한의 내부 상황이 변하고, 그 결과로 북한 정책의 변화가 초래되는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


▲하영선 교수= 미북간의 관계 개선 속도가 빨라지고 내용이 풍부해지면 풍부해질수록, 남북간 당국자간의 실질적인 만남에 대한 북한당국의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3대 선결조건’을 우리 기준으로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기준으로 충족돼야 한다는 것 때문에 실질적인 남북 당국자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남한의 사회 부분, 기업들과의 관계 개선은 이뤄지고 교류가 활성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고리는 유지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경원=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번 베를린 합의는 단기적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단된 한반도가 안고 있는 기본 문제가 해결됐다거나, 또는 해결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확실하게 됐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오히려 북한이 지난 94년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전술을 또 사용하게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동시에 북한과의 경제적이고 기능적인 관계가 증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복합적이고 따라서 전망도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정리=정권현기자 khjung@chosun.com
조중식기자 js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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