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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무조건 포용’은 안된다;서해교전 ‘북포용론’에 상처
 

조선일보 

1999-06-17 

포용 선택범위 명확히


<한말(한말) 외교사의 발자취를 찾아 거문도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연평도 앞바다에서의 남북한 군사 충돌 소식을 들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100여년 전인 1885년에 영국과 러시아의 국제대결 구조가 동북아에 투영됨에 따라 영국 해군이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대(대) 러시아 전략거점으로서 거문도를 2년 가까이 무단 점령하였다가 철수한 거문도사건과, 20세기말의 연평도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평도 앞바다에서 이루어진 남북 해군의 교전 사태는 소박한 포용론을 난처하게 만드는 동시에 소박한 봉쇄론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연평도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깊이 있게 깨닫고 정책화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위기는 서해 교전의 수준을 넘어 더욱 심화할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다.


우선 20세기말 한반도의 위기체제는 19세기말의 거문도사건과 같은 구조적 요인보다도 지금의 연평도사건과 같은 행위자적 요인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받고 있다.


19세기 위기체제의 상징적 표현인 거문도사건이 주변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힘의 각축이 주(주)를 이루고, 당시 조선의 약쇠 소국의 현실이 종(종)을 이루는 결합을 통해서 발생한 것이라면, 20세기말 한반도 위기체제의 상징적 표현인 연평도 사건은 북한의 강성대국 정책과 한국의 소박한 포용정책의 만남이 주를 이루고 주변열강들의 평화구조 부재가 종을 이루는 결합을 통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냉전구조해체의 5대 과제는 상대적으로 연평도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은 행위자적 요인보다는 거문도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은 구조적 요인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따라서 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21세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중심과제를 보다 신중하게 재검토해야만 한다.


연평도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해는 평화의 바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남북 해군의 교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해는 전쟁의 바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박한 포용론자의 눈에는 남북한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해의 모습으로 개선되고 있으며, 서해사태를 신중히 대응해 나가는 속에 서해의 모습이 점진적으로 동해를 닮아갈 것으로 보이고 있다.


반면에 소박한 봉쇄론자의 눈에는 서해의 모습이 남북한 관계의 기본을 이루고 있으며, 동해의 모습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동해와 서해의 현실은 북한의 대남 정책의 기본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현재 21세기의 강성대국 건설을 위하여 북한나름의 선택적 포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사상(사상)-정치-군사의 강국 건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도내에서 경제의 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남한의 기업과 주민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대신에 남측 정부와는 기본적으로 전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이한 남북한의 현실 속에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는 현재까지 강조하고 있는 소박한 포괄적 포용정책을 보다 세련된 선택적 포용정책으로 개선해야만 한다.


세련된 선택적 포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시급한 것은 포용의 선택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북한 2천만 주민의 삶을 위해 필요한 인도적 지원과 21세기 북한체제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제도적 지원은 마땅히 포용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김정일 체제가 추진하는 정책들중에 결과적으로 북한주민의 삶이 아닌 죽음을 초래하고,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불안정을 야기하며,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저해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과감한 불포용정책을 추진해야만 한다.


이러한 현실적 노력 없는 포용정책은 무모한 봉쇄정책이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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