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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냉전해체가 ‘평화’라는 착각;코소보 민족분쟁의 교훈
 

조선일보 

1999-04-19 

전쟁주도세력 주목해야


나토군의 유고공습과 유고의 알바니아계 「종족 청소」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코소보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쉽사리 찾지 못하고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코소보 사태는 코소보의 알바니아 종족이 겪고 있는 비극적 삶과 죽음의 현실, 나토군 유고 공습의 정치적 목표 달성 여부, 그리고 유럽의 안보에 미칠 영향 때문에 세계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덧붙여서 코소보 사태는 단순히 20세기를 마감하는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21세기에 진행될 전쟁과 평화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21세기의 평화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 한반도에는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다.


코소보 사태의 출발은 유럽의 냉전구조 해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1989년에 유고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 이후 코소보 자치를 둘러싸고 유고와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종족간의 갈등과 협상은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군사적 개입을 맞았다.


21세기 전쟁과 평화의 전형적 모델이 될 코소보 사태가 보여주는 특징은 냉전구조의 해체와 함께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양)블록의 대결은 해소되었으나 사회주의 블록과 제3세계 국가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종족-종교적 갈등이 정치-군사적으로 표면화되어 종족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러한 분쟁이 지역질서 및 세계질서 관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미국 주도의 다국적 정치-군사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21세기의 전쟁과 평화의 모습을 한반도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우선 주목할 것은 우리 정부가 최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냉전구조의 해체」가 곧 「평화체제의 구축」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코소보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쟁지향적 정치세력이 평화지향적 정치세력으로 바뀌지 않은 채, 「냉전구조의 해체」만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평화체제의 구축」이 아니라 「전쟁체제의 구축」이라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21세기 전쟁과 평화의 모습에서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 군사개입의 장래이다.


코소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나토군 군사개입의 결과에 따라서 미국은 21세기 신세계질서를 운영하기 위한 군사개입의 내용과 과정에 대해 보다 신중한 재검토를 하게 될 것이다.


탈냉전기에도 지속적으로 군사혁신을 추진해 온 미국은 새롭게 개발한 첨단 군사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걸프전의 경우에는 대단히 효율적으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코소보 사태에서는 나토군 공습의 정치적 성과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의 군사개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측면이다.


미국이 21세기 세계질서의 주도국으로서 질서운영을 위한 군사개입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개입국과 피개입국의 국내정치적 지지와 동시에 국제 정치적 지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코소보 사태가 장기화하고 지상군의 투입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의 국내정치는 국내우선 주의를 강조하게 될 것이며, 유고의 국내정치는 알바니아계 정치세력의 약화를 보게 될 것이고, 코소보를 둘러싼 국제 정치세력들은 미국의 지나친 자기중심적 지도력에 불만을 표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코소보 사태의 전개를 염두에 둔다면 21세기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전쟁지향적 정치주도세력과 냉전구조의 동시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미국의 군사개입은 기술적, 정치적 측면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신중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해야 한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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